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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육(인스부르크 황금지붕/노이슈반슈타인성)
    나의 여행기 2009. 12. 19. 17:43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육(인스부르크 황금지붕/노이슈반슈타인성)



    한식을 점심으로 해결하고 각종 올리브 상품을 구경했다. 식당 부근에서 [장구채]를 본 것은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하나의 수

    확이다.

     

     

     

     

     

     

    오후 2시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다니는 차량도 많지 않다.

     

     

     

     

     

    차창으로 보이는 전원은 고즈넉하다.

     

     

     

     

     

    멀리 산이 보이다 없어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계속된다.

     

     

     

     

     

     

     

    강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계곡으로 운행중이다. 가끔 큰 마을도 보이고 도시도 보인다.

     

     

     

     

     

     

     

    가도가도 끝없는 포도밭이다.

     

     

     

     

     

     

     

    월계분꽃나무 (daum.net)월계분꽃나무월계분꽃나무 (daum.net)

     

     

     

    두 시간을 달려 어느 휴게소로 들어갔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흰 눈으로. 눈과 꽃으로 높이가 대비된다.

     

    휴게소 화단의 꽃이 예쁘다.호랑가시나무?도 보인다. 다시 출발했다. 

     

     

     

    계곡은 계속되었다. 긴 터널도 통과했다. 국경선은 보지못했지만 어느사이에 넘었다. 국경의 의미가 없다. 자유자재로 넘어다니

    니 한나라 같다. 통화도 같다.

     

    밖은 이미 어둡다.

     

     

     

     

     

     

     

     

     

    오후 6시 20분 뤼텐베르그의 시골 마을 호텔에 도착했다. 베니스를 출발한지 4시간이 좀 지났다.

    깨끗하고 정갈하다. 피곤해서 그런지

    소주 한 잔 생각이 났지만 방법이 없다.
     

     

    10일째

     

    밤새 비가 왔나보다. 길이 젖었다. 부근 산을 보니 눈이 하얗다. 스위스에서 눈을 보고 알프스로 들어왔으니 그럴밖에. 호텔 앞

    출입구에 꽃이 환하다.

     

     

     

     

     

     

     

     

     

    오전 8시 인스부르크로 떠났다. 높은 산에 눈이 하얗다. 동계 올림픽이 두 번이나 있었던 인스부르크다.

     

     

     

     

     

     

     

    높은 산의 흰 눈을 보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스부르크란다. 1964년과 1976년 두번 동계올림픽에 우리는 참가했었지만

    메달은 없었다. 지명만 좀 들어본 곳이다.


     

     인스부르크(Innsbruck)
    [인스브루크 (Innsbruck) 는 오스트리아
    티롤 주
    의 주도이다. 풍경과 경치가 맑고 아름다운 곳으로, 서유럽
    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이자 겨울 스포츠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4년 동계 올림픽
    1976년 동계 올림픽
    을 개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면적은 104.91 km이며,
    2006년
    말 기준으로 인구는 12만명 미만이다. 간혹 ‘인스부르크’라고 쓰는 경우가 있으나, ‘인스브루크’가
    정확한 명칭이다. ‘인스브루크’는 ‘인(Inn) 강의 다리’라는 뜻이다.]

     

     

     

     

    해발 2,334m의 노르케르테 산이다.

     

     

     

    뒷산은 흰 눈, 산 앞은 큰 도시다. 산 중턱의 안개와 어울려 신비스럽기까지 하다.시내로 들어섰다. 주변 가로수는 노랗다.

     

    가까이 보이는 저 산 더 아름답다. 바로 저 산에 스키장이 있다.


     

     

     

     

     

    절경이다. 인스부르크를 관통하는 강이다. 인강이다. 알프스의 눈이 녹아내리는 청정의 강이다.

     

    단풍과 흰눈이 대비되어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구 시가지로 들어섰다. 길은 좁지만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들이다.

     

     

     

     

     

     

     

     

     

     

     

     

     

     

     

     

     

     

     

    1773년에는 모차르트,1780년에는 괴테, 1832년에는 하이네가 묵었다는 황금독수리 호텔 600년이 넘었단다. 와. 오래되었구먼.

     

    바로옆 헬블링하우스는 꽃무뉘 장식으로 더욱화려하다.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건물을 잘찍었을 텐데. 현지 안내인의 설명이 없었기에 . 바로

     

    다음 왼쪽에는 황금지붕이라는 인스브르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황금 지붕(The Golden Roof (German: Goldenes Dachl))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남긴 대표적인 기념물은 인스부르크의 상징이기도 한 '작은 황금의 지붕'이다.구시가에 막다른 길에 위치한 3층 발코니를 덮은 차양이 번쩍번쩍 빛나는 건물은 인스부르크의 랜드마크로 1500년에 완성된 것이다. 막시밀리안 1세때 광장에서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자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 집은 티롤지방의 한 가난한 공작 프리트리의 집이 었는데 모여든 구경 꾼들이 금화를 던져서 지붕이 온통 금으로 덮이게 되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붕은 2,657장이나 되는 금박을 입힌 지붕으로 풍부한 장식이 있는 고딕 양식으로 르네상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층 난간에는 각 지방의 문장들이 섬세한 띠 모양으로 새겨져 있으며, 3층에는 풍부하게 장식된 로지아(거실용 발코니)가 있다. 이 건물의 내부는 동계 올림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곳에는 올림픽 경기의 우표들도 수집되어 있다.
      The Golden Roof (German
    : Goldenes Dachl) is a landmark in Innsbruck
    , Austria
    built in 1500. It was decorated with 2657 fire-gilded copper tiles for Maximilian I, Holy Roman Emperor
    . The reliefs on the balcony show coats of arms
    , symbols and other figures in his life.

    The Golden Roof was built by Archduke Friedrich IV in the early 15th century as the residence of the Tirolean sovereigns. The Golden Roof actually is the three-story balcony on the central plaza at the heart of the Old Town. It was constructed for Emperor Maximilian I to serve as a royal box where he could sit in state and enjoy tournaments in the square below. Completed at the dawn of the 16th century, the Golden Roof was built in honor of Maximilian's second marriage, to Bianca Maria Sforza of Milan. Not wishing to alienate the allies gained by his first marriage, to Maria of Burgundy, he had an image of himself between the two women painted on his balcony.Jacob Hutter
    , founder of the Hutterites
    was burned at the stake
    at this site on 25 February 1536 for his Anabaptist
    beliefs and activities.

     

     

     

     

     

        

     

     

     

     

     

     

     

     

    황금지붕이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600년전에 막시밀리안 1세라. 처음 듣는 인명이다. 앙뜨와네뜨 공주가 그려져

    있는데 이 공주가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살다가 프랑스대혁명 때 콩코드광장에서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황비다.

    프랑스 벨르사이유 궁전 관광에서 앙뜨와네뜨 황후의 초상을 본 일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개선문에서부터 인스부르크시를 가로지르는 가장 번화한 중심 거리로 . 이 거리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6세의 장녀이며
    남편 프란츠 1세와 함께 통치를 했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왕비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오스트리아 여제(女帝;1740~80). 헝가리 및 보헤미아의 여왕이기도 하며, 퇴위한 뒤에는 오스트리아 대공(大公)이
    되었다. 카를 6세의 딸로 1736년 토스카나대공 프란츠슈테판(뒤에 황제 프란츠 1세)과 결혼하였으며, 부제(父帝)의 사
    망 이후 합스부르크가(家)의 영토를 상속받고 카를 6세의 상속법 프라그마티셰 장크치온, 즉 국본조칙(國本詔勅)에 의
    해서 즉위하였다. 이때 바이에른·작센·프로이센 및 프랑스·에스파냐 등이 테레지아의 왕위계승에 이의를 표명하여
    1741~1748년 오스트리아계승전쟁이 일어났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에 침입하자 테레지아는 프랑
    스와 대립하는 영국과 동맹을 맺었고, 1748년 아헨조약에 따라 그의 지위는 확보하였지만, 슐레지엔·파르마·롬바르디아
    지역 일부를 상실하였다. 그 뒤 테레지아는 재정개혁과 상공업 진흥에 힘을 기울였으며, 프랑스·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슐레지엔의 회복을 위하여 1756~1763년에 프로이센과 7년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778~1779년 바이에른 계
    승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였고, 남편 프란츠 1세와 아들 프란츠 요제프 2세의 재위기간에도 사실상의 여제로서 오스트
    리아의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 농민보호 및 내정개혁에 노력해 오스트리아를 근대적 국가로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의 치적으로는 대학의 개혁(1749), 법전의 개정(1769), 고문의 폐지(1776), 모범적인 초등학교 창설, 오
    스트리아의 근대적 국가로서의 통일 등을 꼽을 수 있다.]

     

     

     

     

     

     스와로브스키
     스와로브스키는 1895년 오스트리아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D. Swarovski, 1862∼1956)가 티롤주의 와튼즈에 세운 크리스털 제조 및 판매회사이다. 작은 장식품부터 패션제품에 이르기까지 10만 개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 크리스털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창의성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연마기계를 개발하였고,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땐 크리스털 조각들을 감쪽같이 붙일 수 있는 투명한 접착제를 발명하여 크리스털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제12회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때 크리스털 마우스를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도약을 하였다. 이 기념품은 식기와 고급 장식품에만 사용되던 크리스털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에도 다양한 동물 기념품을 제작하였고, 실버크리스털 라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주제품 라인은 크게 실버크리스털, 크리스털 메모리, 셀렉션, 그리고 보석·시계 등을 포함한 패션으로 구분된다. 이 라인에서 생산된 130여 개의 제품이 세계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지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지사 스와로브스키 코리아가 위치하고 있다.

     

     

     

     

    남들은 다아는 스와로프스키 나는 처음이다. 들은 바도 없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크리스탈이라는데 처음 듣는 것이라니 .

    크리스탈의 화려함에 놀랐다. 그 본고장이 여기라니.

     

     

     

     

     

    촬영금지라 찍을 수 없었지만 몇개만 보았다. 한참을 보았으나 가격은 세다.

     

     

      

     

     

    스피탈 교회(Spitalkikirche)

     

     

     

    한 시간 정도 인스부르크를 보았지만 역시 대충이다. 아쉽다. 개선문, 안나상 등 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할 수 없이 다음 일정으로

     

    버스를 탔다. 가을 풍광이다. 11월 중순인데.

     

    이제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로 간다. 바로 퓌센이다.

     

     

     퓌센 [Fussen]
     [출처: 브리태니커 ; 독일 남서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도시.
    바이에른 ...레히 강을 끼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알고이 알프스 산맥의 동쪽 기슭에 있다.
    로마 국경 주둔지였던 이곳은 베네딕투스 수도회 대수도원인 장크트마그누스(628 설립) 주변에서 발달했으며, 1294년경 자치시
    로 인가받았다. 1745년 이곳에서 체결된 조약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에서 바이에른의 철수를 초래했다. 1921년 파우렌바흐
    의 작은 유황광천이 퓌센으로 편입되었다. 장크트마그누스 대수도원과 교회가 1701~17년 지금의 형태로 세워졌으며, 로마네스
    크 양식의 성당 지하실이 있다. 그밖의 유적으로 호에스 슐로스(1270~1505, 전에는 아우크스부르크 승정왕들의 여름 거주지였
    음)와 몇몇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있다. 슈반 호수 위로 높이 솟아 있는 호엔슈방가우 성과 푈라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노이슈
    반슈타인 성이 근처에 있다.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이자 관광휴양지이다. 주로 의류와 밧줄 등이 생산된다. 인구 13,954(1994).]

     

     

     

     

     

     

     

     

     

     

     

     

     

     

     

     

     

     

     

     

     

     

     

     

     

    가끔 보이는 흰 눈덮힌 산
    교통표지 거의 없는 한가로운 길



    종종 보이는 단풍든 나무



    큰 나무로 숲을 이룬 곳곳



    가끔 나타나는 작은 마을의 그림같은 집 들

     

    곳곳에 보이는 알프스산 눈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

     

    중턱에 걸린 안개



    퓌센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조금씩 오는 비로 더 흠뻑 젖었다. 가슴까지. 걍 버스를 내려 걷고 싶은 길이기도 했다.

     

     

     

     

     

     

     

     

     

     

    백조의 성 오르는 마을에서 내렸다. 오르는 방법은 마차, 버스,도보다. 버스가 가장 대중적이다.

     

     

     

     

     

    차에서 내려 좀 올라가 야 한다.
     
    집도 그렇고 산야도 그렇고 아름답다.

     

     

     

    오른쪽에도 성이 보인다.  이 성은 ‘백조의 성’을 지은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호엔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

    이 있는데,

     

     

     

    루트비히 2세

    가 어렸을 때 자주 다녔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이는 낭만을 익히고

    배우고 그래서 또 그런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이슈반스타인성을 지었다고 한다.

     

     

     

     

     

     

     

    찍긴 찍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가문을 나타내는 것인가? 그 가의 문장인가? 아니면 문패구실을 하는 것인가? 자세히 보니

    다 다르다. 조금씩 . 집 모양 같은데.


     

     

     

     

     

     

    버스 유리창에 아름다운 모습이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노이슈반슈타인 성(독일어: Schloß/Schloss Neuschwanstein)은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지은 성이다. '신 백조
    석성'(新白鳥石城)의 의미이다.
    대포의 발명으로 성이 이미 쓸모가 없어진 시대였으므로
    루트비히 2세는 순수히 취미로서 성을 지은 것이다. 이 순수한 취미 때
    문에
    바이에른 경제는 파탄이 났다. 바이에른루트비히 2세는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고 자신이 죽
    으면 성을 부숴 버리라고 유언했다. 물론 성은 관광지로 최고였으므로 부서지지 않고 지금도
    바이에른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
    어 있으며,
    디즈니랜드의 성도 이 성을 본뜬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또한 루트비히 2세와 같은 말을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성은
    부숴지지 않았다.]
     루드비히 2세
     [루드비히 2세. 그는 당시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왕으로서, 1845년 8월 25일에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와 어머니 마리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유별나게 예민하고 특히 성장하면서부터는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
    과 같은 예술분야에 심취하기 일쑤였고 일찍이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이 성을 자신이 직접 설계하
    게 된 계기가 된다.
    1861년 2월 2일 그가 16세 되던 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한 뒤부터 바그너의 열성적인 팬이 되기 시작했
    고 그것이 그의 나머지 인생과 바그너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864년 타계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약관
    18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이제는 과거와 같은절대군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자유화와 자본주의 시대가 왕의 권
    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하여 상황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체질적으로 워낙에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고 음악과 시와 미술과 같은 예술세계속으로 빠져들기 좋아하는 심약하고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므
    로 궁전이 있는 뮌헨을 가급적 피하려 들었고 오히려 궁전을 떠나 남부지방의 알프스 부근의 전원에 있을 때 더욱 행복
    감을 느끼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5분? 10분 오르니 그리 높지 않은 산 중턱 . 선두를 좀 따라가니 출렁다리 이곳을 통해 등산도 하는가 보다.

    출렁다리에서는 앞에 백조의 성이 보이며 멀리 풍경이 아름답다. 역광이라 밝지 못하다.

     

                                                                                                                                                          길을 따라 가면 출렁다리다.

     

     

     

                                                                                        성을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가는 길

     

     

     

    앞에 보이는 것은 포르겐 호수(Forggensee)이고 그 주변은 퓌센의 평원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성이다.

     

     

       
       
       
       
       
       
       

     

     

     

         

     

     

    11월 중순인데 독일 퓌센지방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노루귀가 많이 있었다. 꽃도 한 송이 보았

    지만 계절을 잊은 건지 피는 시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잎이 다 있는 것으로 보아 다 피었다 진 것으로 보인다.

    노루귀가 꽃을 . 곷봉오리도 하나 보인다. 개불알풀도 있고.사진술이 그래서 제대로 담지 못한 것이 영.

     

     

     

    점심은 이곳에서

     

     

     

    음식점 간판이 예쁘다.

     

     

     

     

    점심을 먹고 로텐부르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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