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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여행기-3 장가계 가는 길나의 여행기 2011. 1. 16. 15:43
장가계 여행기-3 장가계 가는 길
창사 시내를 가로질러 장가계로 출발했다.
지나면서 보니 횡단 보도와 중앙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 손수레, 자전거 등이 멋대로 달려 든다.
당연히 운전자의 주의가 필요했다.
하기야 사람 위주니..........
LG philps라는 간판도 보였다. 여기도 진출해 있구나.<고속도로 들어가기 전 넓은 도로와 가로등>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차를 타고 움직일때면 눈을 감고 자는 일이 없다.
아까운 돈 들여가며 다니는 것인데 하나라도 더 보아두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왕복 4차선 고속도로이며 제한 속도는 80이었다. 우리나라 보다는 좀 덜 된 고속도로로 보였다.
중앙선에는 침엽수림으로 일정하게 자른 나무들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양 들판에는 2모작 벼가 심어져 있고 아직도 모내기를 하는 곳이 보였다. 대단한 평원이다. 약간 높은 곳에는 그 논에 이용될 물이 담긴 연못들이 수없이 많다. 그 연못에는 빠짐없이 연이 있었다. 지루할 정도로 같은 풍경은 계속된다. 물 한모금 마시고 ...........
"이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없어요?"
"좀 더가면 있어요"요것이 휴게소다. 주유기는 두 개 정도 있고 주변이 좀 지저분하다. 화장실이 있으니 휴게소라.
길 건너편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고
길 건너편에는 연구소 같은 곳도 있고
[엄금인화] 불을 가까이 하거나 담배 피우지 말라는 글귀가 보였으나 말(글귀)뿐이었다. 주유소와 변소가 붙어있는데 변소에 재떨이를 놓고 그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피란다. 특수한 곳을 제외하고는 아직 중국은 흡연자에게 관대하다.변소는 냄새로 진동하고.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지만 다니는 차량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 가끔 승용차가 추월을 한다.
평원에는 아직도 계속 논이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 같다. 이제는 논이 아니다. 밭이다.
안내양에게 물었더니 목화란다. 이제는 목화밭 뿐이다. 가도 가도 그렇다.
다음은 담배다 .
다음은 옥수수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벼-목화-담배-옥수수 순이다.농촌의 집들-거의 다 2층집이다
먼저 일층을 짓고 돈을 벌면 2층을 올리고 3층을 올리고 한단다. 거의다 집 모양이 같다.
그리고 일층은 쉬는 곳, 곡물 보관하는 곳, 가축을 두는 곳이란 개념이다. 사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이곳은 일층은 더 습할 것이며 파충류의 출현도 그렇고 그래서 그들은 2층을 선호한다.
고개같은 고개는 아직도 넘은 바가 없다.
3시간 이상 달렸을까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라는 도시로 나갔다.
토가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란다. 토가족 음식을 먹는다나.투자족 [T'u-chia, 土家族] 중국 후난 성[湖南省] 남서부와 후베이 성[湖北省] 남서부에 걸쳐 살고 있는 종족. 그 수효는 20세기말 현재 320만 명을 헤아린다. 이들과 관련이 있는 인접한 먀오족[苗族]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투자족의 공용어는 중국어이다. 먀오족과 마찬가지로 투자족도 그들의 본거지인 산기슭의 작은 언덕과 좁은 계곡에 작은 계단식 밭을 일구어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차·유동나무·몰식자(沒食子)도 재배하며, 동유(桐油)와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수공예품, 특히 편물과 자수가 유명하다. 특색있는 전통춤을 출 때 매우 다양한 손짓을 통해 일상생활의 애환을 표현한다.
산수인간이라는 음식점
규모가 크다. 토가족 음식 어떨까?
고체연료를 쓰며 <연어탕>이라는 음식이었다.<돼지고기. 배추. 오이무침>도 있었다.
안에 들어갔더니 상에다 비닐을 깔았다. 여기 저기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교적 한국사람들이 먹기 좋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연어탕에는 손이 가지 않고 오이무침과 밥 정도. 돼지고기는 좀 역하다. 그러나 배고픈데 어쩌랴 먹었다. 눈을 감고 배추에 싸서.
역시 그남자 또 라면이다. 집에서는 아무거나 잘먹는 식성이라는데 여기와사는 영 먹지 못한다.밥을 먹고 나와 화장실을 찾았다.
남 위생간이라고 쓰여있다. 화장실은 소변기와 4개 대변기가 따로있다.
아뿔사 대변을 보는 곳은 네칸인데 높이는 1미터 정도 문짝은 다 없다. 어떤 남자가 앉아서 큰 것을 본다.
옆 여자 화장실에서는 가끔 자지러지는 소리가 난다. 처음 본 한국 관광객들이란다. 아 이거 어쩌랴?
가정의 화장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제주도에서 작대기 하나들고 돼지우리 옆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았던가?
[돼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담배 피우는 남자라며 아주머니가 의미있는 웃음을 짓던 그 모습이...]생각났다.
하기야 가족의 범위를 넓혀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듯 싶다.
소변을 보러 들어 온 것이라 별 상관치 않았지만 큰 것이라면 낭패.
그렇게 생활해온 그들은 별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며 우선순위가 뒤질 뿐이다.<음식점 벽에 걸렸던 동물가죽-족제비 같아보이는데>
화장실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째...........
다시 출발했다.
길은 꼬불꼬불 포장은 안되고 두 대가 겨우 교행한다.
큰 간판이 보이는 관광차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용왕동굴이란다.흰 구름이 유난하다.
우리는 경고를 [警告]라 쓰는데 이곳에는 [敬告]라 쓴다. 공경 공이라.........
동굴로 들어갔더니 종유석과 석순이 아주 큼지막하다 나이는 3억 6천만년 되었단다.
그 어두운데서도 이끼류는 살고 있어 생명력의 끈질김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주조개>
패키지 여행이라 판매업소는 있다. 진주를 파는 곳. 동정호에서 진주 양식을 많이 한단다.
바로 위의 조개가 진주 조개이며 보통 한 마리에 32-35개 진주가 들어 있었다.일행 그 남자와 나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보석도 그렇고 남자이니.
집사람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 다행이 서울 고등학교 여선생님께서 지갑을 열었다.
여기는 장가계 무릉원구다 . 제법 큰 도시다.
이제 멋진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나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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