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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팔(로텐부르크/뷔르쯔부르크/프랑크프르트)
    나의 여행기 2009. 12. 21. 15:40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팔(로텐부르크/뷔르쯔부르크/프랑크프르트)

    11일 째 시작이다.

     

    결국 로텐베르크에서는 중세유럽의 동화같은 고성. 수박 겉 핥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상태로 떠나야 했다. 관광 상품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침에 본 것으로 위안으로 삼아야지 않겠는가?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아쉬움만.

     

    로덴부르크에서 뷔르쯔부르크까지는 낭만가도라 불리는 구간 중 일부다.

     

     

     

     

     

     

    낭만가도? 계속이다.

     

     

     

     

     

     

     

     

     

     

     

     

     

     

     

     

     

    본래 여행중에는 잠을 자지 않는 나는 주변 풍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천혜의

    땅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높은 산이 없다. 구릉지다. 집들은 그림 같고 . 차가 많이 다

    니지 않아 한가롭다. 집 밖에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붕의 기울기가 심한 것으로 보면 비나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아닌데

     

    전원을 달린다.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는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중간 중간 차를 세워 풍경을 찍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좁은 길을 감안 하면 주차

    공간도 별로 없다. 이런 곳은 차를 렌트해 천천히 다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텐데. 하긴

    실속여행으로 그런 상품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시간과 경비가 문제다.

     

     

     

     

     

     

     

     

     

    도로에는 교통표지가 거의 없다. 규제가 거의 없다는 뜻이리라. 이곳에 와서는 과속방지

    용 카메라를 본 일이 없다.그만큼 믿는다는 뜻이리라. 과속하지도 않고 사고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초원에서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가축이 보인다. 평화롭다.

    2차선 도로인데 제한 속도는 80km이다. 우리보다 여유가 있다. 우리보다 차가 적은가?

     

     우리 보다는 규제

    속도가 높다. 우리는  60km인데.

     

     

     

     

    이탈리아에서 마을마다 성당이 있었는데 이곳도 그런 곳이 아닌가. 암튼 뾰족탑이 많이

    보인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이것도 꿈이겠지.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마음도 가슴도 끝없이 펼쳐진다.

    어쩌다 보이는 차량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차량도 별로 없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많은 농산물을 볼 수 있다. 감자인가? 감자 치고는 좀 커 보인다.

     

    감자다

    .

     

     

     

     

     

     

     

     

     

     

     

    죽 벋은 길이다. 왜 농부들은? 보이지 않는가? 눈비가와서. 그러나 풍성해 보인다.낭만인가?

     

    여유있는 차선이다. 통행하는 차량이 많지 않으니 언제고 추월할 수 있는 차선이다.

     

     

     

     

     

     

     

    환히 앞이 보이는 이런 길에 화살표로 굴곡을 표시했으나 필요가 없어 보인다. 곧은 길이 연속되니

     

    이런 굴곡이라도 표시해주어서 운전자에게 주의를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또 감자다.

     

     

     

     

     

     

     

    어느덧 뷔르쯔부르크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반 걸려서 이 곳까지

     

     

     뷔르츠부르크[Wurzburg]
     [뷔르츠부르크
    독일이 자랑하는 관광코스의 하나인 로만틱 가도가 시작되는 도시이다. 독일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마인
    강과 인접해 있는 옛 도시로 대학 주변이라 도시 전체가 밝고 활기차다.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와인과 맥주, 기계, 종이, 화학, 섬유 등의 여러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는 도시다. 11~13세기의 주교
    구청을 비롯한 많은 중시의 성당과 바로크양식의 주교관, 로코코 양식의 궁전 등 중세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1582년에 창립된 뷔르츠부르크대학은 뢴트켄(Wilhelm Conrad Roentgen)이 X선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 외에 교원양성
    소, 국립음악학교 등이 있다.
    리멘 슈나이더의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마리엔베르크 요새와 레지덴츠 정원 등이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풀잎이라는 뜻의 ‘뷔르츠(Wurz)’와 언덕이라는 의미의 ‘부르크(Burg)’에서 알 수 있듯이 풀잎 무성한 언덕이 많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북서부에 있는 도시
     뷔르츠부르크는 운하화된 마인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켈트족의 마을과 로마군의 주둔지가 있었던 이곳은 704년 비르테부르흐로 처음 문헌에 나타났다. 741년 장크트 보니파티우스가 이곳에 주교관구를 세웠으며 12세기까지는 주교들이 프랑켄 동부지역에 대한 공작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주교들의 권력에 대항해 연이어 반란이 일어났으나, 1400년 시민들의 항복으로 끝났다. 뷔르츠부르크는 황제가 사자공 하인리히를 파문하고 그에게서 바이에른 공작령을 빼앗아 비텔스바흐가(家)의 오토에게 준 1180년의 의회를 포함해 수차례의 제국의회와 평의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율리우스 주교가 통치하면서(1573~1617) 발전했고, 18세기에는 쇤보른 가문의 주교들이 이곳에 많은 건물을 지었다. 주교관구는 1802년에 세속화되었으며, 이 도시는 1803년 바이에른에 편입되었다. 1805년 라인 강 연방에 속한 뷔르츠부르크 대공령의 수도가 되었다가 1815년 바이에른에 반환되었다. 새로운 주교관구는 1817년에 세워졌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이 도시는 거의 파괴되었으나 전후 재건사업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1719~44년에 발타자르 노이만이 세운 웅장한 바로크식 주교관저도 부서졌으나, 조반니 티에폴로의 유명한 프레스코가 있는 계단은 별 피해가 없었다. 다른 유적으로는 중세시대의 마인 다리, 율리우스 병원(1576~85), 시청사, 원래 켈트족 요새 및 주교관저(1261~1720)였던 마리엔베르크 요새 등이 있다. 이 요새에 있는 원형 교회(706)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 1034년 착공되어 1189년 봉헌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이 도시가 이전에 교회 공국의 수도였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밖의 유명한 중세시대 교회로는 마리엔카펠·노이뮌스터·장크트부르하르트 교회 등이 있으며, 바로크·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로는 하우거슈티프츠키르헤와 순례 교회였던 케펠레(노이만이 세움)가 있다. 1403년에 대학교가 세워졌으나 불과 몇 년 뒤에 문을 닫았다. 지금의 뷔르츠부르크대학교는 1582년 율리우스 주교가 세웠다.한때 프랑켄 공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니더프랑켄 지방 바이에른 행정구의 행정소재지이며, 포도재배와 철도·수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강철·자동차·종이·인쇄·전자제품·목재·피혁·포도주 제조 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인구 132,687(2003 추계).

     

     

     

     

     

     

     뷔르츠부르크 궁전(영어:The Würzburg Residence 독일어: Würzburger Residenz)
     뷔르츠부르크 궁전(영어:The Würzburg Residence 독일어: Würzburger Residenz)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주교 궁전이다. 세계 2차 대전중에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었으나 복구되었다.
     The Würzburg Residence (German: Würzburger Residenz) is a palace in Würzburg, southern Germany. Johann Lukas von Hildebrandt and Maximilian von Welsch, representants of the Austrian/South German Baroque were involved in the construction, as well as Robert de Cotte and Germain Boffrand, who were followers of the French Style. Balthasar Neumann, architect of the court of the Bishop of Würzburg, was the principal architect of the Residenz, which was commissioned by the Prince-Bishop of Würzburg Johann Philipp Franz von Schönborn and his brother Friedrich Carl von Schönborn in 1720, and completed in 1744. The Venetian painter Giovanni Battista Tiepolo, assisted by his son, Domenico, painted frescoes in the building.Interiors include the grand staircase, the chapel, and the grand salon. The building was dubbed the "nicest parsonage in Europe" by Napoleon
    . It was heavily damaged during World War II
    , and restoration has been in progress since 1945.
     File:Residenz Wuerzburg Vorderan.jpg


    File:Würzburger Residenz, Gartenfront.jpg


    http://en.wikipedia.org/wiki/File:W%C3%BCrzburger_Residenz,_Gartenfront.jpg

     

     

     

     

     

     

     

     

     

     

     

     

     

     

     

     

     

    처음 볼 관광지는 뷔르쯔부르크의 레지던츠 궁전이다. 여기도 사전 지식없이 당도했다. 뭘 알겠는가?

    꽤 크다.


     

    바로크식 건물 . 이곳도 외부 관람이다.



     

     

    정원 입구

     

     

     

     

    외관만 보고 정원으로 희망정원이란다. 언뜻 프랑스에서 본 정원이 생각난다. 기하학적인 모양의 나무와 화단 여기도 그런 것이

    좀 보인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자유스럽게 자란 나무가 많다. 전지한 나무도 있지만 영국 버킹검 궁에서 보았던 자연적인

    정원도 함께 생각이 난다. 영국과 프랑스식 정원의 합집합 같다.

     

     

     

     

     

     

     

     

     

     

     

     

     

     

     

     

     

     

     

     

     

    이 부분 정원은 영국 버킹엄 궁 정원 같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아름다운 정원사가 있었다.아름답게 꾸미긴 했지만 제멋대로 자유롭게 자라지 못하는 그 가 불쌍해보이기도 하는 내 생각

     

    은 어쩔 수 없다.

     

     

     

     

     

    독일 뷔르쯔 부르크 레지덴치 궁전의 호프 정원

     

     

     

    건물앞 이 정원은 프랑스 베르샤이유궁 정원과 흡사하다.

     

    궁내부도 볼 것이 많다는데.

     

     

     

     

     

     

     

     

    담쟁이 덩굴이 아름답다.성벽에 올려진 담쟁이 덩굴은 오랜세월을 말해준다. 나무도 연륜이 많다.

     

     

     

    영국의 정원, 프랑스 정원의 특징만을 모은 정원 같다.

     

     

     영국  독일  프랑스
     
     
     
     
     
     

     

     

     

     

     

     

     

     

     

    박물관 입구

     

     

     

     

     

     

     

    뷔르쯔부르크 전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요새로 이동한다. 뷔르쯔부르크 시가 중 언덕이다. 강을 끼고 있다. 요새가 있을

    만한 적지로 보인다. 강을 넘어 입구로. 비가 부슬부슬

     

     

     

    마인강

     

     

     

     

     

     

     

     

     

     

     

     

     

     

     

     

     

    지나가는 문마다 화려하고 예쁘지 않은 좀 무서운 듯한 투박한 좀 무거운 듯한 문들이다.문을 닫아 놓으면 쉽게 침입은 불가하

    다. 그러니 요새이겠지.

     

     

     

     

     

     

     

     

     

     

     

     

     

     

     

     

     

     

     

     

     

     

     

     

     

     

     

    요새에서 바라본 시가-요새 성벽 밑으로 포도밭이다

    뷔르쯔부르크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도저히 이런 곳을 넘어 들어갈 수는 없겠지.

     

     

     

    정말요새다.

     

     

     

     

     

     

     

    우리나라의 산성하고는 차이가 많다.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옮긴다. 고속열차도 보인다.

     

     

     

     

     

     

     

     

    겨우살이다.

     

    요새를 출발한지 1시간 20분만에 프랑크프르트 뢰머 광장에

     

     [유럽의 관문도시, 프랑크푸르트]
     
    ['뱅크푸르트(Bankfurt)'라고 불리우는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상업의 도시로 독일 최대공항이 있고 현대적인 건물들
    이 즐비한 도시이다. 8세기 샤를르마뉴 황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12세기에 들어서 유럽 각국의 상
    인들이 모여들어 견본 시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독일 역사를 짊어진 역사적 관광지로 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장크트 파울 교회에서는 독일 제
    1회 국민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의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생
    가가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52명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벽에 장식되어 있는 구시청 건물 뢰머(Romer)와 오페라하우스
    가 인상적이다. 매년 많은 세미나와 국제회의가 개최되는 등 독일 최대이 회의 센터이기도한 프랑크푸르트는 유명한
    도서전시회(Book Fair)가 열린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독일어: Frankfurt am Main)은 독일
    중서부 헤센 주
    에 있는 도시로, 간단히 줄여서 프랑크푸르트(Frankfurt)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구는 약 67만명(2007)이다. 라인 강
    의 지류인 마인 강
    연안에 위치해 있다. 헤센 주
    최대의 도시이며, 베를린
    , 함부르크
    , 뮌헨
    , 쾰른
    다음으로 독일
    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독일
    의 행정수도는 베를린
    이지만, 경제적 수도는 이 도시라 할 수 있을 만큼 독일에 경제적인 중심을 차지한 곳이다. 이 도시에는 유럽 중앙 은행
    이 들어서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증권 거래소
    도 위치하고 있어서, 영국
    런던
    과 함께 유럽의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연합
    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위도에 위치한 관계로 동지에는 오전 8시 22분에 해가 떠서 오후 4시 26분에 해가 저물어 낮 시간이 8시간밖에 안 된다.또한 유럽 중앙부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도시 남서부에 2005년
    기준으로 세계 제2위 규모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독일어: Flughafen Frankfurt-Main, 국제항공코드: FRA)이 자리잡았으며, 이곳에 대한민국
    인천(서울)
    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국제공항과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5번(나치
    정권이 만든 독일 최초의 고속도로노선)과 3번 아우토반
    (독일 고속도로)이 만나는 도로교통의 요충지로서 자동차 및 화물수송차량이 많이 오간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Frankfurt Hauptbahnhof)은 쾰른
    의 중앙역과 함께 유럽 철도
    교통의 대중심지이다.또한 2007년
    에는 독일의 도시중에서 독일 통신DPA 가 조사한 결과 범죄 발생률 1위 라는 불명예를 안았다.프랑크푸르트암마인은 경제의 중심지로 번창하는 현대적인 대도시이지만, 상당히 유서깊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12세기
    에 이미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으며, 18세기
    에는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도 이 시기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활동하여, 이 도시는 괴테
    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이후 마인 강
    라인 강
    의 수상교통의 중심지, 또 철도의 중심지로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으로 시가지가 크게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 경제 기적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하게 되었고, 시가지도 말끔하게 정비되어, 유럽
    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층건물이 시 중심가에 밀집되어 있다. 비록 구 서독
    의 수도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보유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를 비롯한 문화·교육 시설도 많으며, 매년 10월 세계 최대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1968년 사회문화혁명(이른바 68혁명
    )당시에는 독일 내 진보적 민주개혁세력의 수도로서, 간혹 폭력사태과 시위가 발생하기도 하면서, 유럽의 각종 사회적 변화를 주도했다.독일
    경제의 중심지이고 삼성
    , 현대
    를 포함한 대한민국
    의 여러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대한민국 교민
    들도 이곳에서 많이(약 1만 명 이상) 생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총영사관도 개설되어 있다.한편, 이 도시는 2006년 FIFA 월드컵
    축구
    대회의 개최지 중 한곳이기도 했다. '발트슈타디온'(Waldstadion)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이천수
    의 프리킥과 안정환
    의 중거리 슛 등에 힘입어 토고 대표팀
    을 2:1로 격파하여, 프랑크푸르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월드컵
    도전역사상 최초로 해외에서 첫 승리를 이룩한 도시로 남게 되었다.

     

     

     

     

    이곳이 뢰머 광장이란다. 로마인들이 살았던 곳이라나 . 바로 역사의 흔적이라고.

    이곳에는 시청사 일부, 대성당 , 오스트차일레, 정의 여신, 분수 등이 볼 것이라고 했으나 차분히 보기전에는 뭐가뭔지 얄팍한 사

    전 지식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좀 걸어나가니 마인강이 있고 백조가 한가로웠다.

     

     뢰머광장 [ Roemerplatz][Römerberg]
     
    뢰머광장(Roemerplatz)에 위치하고 있는 시청사,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뢰머광장앞 정의의 여신 분수 또한 유명한 관광거리이다.
    뢰머광장은 프랑크푸르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해있는데, 뢰머(로마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라고 한다.이 곳에는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는데, 광장 주변으로 구시청사오스트차일레가 있고, 구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에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깊은 곳이며,프랑크푸르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한다. 구시청사 맞은편에 목조건물들이 있는데,이것은 통칭 오스트차일레라고 한다.]
     Römerberg is also the main square in Frankfurt's old town.Römerberg is a municipality in the Rhein-Pfalz-Kreis
    , in Rhineland-Palatinate
    , Germany
    .It is situated on the left bank of the Rhine
    , approx. 5 km southwest of Speyer
    .History:The municipality of Römerberg was established by the fusion of the municipalities of Berghausen, Heiligenstein and Mechtersheim in 1969. The seat of the municipality is in the village Heiligenstein.
     

     

     

    오스트차일레

     

    15세기에 쾰른비단상인들이 하프팀버(Half-Timber) 양식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오스트차일레를 직역하면 "동쪽의 줄" 정도가 된다. 즉,

     

    광장 동쪽에 일렬로 줄지어 서있는 건물들이라는 뜻. 

     

     

     

     

     

     

     

     

     

     

     정의의 분수(Justitia-Brunnen)[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
     
    광장 중앙에 있는 정의의 분수(Justitia-Brunnen)는 광장의 상징이나 마찬가지. 보통은 법원 앞에 있어야 할 여신상이 시청 앞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법과 정의를 대표하는 상징인 정의의 여신은 고대 이집트의 삐아트[ppaat]와 그리스의 디커[dike]로
    부터 비롯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정의의 여신을 유스티치아[justitia]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정의를 뜻하는 영어
    저스티스[justice]도 여기서 생겨났다. 저울은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됨을 의미하고,칼은 법과 질서를 어긴 사람에 대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이며, 두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모습은 시시비비와 선악을 판단할때 주관과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공평함을 상징한다.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

     

    1920년부터 14세기까지 왕실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5세기에 시정부 소유의 예배당이 되었다. 본래 고딕양식의 건물이었다가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후기 고딕양식의 건물로 변화되었다.전체적으로 단순해보이지만 아름답다.

     

     

     

     

     

     

     

     

     

     뢰머=시청사[Römer (German surname, "Roman")]
     1405년 프랑크프르트 시의회가 귀족의 저택 3채를 구입 개조해서 시청사로 사용해왔다.2층의 넓은 홀은 1562년 프랑크프르트에서 처음으로 황제대관식이 거행된 이래 황제의 넓은 방으로 불린다.이곳에는 역대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있으나 관광객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The Römer (German surname, "Roman") is a medieval building in Frankfurt am Main, Germany, and one of the city's most important landmarks. It has been the city hall (Rathaus) for 600 years. The Römer merchant family sold it together with a second building, the Goldener Schwan (Golden Swan), to the city council on March 11, 1405 and it was converted for use as the city hall. The Haus Römer is actually the middle building of a set of three located in the Römerberg (a plaza).The Römer is not a museum as it is actually used by the city for various purposes, for example as a Standesamt or civil registration office; the wedding rooms are located in the first and second floor of the Haus Löwenstein.
     

     

     

     

     

     

     

     

     

     

     

     

     

     

     

     

     

     

     

     

     

     프랑크프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 (German: Frankfurter Dom, officially Kaiserdom Sankt Bartholomäus)
     대성당은 카롤링 왕조 시대인 13-14C에 건립되었으며, 15C 고딕식 탑으로 다각형의 박공관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유서 깊성당으로 `카이저 돔`이라고도 한다.그리스의 무덤교회가 있으며 15c 교회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제후들이 잠들어 있다. 332개의 계단을 따라 95미터의의 탑에 올라가면 시가지와 타우나스산을 볼 수 있다.

     

    Frankfurt Cathedral (German: Frankfurter Dom, officially Kaiserdom Sankt Bartholomäus) is a Gothic church located in the centre of Frankfurt am Main, Germany. It is dedicated to Saint Bartholomew.
    Frankfurt Cathedral was an imperial collegiate church, termed Dom in German - a synecdoche for all collegiate churches used totum pro parte also for cathedrals -, and thus translated as cathedral in English. St. Bartholomew's is the main church of Frankfurt and was constructed in the 14th and 15th centuries on the foundation of an earlier church from the Merovingian time.
    From 1356 onwards, emperors of the Holy Roman Empire were elected in this collegiate church as kings in Germany, and from 1562 to 1792, emperors-elect were crowned here. The imperial elections were held in the Wahlkapelle, a chapel on the south side of the choir (Hochchor) built for this purpose in 1425 (See the Plan to the right) and the anointing and crowning of the emperors-elect as kings in Germany took place before the central altar–believed to enshrine part of the head of St. Bartholomew – in the crossing of the church, at the entrance to the choir (See the Plan to the right).
    In the course of the German Mediatisation the city of Frankfurt finally secularised and appropriated the remaining Catholic churches and their endowments of earning assets, however, leaving the usage of the church buildings to the existing Catholic parishes. Thus St. Bartholomew's became of the city's dotation churches, owned and maintained by the city but used by Catholic or Lutheran congregations.
    St. Bartholomew's has been recognised as symbol for the national unity of Germany, especially during the 19th century. Although it has never been a bishop's seat, it was the largest church in Frankfurt and its role in imperial politics made the church one of the most important buildings of Imperial history and justified the use of the term (imperial) cathedral for the church since the 18th century. In 1867, the St. Bartholomew's was destroyed by a fire and rebuilt in its present style.
    Between October 1943 and March 1944 the old town of Frankfurt, the biggest old Gothic town of Central Europe was destroyed by six bombardments of the Allied Air Forces. The devastation of the old imperial town was intended to reduce public support for the war.[citation needed] The greatest losses occurred on the 22nd of March 1944. Over one thousand buildings of the old town, the most of them being half-timbered houses were destroyed.
    The St. Bartholomew's suffered severe damage and the interior was burned out completely. The building was reconstructed in the 1950s. The height of the spire is 95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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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강의 지류 마인강

     

     

     

     

     

    겨우 30분 보았는데 또 이동

     

     

     

     

     

     

     

    점심먹으러

     

     

     

    이곳으로

     

     

     

     

     

     

    식당에서 찌개 박박 길손에서 점심을 먹고 프랑크프르트 공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여정이다. 다시 12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
     프랑크프르트 번화가다. 프랑크프르트의 전차도 보인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10일을 넘긴 해외여행이었다.
    많이 보려고한 것은 욕심이었다.
    시간과 경비가 충분하지 못해 욕심을 채우지는 못했다.
    수박 겉이라도 보았으니 나에게는 큰 성과다.
    여행기라고 하기엔 그렇고 단순한 푸념에 불과하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라는 정도.
    보시는 분들에게 행운이........
    감사합니다.
    하나투어 김옥연 가이드님께 감사드립니다.
    현지에서 가이드를 해주신 현지 가이드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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