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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삼(콜로세움)
    나의 여행기 2009. 12. 11. 23:50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삼(콜로세움)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삼(콜로세움)

     

     

     

     

     

     

     

     

     

     

     

     

     

     

     

    콜로세움이 보인다. 버스 안에서 네 컷

     

     

     

     

    정말 말로만 듣던 콜로세움 이제 보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이 있었다. 빨리 가까이 가보자. 오른쪽 콜로세움만 보면서

    시간은 30분만 준다. 또 부족하다. 들어가는데 5분 나오는데 5분 볼 시간은 10여분 정도 또 부족하다.

    콜로세움 경기장만 사진에서 보았는데 아 이것은 무엇인가. 개선문도 아니고 독립문도 아니고 아 여기에 콜로세움이 원형경기장

    이라 했으니 경기장 출입문인가? 궁금하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라고...........

     

    콜로세움 경기장앞 앞 도로 건너편에는 얕으막한 언덕 무엇이 있었던 곳일까?

    콜로세움 바로보고 왼쪽에도 벽돌 성 파손되기는 했지만 어떤 모습이었을까? 콜로세움도 복원을 하지 않는데 이런 부분까지 복

    원은 힘들겠지

    콜로세움 층층이 올라간 관광객도 많다.2시간 정도는 있어야 표를 사고 줄을서 기다렸다. 볼 수 있겠지. 꿈이다. 이것도 수박 겉

    핥는구나. 얼마나 튼튼 하게 지었길래 아직도 건재하구나.


    [콜로세움(Colosseum)]

    로마에 있는 거대한 원형경기장.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좌석과 장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11월 중순인데 피는 꽃이 있다.

     

     

     

     

     

     

     

     

     

    [콜로세움 벽돌벽]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로마 시대 개선문 중 가장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개선문이며, 규모가 가장 크고, 후기 로마시대의 문화 예술의 걸작품이다. 콜롯세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으며, 오른편으로 포로 로마노가 위치하고 있다. 로마에서 가장 큰 이 개선문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 막센티우스와 치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으로 AD 315년에 만들어졌다.

    높이 21미터, 너비 25m의 세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독립문을 비롯하여, 인도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등은 모두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한 것인데, 파리 개선문의 원조가 된 것이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이이 개선문을 옮기려 했었다니.

     

    그래서 만든 것이 파리의 개선문 . 욕심이 또 다른 명품을 만들었네.

     

     

     

     

     

     

    여정이 빠듯한 관광이라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경기장 내부를 못 보는 구나!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

     

    이곳에서부터 버스로 관광은 힘들다고

     

    작은 차로 옮겨타야 가능하단다. 이름하여 벤츠관광

     

    하긴 그 옛날 터를 잡을 때 미래관광을 위해 넓은 길을 만들 수는 없었겠지.

     

    원형경기장 내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벤츠관광을 시작했다.

     

    [팔라티누스 언덕]

     

     

     

     

     

     

     

     

     

     

     

     

     

     

     

     

     

     

     

     

     

     

    대연기장(대전차경기장)Circus Maximus로마에서 가장 넓은 전차경기장

     

    역사상 최대의 운동경기장으로 꼽힌다. U자형 구조로 세 면에 좌석이 배치되고 경기장 한가운데 낮은 벽을 세워 벽을 따라 돌며 전차경기를 벌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세기) 때는 15만 명을 수용하도록 재건되었다. 그뒤 황제들이 이를 더욱 넓혀 콘스탄티누스 대제(4세기) 때는 가로 610m, 세로 190m 정도의 크기에 25만 석 규모로 커져 그뒤에 지은 어느 경기장보다 더 넓었다. 지금은 팔라티누스 언덕과 아벤티누스 언덕 사이에 터만 남아 있다.

     

    아벤티누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대전차경기장이다.맞은편 언덕은 팔라티누스언덕

     

    이곳에서 영화 벤허의 전차경기 촬영을 했다는데 . 아직도 그 영화의 전차경기장면이 겹쳐진다. 옛날의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전차 경기를

     

    즐겼을 시민들과 황제의 환호성이 들린다. 하긴 지금도 이만한 경기장은 없지 않은가?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면적이 75,469㎡ 

     

    가로 610m, 세로 190m를 주경기장으로 보았을 때는 대전차 경기장의 면적은 115,900㎡가 된다. 야 정말 크다. 전차 경기를 하려니 100m,200m

     

    가지고는 안되겠지.

     

     

     

     

     

     

     

     

     

     

     

     

     

     

     

     

     

    동방교회 종루다.

     

     

        

     

     

    진실의 입이 있는 동방교회 입구다.난 알지도 못했던 교회이고 이곳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로마에 와서다.

     

    얼마나 무지했나?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기에 그나마 아하! 그렇구나.

     

    관광객이 줄을 섰다.

     

    손 집어넣고 한 장씩 찍기에 시간이 좀 걸린다.

     

    아무 내용도 모르고 나와집사람도 따라했다.

     

     

     

        

     

     

     

     

    오드리햅번은 크게 놀랐만.........

     

    알고  있기에 재미가 덜하다.

      

     

     

     

        

     

     

     

      

     

     

     

      

     

     

     

     

    동방교회[Santa Maria in Cosmedin]

     

    History

     

    The church was built in the 8th century during the

    Byzantine Papacy

    over the remains of the Templum Herculis Pompeiani in the

    Forum Boarium

    and of the Statio annonae, one of the

    food distribution centres of ancient Rome

    (another is to be found at

    theatre of Balbus

    ). A deaconry was a place where charity distributions were given to the poor, and it looks likely that such an institution would have been built near the Roman annona.

     

    Since it was located near many Byzantine structures, in 7th century this church was called de Schola Graeca, and a close street is still called della Greca. Greek monks escaping iconoclastic persecutions decorated the church around 782, when pope

    Adrian I

    promoted its reconstruction; the church was built with a

    nave

    and two aisles and a

    portico

    . Because of its beauty, the church received the adjective cosmedin (from Greek kosmidion), ornate. A sacristy and an oratory dedicated to St. Nicholas were added in the 9th century, by order of

    Pope Nicholas I

    , who also built a papal residence, but they were removed in 1085 by

    Robert Guiscard

    's

    Norman

    troops. It was in Santa Maria in Cosmedin that Popes

    Gelasius II

    (who had been

    Cardinal Deacon

    of Titulus S. Mariae in Cosmedin),

    Celestine III

    , and Antipope

    Benedict XIII

    (Cardinal Deacon of this church) were elected.A substantial restoration was accomplished in 1118–1124 under Alfanus, camerarius of

    Pope Callixtus II

    . After being acquired by

    Benedictines

    and a period of decay, in 1718 the church was brought up to a

    Baroque

    style, mainly expressed by a new façade, by

    Giuseppe Sardi

    in 1718. The Baroque additions, however, were removed in the restoration of 1894–1899 together with the coat-of-arms of

    Pope Clement XI

    .Among the former titular cardinal deacons of the church was

    Reginald Pole

    , the last Roman Catholic Archbishop of Canterbury.

    Architecture

    The church is home to the

    la Bocca della Verità

    , an ancient sculpture thought to be a drain covering, located in its portico; but it is worth visiting primarily for its exceptionally well preserved early medieval choir enclosure and its very fine

    Cosmatesque

    pavement. Its bell tower is the tallest medieval belfry in Rome.The current interior has a nave with two aisles: these are divided by four pilasters and eighteen ancient columns. In the side walls some of the old columns of the Statio Annonae are included. Other fragments of the ancient building can be seen in the crypt. Paintings from the 8th-12th centuries, in three layers, are preserved in the upper part of the nave and in the triumphal arch. The schola cantorum is from the 13th century, while the main altar is a red granite piece from 1123. The Easter candelabrum is also from the 13th century.The sacristy houses a precious 8th-century mosaic fragment brought here from the

    Old St. Peter's Basilica

    . Of the 18th-century restoration, the Crucifix Chapel and the Baptistry can be seen today.In a side altar on the left of the church is kept the

    flower crowned skull

    of

    St Valentine

    .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은

    이탈리아

     

    로마

    에 있는

    성당

    이다.

    발렌타인데이

    에 유래가 된

    성 발렌타인

    의 유골이 있다.

     

     

     

     

     

     

    동방교회를 보고 다시 이동 버스가 아니기에 골목골목을 잘 누빈다.

     

    몇 분 안걸려 시청사까지. 버스로 다닌다면 주차문제로 관광객이 많이 걸어야하는 불편이 생길 것이다.

     

    시청사란다. 시청사가 어떤 건축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른다.

     

     

     

     

     

     

        

     

     

     

     

     

     

    [로물루스 형제의 동상]

     

    마르스와 실비아라는 여사제 사이에서 태어나 늑대젖을 먹고 자라 알바롱가를 공격하고 테베로 강가로와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의 로물루스 형제의 동상이다. 형은 로물루스 동생은 레무스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동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이 캄피톨리오 광장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스토아철학이 담긴 〈명상록〉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오

     

    랫동안 서양에서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온 인물로서 정식 이름은 Caesar 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본명은 Marcus

     

    Annius Verus(~161). 121. 4. 26 로마에서 태어나 180. 3. 17 사망한 로마의 황제(재위161-180). 2000여년전 이미 이들은 기록으로 남겼기

     

    에 ...우리도 그때의 기록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광장과 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니. 좀 특이한 광장이었다.

     

    로마시청과 캄피톨리오 광장

    1538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

    로마의 신 중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는 유피테르(Iupiter)의 신전이 있던 캄피돌리오 광장에는 3개의 궁전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곳에는 현재 로마 시청과 함께 고대 로마의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는 캄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이 들어서 있다.

    광장 중앙에 있는 조각상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으로 원본은 누오보 궁전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고대로마 유적]

     

     

     

    시청 건물 뒤 벽면을 보니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특별히 벽을 새로 미장하지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유적은

     

    꽤나 많았다. 하기야 유적은 유적일뿐이다. 정리도 용이하지 않겠고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수많은 건물 기둥이 보인다. 그 사이사이 관광객이

     

    많다. 어쩜 고대로마의 모습이 이곳에 다 있겠다 싶었다.

     

     

     

     

     

     

     

     

     

     

     

    뭐라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우물이었는지?

     

     

     

     

     

     

     

     

     

     

     

     

     

     

     

    다시 벤츠를 타고(특별한 차는 아니었다.벤츠라는 것 때문에) 다음 장소로 이동

     

     

     

     

    마뉴엘 2세 기념관

     

    The Monumento Nazionale a Vittorio Emanuele II (National Monument to Victor Emmanuel II) or Altare della Patria (Altar of the Fatherland) or "Il Vittoriano" is a monument built in honour of

    Victor Emmanuel

    , the first king of a unified Italy, located in

    Rome

    ,

    Italy

    . It occupies a site between the

    Piazza Venezia

    and the

    Capitoline Hill

    . The monument was designed by

    Giuseppe Sacconi

    in 1885; sculpture for it was parceled out to established sculptors all over Italy, such as

    Leonardo Bistolfi

    and

    Angelo Zanelli

    . It was inaugurated in 1911 and completed in 1935.The monument is built of white

    marble

    from

    Botticino

    ,

    Brescia

    , and features stairways,

    Corinthian columns

    , fountains, an

    equestrian sculpture

    of Victor Emmanuel and two statues of the goddess

    Victoria

    riding on

    quadrigas

    . The structure is 135 m (443 ft) wide and 70 m (230 ft) high. If the quadrigae and winged victories are included, the height is to 81 m (266 ft).The base of the structure houses the museum of

    Italian Reunification

    .In 2007, a panoramic elevator was added to the structure, allowing visitors to ride up to the roof for 360 degree views of Rome.

     

    Unknown soldierThe monument holds the

    Tomb of the Unknown Soldier

    with an

    eternal flame

    , built under the statue of Italy after

    World War I

    following an idea of

    General Giulio Douhet

    . The body of the unknown soldier was chosen on 26 October 1921 from among 11 unknown remains by

    Maria Bergamas

    , a woman from

    Gradisca d'Isonzo

    whose only child was killed during

    World War I

    . Her son's body was never recovered. The selected unknown was transferred from

    Aquileia

    , where the ceremony with Bergamas had taken place to

    Rome

    and buried in a state funeral on 4 November 1921.

     

    Controversy

    The monument was controversial since its construction destroyed a large area of the

    Capitoline Hill

    with a

    Medieval

    neighbourhood for its sake. The monument itself is often regarded as pompous and too large.It has been described as being "chopped with terrible brutality into the immensely complicated fabric of the hill."It is clearly visible to most of the city of Rome despite being boxy in general shape and lacking a dome or a tower.The monument is also glaringly white, making it highly conspicuous amidst the generally brownish buildings surrounding it, and its stacked, crowded nature has lent it several nicknames. Foreign people sometimes refer to the structure by a variety of nicknames, such as "the wedding cake", whereas Romans commonly call it "the typewriter", although "the

    zuppa inglese

    " is also common. Despite all this criticism, the monument still attracts a large number of visitors. Italian President

    Carlo Azeglio Ciampi

    fostered the opening of the Vittoriano as a public forum and viewpoint over the City core. This new accessibility allowed visitors to become familiar with the landmark, enabling it to grow in popular, if not critical, reputation.

     

     

     

     

     

     

     

     

     

     

        

     

     

     

     

     

     

     

     

       

     

    임마뉴엘 2세 기념관은 일정에 없다.

     

    걍 먼거리에서 기념촬영하고 지나갔다.

     

    "웨딩케익"이라는 말만 기억에 남는다.

     

    높은 언덕에 더 높게 주변과는 다른 튀는 색으로 자랑하는 듯한, 뽐내는 ?

     

    군계일학 ?

     

    이탈리아는 충분히 그럴만한 임마뉴엘2세가 아닌가? 이탈리아를 통일시킨 그가 아닌가? 

     

    판테온 신전으로

     

    판테온 신전[Pantheon]

     

    BC 27년 정치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에 의해 착공된

    로마

    에 있는 건축물.

     

    원래는 평범한 고전적 신전으로 지어져 박공 지붕을 씌운 4각형 평면의 구조로, 4면에 콜로네이드[柱廊]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8~12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재건되었고 3세기초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 황제 때 부분적으로 개축되었다.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덧댄 원형 평면의 건물로서, 벽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올렸다. 세베루스나 카라칼라가 아그리파의 원래 건물에서 떼어낸 것으로 보이는 코린트식 기둥의 정면 현관은 3각형 박공이 있는 경사 지붕을 받치고 있다. 현관 아래쪽에는 높이 7m의 거대한 청동문 2짝이 있는데, 이런 종류의 대형문 중에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판테온은 그 규모, 구조 및 설계가 매우 특이하다. 지름이 약 43.3m이고 기단으로부터의 높이가 21.6m에 이르는 돔은 근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는 가장 크다. 돔 안쪽을 받치는 벽돌 아치는 가장 아랫부분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는데, 정확한 공사방법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가지 요소가 이 건물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다. 콘크리트에 쓰인 모르타르의 뛰어난 질, 세심한 골재 선택과 분류가 바로 그것인데 건물의 기초 부분과 벽의 아래쪽에는 무거운 현무암을, 그 위에는 벽돌과 응회암(화산회로 형성된 암석)을, 그리고 돔의 가운데 부분에는 부석(浮石)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것을 각각 사용했다. 그밖에도 밖에서 보았을 때 원통형 외벽 위쪽의 1/3 부분은 안에서 본 돔의 아래쪽 부분과 일치하며 내부의 벽돌 아치와 함께 추력(推力)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원통형 벽 자체는 벽 내부에 위아래로 연결된 벽돌 아치와 벽기둥으로 보강되며 두께는 6.1m에 달한다. 현관의 설계는 평범하나 건물의 본체는 혁명적인 것으로, 어마어마한 구형 공간이 돔 중앙에 있는 지름 8.2m의 '눈', 즉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만 채광되고 있다. 이는 외부보다는 내부를 더 중요시한 고대의 몇몇 거대 건축물 중 최초의 예일 것이다.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건물 내부는 알록달록한 대리석으로 입혀져 있다. 벽에 우묵한 곳이 모두 7군데 있는데 이 앞을 가리는 1쌍의 기둥은 그 수수해보이는 크기가 거대한 원형 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천장의 4각형 정간(井間)은 세베루스 때 새겨진 것으로 보이며 청동제 장미 장식과 몰딩으로 꾸며져 있다.판테온은 609년에 산타마리아로톤다, 또는 순교자 교회로 봉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장의 청동제 장미장식과 몰딩을 비롯한 청동 장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없으며 후기 르네상스에 스투코로 장식한 프리즈가 내부 돔 바로 아래에 덧붙여졌다. 이를 제외하면 건물은 아직도 원래 모습을 완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판테온(Pantheon)이란 말은 "모든 신들"이라는 뜻으로 범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아그립빠(Agrippa) 집정관이 B.C.25년에 건축하였다. 이후 두 번의 화재로 손상된 것을 하드리아누스(Adriano) 황제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직경과 높이가 43.2미터로 둥근 구의 형태에서 천장 밑 부분을 원통형으로 하여 건축하였다. 반구 형태의 천장은 우주를 상징하며 가운데는 태양을 상징하는 직경 9미터의 구멍을 뚫어 안에 태양으로부터 직접 햇빛이 발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노렸다. 판테온의 건축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철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 콘크리트 공법으로 직경이 43.2미터나 되는 돔(둥근 천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후에 판테온은 성당이 되었다 이태리 통일후에는 왕들의 묘를 이곳에 썼다. 통일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 2세와 그의 아들옴베르토(Umberto) 1세왕이 이곳에 묻혀있다.

    이곳에는 1520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라파엘로도 묻혀 있는 데 그의 친구 추기경 벰보가 쓴 묘비가 인상적이다. 그의 묘비에 이렇게 쓰여있다. "여기 라파엘로 산찌오(Raffaello Sanzio)가 묻혀있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만물의 위대한 어머니가 정복 당할까봐 두려워 하였고, 그가 죽었을 때는 대자연이 그와 함께 죽는 것이 아닌가 하여 떨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지원한 대표적인 건물로 아그리파가 지은 판테온이다

     

     

        

     

     

     

     

     

     

        

     

     

     

     

     

        

     

     

     

        

     

     

     

        

     

     

    야!

     

    이거 언제적 건물이야!

     

    [판테온] 듣던 낱말이긴 하지만 서양사 로마사는 문외한, 공부한 일 없지.

     

    잔벽돌,아취형 돌,벽돌,또 붙이고,떼어내고,깨지고

     

    이런 외벽 판테온 역사를,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돔 안으로

     

     

         

     

     

     

     

    [왼 1경당]

      

     

     

     

     

     

        

     

     

    [오2 경당]

     

    VictorEmmanuelIITomb

     

     

     

    http://ko.wikipedia.org/wiki/%ED%8C%90%ED%85%8C%EC%98%A8_(%EB%A1%9C%EB%A7%88

    )

     

     

     오1 벽감  오른쪽 첫 번째에 있는 벽감에는 작자 미상의 그림인 거들의 성모와 바리의 성 니콜라오(1686)가 있다.
     오1 경당  오른쪽에서 제1경당은 성모영보 경당으로, 멜로초 다 포를리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성모영보 프레스코화가 있다. 왼편에는 클레멘트 마이올리가 그린 캔버스화 성 라우렌시오와 성 아녜스(1645-1650)가 있다. 오른쪽 벽에는 피에트로 파올로 본치의 작품인 의심하는 성 토마스(1633)가 있다.
     오2 벽감  두 번째 벽감에는 15세기 토스카나파(派)가 성모의 대관식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오2 경당   제2경당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78년 사망)의 무덤이 있다.무덤에는 로마 독수리가 위에 얹혀진 거대한 청동 명판과 사보이 가의 문장이 있다. 무덤 위에 타오르는 황금 램프는 1947년 망명 중에 사망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기리는 것이다.
     오3 벽감  세 번째 벽감에는 일 로렌초네의 조각 성녀 안나와 축복받은 성모가 있다.
     오3 경당  제3경당에는 움브리아파(派)의 15세기 회화인 성 프란체스코와 성 요한 세례자 사이에 있는 은혜로운 성모가 있다. 이 그림은 종종 난간 위의 성모라고도 불리는데, 이 그림이 원래 현관 왼쪽의 벽감 안에 난간으로 보호된 채로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성모영보 경당으로 옮겨졌고, 1837년 이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오른쪽 벽에는 작자 미상의 캔버스화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판테온을 선물하는 포카스 황제(1750)가 있다. 바닥에는 세 개의 기념 명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지스몬다를 기념하는 문구가 라틴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 있다.
     왼1 벽감  첫 번째 벽감에는 안드레아 카마세이가 만든 성모 승천(1638)이 있다.
     왼1 경당  왼쪽에서 첫 번째 경당은 성지의 성 요셉 경당으로 판테온 비르투오지 신자회의 전용 경당이기도 하다. 이는 16세기에 이 경당에서 계속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만든 교회법(Desiderio da Segni)에 의해 결성된 예술가들과 음악가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이 모임의 초기 구성원들은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 야코포 메네기노, 조반니 만고네, 타데오 추카리, 도메니코 베카푸미, 플라미노 바카 등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로마의 저명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가입했는데, 베르니니, 코르토나, |알가르디 외에도 많은 인물이 있었다. 이 모임은 현재 칸첼레리아 궁전을 본부 삼아 교황청립 미술학원(Academia Ponteficia di Belle Arti)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경당의 제대는 가짜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제대 위에는 빈첸초 데 로시가 그린 성 요셉과 아기 예수가 있다. 양옆에는 거장의 한 명인 프란체스코 코차가 그린 그림들(1661)이 있는데, 왼쪽에는 목동들의 경배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세 동방 박사의 경배가 있다. 왼쪽의 회칠을 한 부조인 성 요셉의 꿈파올로 베날리아의 작품이며 오른쪽의 이집트 탈출 중의 휴식카를로 모날디의 작품이다. 궁륭 위에는 17세기 작품인 캔버스화들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루도비코 지미냐니쿠마이의 시빌라, 프란체스코 로사모세, 조반니 페루치니영원한 아버지, 루이지 가르치다윗, 조반니 안드레아 카를로네에리트리아의 시빌라가 있다.
     왼2 벽감  두 번째 벽감에는 빈첸초 펠리치성 아녜스 조상이 있다.
     왼2 경당  엠마뉴엘 2세 아들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아내인 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의 무덤이 있다.무덤은 도금된 청동으로 장식된 설화 석고판으로 되어 있다. 소벽(小壁)에는 비유적인 묘사가 담겨 있는데 에우제니오 마카냐니관대함을, 아르날도 초치후함을 표현했다. 왕족의 무덤들은 1878년에 설립된 왕릉의 명예로운 호위대 국립협회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무덤 주변에 경계병들을 배치했다. 왕릉의 제대에 있는 문장은 치릴리의 작품이다.

     

     왼3 벽감  세 번째 벽감에는 위대한 예술가인 라파엘로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데, 그의 대리석 석관에 있는 비문에 따르면 “뼈와 재들이” 남아있다. 그의 약혼녀인 마리아 비비에나는 라파엘로의 대리석 석관의 오른쪽에 묻혔는데,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 전에 죽었다.
     왼3 경당  

     

     

     

     

    [왼 3 벽감]

     

     

     

     

    [그리스도의 수난 경당]

     

     

     

    현재 남아있는 제대와 후진(後陣)은

    교황 클레멘스 9세

    (1700-1721)의 의뢰로

    알레산드로 스페키

    가 설계한 것이다. 후진에는 동로마의 성모 성화 복제품이 안치되어 있다. 현재 바티칸 의전사제들의 전용 경당에 있는 원본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성가대석은 1840년에 추가되었으며, 이는

    루이지 폴레티

    가 설계한 것이다.

     

     

     

     

     

     

    밖에서 보던 그런 안이 아니다.

     

    깨끗하고,침묵,고풍,엄숙,정돈,화합,어울림,과학,수학,전쟁,평화

     

    무수한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이탈리아 통일의 그 주인공 임마뉴엘 2세가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니

     

    사전 지식없이 갔기에 필요한 이미지를 다 구하지 못했다.

     

    머리가 멍.................@!

     

    밖을 나오니

     

     

     

    판테온 신전앞 오벨리스크

     

    교황 클레멘스11세가 판테온 신전앞 광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 근방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Ra 신전앞에 있던 것을 로마로 옮겨와 다른 곳에 설치했던 것을)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설치한 것이다. 설치할 때 barigioni가 클레멘스 11세를 상징하는 글씨와 문장이 새겨진 분수위에 설치했다. 

     

     

     

    신전 뒤 오벨리스크

     

    이곳에서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음은 트레비 분수라 했는데.

     

    20분에 다 보라는 것은 무리지.......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폴리궁전]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이탈리아어: Fontana di Trevi)

     

    트레비 분수(이탈리아어: Fontana di Trevi)는

    로마

    에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분수이다. 높이는 25.9m, 너비는 19.8m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으로는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오랜 전통으로 남아있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거나 언젠가 다시 로마에 오게 된다고 믿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에 동전 세 개를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다.매일 3,000유로 정도가 트레비 분수대 바닥에 쌓이는데, 로마 시에서는 매일 밤 이 동전을 수거하여 로마 내 문화재 복원과 보호에 쓰고 있다. 한편, 자석을 이용해 이 동전을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트레비 분수는 교황의 명에 의하여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분수이다. 폴리궁전앞에 분수를 설치한 형태이벼 해신 트리톤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아래로는 말과 함께 두 개의 트리톤 상이 존재하는데 왼쪽은 격동의 바다를 오른쪽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트리톤은 우리에게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있다. 트레비 분수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지친 로마 병사들에게 물을 제공해준 처녀 설화가 담겨있는 처녀의샘을 수원으로 하고 있으며. 트레비 분수위 트리톤상위에 서있는 네명의 여인을 사계절을 상징한다. 또한 트리톤상 옆에 있는 두명의 여인은 각가 건강과 풍요의 여신을 상징하며. 트레비 분수는 현대 미술 회화에서 자주 회화 대상이 되는 아그리빠가 만든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분수다. 사람이 많다. 동전도 다음 관광을 위한 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던진다. 하루에 3000유로 정도라니.

     

    1년이면 109만 5000유로. 야 그것도 크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어야 한다나. 아이스크림 판매소를 찾는다.

     

    난 별로. 하지만 분위기는 아니다.

     

    오드리햅번 처럼!

     

     

     

     

        

     

     

     

     

     

     

     

     

     

     

    문전 성시를 ...........30분을 머물렀다.

     

     

     

     

     

    스페인 광장[(The Spanish Steps,

    Italian

    : Scalinata della Trinità dei Monti,Piazza di Spagna)]

     

    스페인 광장(The Spanish Steps,(

    Italian

    : Scalinata della Trinità dei Monti,Piazza di Spagna)은

    이탈리아

     

    로마

    에 있는

    광장

    으로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스페인 광장이라 불린다. 사람들은 주로 '삼위일체 계단'이라 불리는 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The Spanish Steps (

    Italian

    : Scalinata della Trinità dei Monti) are a set of steps in

    Rome

    ,

    Italy

    , climbing a steep slope between the Piazza di Spagna at the base and Piazza Trinità dei Monti, dominated by the

    Trinità dei Monti

    church at the top. The Scalinata is the widest staircase in Europe.The monumental

    stairway

    of 138 steps was built with French diplomat Étienne Gueffier’s bequeathed funds of 20,000 scudi, in 1723–1725, linking the

    Bourbon

     

    Spanish Embassy

    , and the Trinità dei Monti church that was under the patronage of the Bourbon kings of France, both located above — to the

    Holy See

    in Palazzo Monaldeschi located below. The stairway was designed by architects

    Francesco de Sanctis

    and

    Alessandro Specchi

    .]

     

     

     

     

     

     

     

     

     

     

     

     

     

     

     

      

     

     

     

     

     

      

     

     

    참 많다. 계단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관광객은 걍 아무 생각없이 걍 걸어보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실험 음악, 실험 미술, 현대음악, 현대미술, 젊은이들의 젊음이 출렁거린다. 걍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힘이 솟을 것 같다.

     

    왜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이곳에 많이 모일까?

     

    그 바탕은 무엇일까?

     

     

     

    오드리햅번을 만나러 왔나보다. 영화속처럼 그 계단에 앉아보기도 하고 . 아이스크림은 또 샀나보다.

     

     

     

    스페인광장 관광으로 오늘 일정은 끝이다. 겨우 20분 머물렀다. 배고프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에 들어오니 11시 30분이 지났다.

     

    콜로세움에서 대전차경기장으로 다시 고대로마유적을 보고 로마시청으로 엠마뉴엘2세 기념관 판테온 신전 트레비분수 스페인 계단.....

     

    참 바쁜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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