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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여행기-6 천자산삭도,하룡공원,어필봉,원가계나의 여행기 2011. 1. 16. 16:14
장가계 여행기-6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전의 들어갔던 입구를 통해 또 들어갔다.
오전에 관광한 곳을 지도로 표시해 보았다.
<천자산 오르기전>
<천자산 삭도>
셔틀버스를 타고 얼마 안올라가니 천자산 삭도가 보인다. 6인승 케이블카다. 서울 남산에 있는 케이블카도 삭도라 기록되어있다. 남산케이블카는 3분 올라간다.
천자산 케이블카는 좀 더 길다.
항상 그렇지만 케이블카도 비행기도 무섭다. 그래도 케이블카는 줄에 매달려 있어 다행이다.
가파르게 빨리올라가니 높은 산을 10여분 안에 오른다. 내려다 보니 숲이 아주 좋다.
덕유산에서는 올라갈 때 아래 골짜기의 산수국이 환상적이었는데 이곳에는 없었다. 눈에 띄는 꽃은 보이지 않는다.
아열대 지방이라 많은 꽃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는 좀 실망했다.
시원했다.
아 이렇게 높은 곳에 또 셔틀버스가 있다.
타고 한 3분정도 내려가니 관광객이 많다. 오다가다 옷깃을 스친다. 하룡공원이란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꽃을 예쁘게 심어 놓지 않았다.그럴 필요가 없는 것일까?
벼랑위를 오르니 비교적 평평한 고원이다. 밑에서 쳐다 볼 땐 저 꼭대기에 내가 설만한 공간이 있을까 의심했지만 기우였다.<어필봉>
<선녀산화>
<하룡공원에서 본 풍경 >
보통 높은 산에 올라보면 아래로 굽어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는 같은 높이로 평야같이 보인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 아주 시원했다.
그러나 옷은 이미 젖어 .......등줄기 땀이 아래로 흘러 바지 허리춤 아래가 다 젖었다.
여기에서는 어필봉(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황제가 쓰던 붓을 던졌다고 해서 ‘어필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어필봉은 무릉원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걸출한 대표로 뽑힌다)과 천대서해(황제를 호위하는 천군만마의 기세로 솟은 봉우리가 운무에 휩
싸이면 바위 숲이 바다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녀산화(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는 형상의 바위) 볼거리라 했
다. 그러나 어필봉만 머리에 ....
매크로랜즈가 붙은 카메라로 찍어서 풍경도 영 시원치 않다. 어필봉을 몇장 찍어보았으나 그 모습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허룽 (중국어 간체: 贺龙, 정체: 賀龍,하룡 ) 허룽 (중국어 간체: 贺龙, 정체: 賀龍,하룡 1896년 3월 22일 – 1969년 6월 8일)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이자 군인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원수의 직위까지 올랐다. 허룽은 1896년 후난 성(湖南省) 상식현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타고난 무인으로 16세 때 이미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기 위해 산속에서 부하들을 모으고 무장세력을 규합하는 '의적(義賊)'이 되었고 21세 때에는 휘하에 1만9천명의 병력을 거느리는 농민군의 장군이 되어있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세력이 강해지자 그들을 폭도에서 일반군사로 사면한 뒤 돈을 주고 해산시켰다.
허룽은 쑨원 박사와 손을 잡으려 하였고 제1차 국공합작이 진행되던 1926년 국민당 군 제20군단장이었는데 이때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장제스와 국민당 우파가 공산당과 결별을 선언하고 탄압하자 1927년 8월 1일 저우언라이·주더 등과 함께 난창 봉기를 일으켰고 당시 홍군 제2방면군을 총지휘하였으나 봉기가 실패한 후 상하이로 달아났다가 후난성 일대에서 게릴라 군사 활동을 지휘하였다. 1936년에는 마오쩌둥과 장궈타오의 분쟁에서는 마오의 편을 들어 장궈타오의 패배를 결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으로 홍군이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편되고 이후 항일전쟁과 제2차 내전의 모든 기간중에 야전군 사령으로 있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공화국의 주요 요직을 거치고 1955년 인민해방군 원수가 되었다.
6.25때 중공군 지휘관으로 북한을 도우러 압록강을 건너온 적군의 적장이었다.중국과 북한에게는 영웅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적장이었을 뿐이다.사실 하룡을 보러간 것이 아니니까. 하룡공원에는 이런 곳도
돈내고 노래부른다.
한국 사람이 많이 간다는 증거
노래부르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증거
가이드가 덥다고 시원한 얼음제품을 사준다.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40분쯤 가야 원가계란다. 이 높은 곳에서 또 버스를 탄다.
벼랑만 보았던 우리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오르고 내려가는 좁은 비포장 길이다.
좀 평지가 있다하면 집도 있고 학교도 있으며 밭도 있었다. 원주민들이라 한다. 밭에는 옥수수와 해바라기가 많이 심어져 있다. 앞에 가던 셔
틀버스가 원주민을 태운다. 돈 도 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곳에서나 내리고 탄단다. 만약 태우지 않으면 그 길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안내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럴 수밖에.......소개하려고 했지만 원주민들이 막무가내였단다.
원가계란다.
가이드를 따라 갔다. 넓지 않은 길이다.
<원가계>
현기증이난다.
<천하제일교>
내려다 보면 아찔 아찔 현기증이.......
보호 난간이 있지만 아래를 막을 수는 없고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저멀리 있고
천애만애한 벼랑 기암 괴석은 계속 펼쳐지고
아 야 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길바닥은 돌을 잘 깔아서 걷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눈 비에는 어렵겠다.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또 보고 얼마쯤 갔을까 자물통이 수없이 난간에 걸려있다.
태국에서도 보았고 승덕시 대불사에서도 보았듯이 돈을 내고 글을 새겨서 걸어둔단다.
인간이 어디 완전한가? 빌 수밖에.......기원 자물통이다. 차라리 열쇠였으면 좋으련만 걸어두기가 그래도 자물통이 났겠지.
역시 좁은 길 밑은 까마득하다. 고소 공포증이 있다면 좀 어렵겠다. 붕 떠있는 기분이다.
좀 후에 알게되었지만 천하제일교 다리 위란다.
다시
뒤돌아나왔다. 좀더 가 보니 아까 건넜던 천하제일교가 보인다. 앞에 있는 봉우리와 자연적으로 이어진 천하의 제일가는 다리다.
불쑥 나온 부분에서 앞에 펼쳐지는 장관 멋진 병풍이다.
바로 원가계란다. 정사진으로 보기보다는 동영상이 좋을 듯 싶다. 계속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을 앉아서 감상했다.
그런데 이 좋은 자리에 한국사람들의 명함으로 도배된 정자가 하나 있고 그 옆에는 한국인인지 조선인인지 장사를 하고 있다. 내력을 알고 싶
었으나 해결 못하고 뒤돌아 섰다.
하늘아래 이런 곳도 있구나.
원가계의 장관
원가계의 장관
미혼대를 거쳐서 한참 걸어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5분정도 가서 백룡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326미터 2층으로 된 3간짜리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온다.
자세히 볼수는 없었지만 원가계는 보았지.
파김치는 되었지만 기뻤다.
<백룡 엘리베이터>
2006.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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