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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이(바티칸 박물관)
    나의 여행기 2009. 12. 9. 17:57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십이(바티칸 박물관)
    제 7 일


    로마 시내로 들어간다. 로마 시민들 출근 시간과 함께다.

     

     

     

    언덕 위의 저집은 아름답다. 시원하겠다.

     

    도심지 다온 것 같구나. 로마시내로 들어가는 차량들로 정체된다. 로마도 교통란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70킬로미터가 제한속도. 화물차는 추월금지. 비교적 너그럽다.

     

     

     

     

     

     

          

     

     

    길 옆에 낮익은 식물이 보인다. 얼른 보기에는 사위질빵으로 보인다.

     

     

     

     

     

     

        

     

     

     

        

     

     

    거대한 성벽이다.

     

     

        

     

     

     

        

     

     

     

     

    시내로 들어가니 길가 가로수 밑이 주차장이다. 정식 주차장인지 주차를 허락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가로수가 오래살 수 있을

    지.얼마가지 않아 중심지에는 버스를 주차할 수 없어 미리 내려준다. 낯선 거리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주의를 준다. 대열에

    서낙오가 되면 안된다나. 하긴 길 잃는 사람이 나오면 관광은 엉망이 될테니 당연하다.

    높은 담을 왼쪽으로 하고 한참을 따라갔다. 성벽인지 담인지는 얼른 구분이 안된다. 우리나라의 성 하면 돌로 만든 석성이다. 그

    러나 이것은 벽돌이다. 잠시 저성을 쌓기위해 수많은 선인들이 고생했으리라.

    박물관 입구다. 대영박물관, 루브루박물관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성벽을 허물고 문을 새로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넓게 개축할 수도 없겠다.

     

     

        

                                                                                                               [바티칸박물관입장권]

     

     

        

     

     

    입구에는 관광객들로 붐빈다.현대미술품이 이색적이다.입구는 현대판이다. 나선형 계단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현대 조각이 낯설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을 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아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기전에 이곳에서 자세한 설명을 한다. 들어가서 그 작품앞에서는 설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란

    다. 수많은 인파때문에 또 너무 작품이 커서. 그러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이해하는 것이 좀 힘들다. 사전 지식도 부족하고 많은 인

    명 때문에, 또 들어가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러나 현지 안내인은 열정적이다. 정말 박학하다. 저런분이 이탈리아 역사를 강의하

    면 학생드의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벽은 대단히 높다. 감히 오를 수도 없다. 요새가 따로 없다. 846년 사라센의 침략으로 보물을 약탈당한 후 852년에 쌓았다는 레

    오네성이란다. 빼앗긴 그 보물은 지금 어디있을까? 1926년 이후 종교를 인정하고 영토를 주었으니 또 지켜야할 것은 당연. 박물

    관 입구가 좁다.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정말 일행을 . 항상 함께해야 하겠다.

    현지 안내인의 안내는 계속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 저것 보기에 바쁘다.

    현대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현지 안내인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전 볼 수는 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천지창

    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아직 보지도 못한 우리는 배경 지식

    이 없어 잘모르겠다. 그저 미켈란젤로 작품이라는 정도다.

    단순히 여행이라는 그런 생각에 사전 공부가 없었던 것이 또 후회된다. 여행은 단순히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만으로 기쁘다. 더 의미있는 여행을 하기위해서는 사전 공부가 절대적이다.

     

    [바티칸 시티 공화국]

    [로마 시내의 티베레 강 서안에 있다. 산피에트로 광장이 있는 남동쪽을 제외하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6개의 입구 중에서 광장, 대성당 정면의 종탑 아치, 북쪽 성벽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 등 3개의 입구만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성벽들 안은 작은 나라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4세기에 지어 16세기에 개축한

    성베드로
    대성당

    이다. 바티칸시티는 독자적인 통신체계, 은행기관, 화폐를 비롯해서 우체국, 라디오 방송국, 100명 이상의 스위스인
    수비대, 백화점, 의료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식량·물·전기·가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물자는 수입해야 한다. 소득세가 없고
    자금의 유입이나 유출에 대한 규제가 없다. 자금이 어떻게 조성되고 운영되며 또 어떻게 지출되는지는 비밀에 가려져 있다.
    바티칸시티는 1929년

    라테란 조약

    에 따라 당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 이
    나라의 통치권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선출된

    교황

    이 행사한다. 교황은 바티칸시티 안에서 행정·입법·사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또한 바티칸 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는데, 이들은 교황청 인사들과는 달리 성직자가 아니다.
    교황은 교황청의

    바티칸시티 위원회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며, 행정권은 중앙협의회의 보좌를 받는 지사에게 위임된다.]

     

     

     

     

     

     

     

    [4미터의 청동 솔방울]

     

     

     

    장시간(사실은 10여분) 설명을 듣고 들어갔지만 4각형의 정원이다.

    좀 실망이다. 이것도 사전지식 부족이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여기저기에 조각품이 많이 보인다.

     

    삐냐정원이란다. 이곳에서 머리속을정리해야 다음부터의 관람이 용이할 것 같다. 귀국해서 후회하지만좀더

     

     적극적인 관람과 기록이 있어야 했다.

    본격적인 관람은 벨베데레로부터다. 4각형의 정원이다

     

     

        

     

     

     

     

    천체안에 천체 [Sfera con sfera]-Arnaldo Pomodoro1990

     

     

     

     

     

     

        

    [키아라몬티미술관]Chiaramonti museum

     

    [아우구스투스 황제 두상]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바티칸 시국 경제규모로 루브루나 대영박물관같은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가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그 좁은 곳에 그 수많은 작품 어디 공간

    이 있겠는가?

    종교는 국가인가? 국가는 종교인가?

    종교는 국가를 소유해야 하는가? 국가는 종교를 소유해야 하는가?

    수많은 종교전쟁을 생각하면서. 아직도 세계적인 문제는 역시 종교가 아닌가?

     

     


    [삐냐 정원(Cortile della Pigna, "솔방울 정원")]

    [4m 높이의 거대한 청동솔방울은 고대 로마의 분수 일부였으며 한때는 옛 성베드로 성당의 안뜰에 있었다.

    대부분은 브라만테가 설계했으나 솔방울자리는 1562년 피로리고리오가 만들었다.]


     

    [브라치오 누오보]

     

    대성당 돔이 멀리 보인다. 어느 입구로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벽면과 그 벽에 진열된 수많은 조각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중고등학교시절 미술실에서 비슷한 모양의 석고만 보아왔던 우리들

    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석고이기에 깨뜨릴까봐 조심조심하던 . 여기에 진열된 것은 다 대리석이다.



    [키아라 몬티 박물관]

    [
    키아라 몬티 가 출신의 교황 피우스 7세 이름을 따서 지은 소형 박물관으로19세기의 카노바가 지었다.
    긴 통로를 지나 래피더리 갤러리와 브라치오 누오보에 연결된다.
    주로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의 조각작품의 원본과 복사본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테네 여신의 거대한 두상이 여기
    에 있다.
    ]

     

       

     

     

      

     

     

     

      

     

     

     

      

     

     

    [벨베데레의 뜰("8각형의 뜰", The Octagonal court)]

    [15세기 말 교황 인노첸트 8세의 지시로 브라만테(Bramante)가 만든 벨베데레(Belvedere)궁의 8각형

    안뜰이다. 이 뜰의 주위에 전시된 조각상들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서양 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부릅뜬 눈으로 우리를 감시한다.

     

     

     

     

     

     

     

     

     

    티그리스의 석상[Statue of the Tigris River]

     

    [로마의 카라칼라의 욕장에서 발견한 작품으로 최근에 바오로 3세가 8각형 정원에 가져다 놓았다.

    티그리스와유프라테스강의 기원을 상징하고 있는 물의 신을 묘사하고 있다.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 아래 모두 추가로

    조각되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The Belvedere Apollo)]


    BC 320년에 제작된 그리스 아티카 출신의 한 작가가 만든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모방한 작품으로
    태양의신 아폴로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1503년 율리우스 2세가 이 조각상을 산 피에트로
    근처에 있던 그의 궁에서 여기로 옮겨왔다.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전양식의 걸작 중의 하나로 왼손에는 아폴로 신의 상징인 활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등에 맨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름다운 옷의
    주름과 샌들의 정교한 세부 묘사가 정교하고, 남자이지만 여성의 몸매를 모델로 한 듯하다. 이 아폴로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의 얼굴
    을 그릴때 이 아폴로상을

    모델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카노바 페르세우스(Perseus)]

    [

    나폴레옹이 1797년 약탈하여 파리로 가져가 버린 아폴로를 대신하기 위해 피우스 7세가 1802년
    구입한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작품이다
    제우스의 아들로 메두사를 퇴치한 영웅인 페르세우스의 모습이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치켜든모습으로,첼리니가 1545년경에 청동으로 만든 것도 전해지고 있다.]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자르면 유디트 (Judith) :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적장의 목을 잘라 이스라엘을 구했다는 여인.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자르면 메두사 남자가 남자의 머리를 자르면 다윗과 골리앗이다.[http://www.cyworld.com/s4yu/2853688]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큐피드[Aphrodite and Cupid]

     

     

     

     

     

     

     

      
      라오콘 Laocoö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아폴론
    신의 점술사이자 신관(神官)으로, 트로이의 아게노르의 아들이며 일설에 의하면 영웅 아이네아스의 아버지인 안키세스와 형제간이다. 라오콘은 독신을 지키겠다던 맹세를 어기고 자식을 낳음으로써 아폴론 신의 노여움을 샀다. 그리하여 제비를 뽑아맡겨진 임무에 따라 포세이돈 신의 제단에 황소를 제물로 바치려던 중 아폴론 신이 보낸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2마리의 큰 바다뱀에 깔려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또는 멜란토스)와 함께 죽었다. 이런 벌을 받게 된 또다른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놓고 간 목마를 성내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트로이인들에게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의 전설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s〉와 BC 2세기경 로도스 섬 출신인 3명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폴리도로스·아테노도로스가 만든 라오콘
    상(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을 통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라오콘"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5r3476a&ref=2#ID2
     
    라오콘상Laocoön group그리스신화를 대표하는 서사시 일리아드의 트라이 전쟁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다.아폴론 신이 보낸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2마리의 큰 바다뱀에 깔려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또는 멜란토스)와 함께 죽었다. 이런 벌을 형상화한 조각이다.독사에게 허리를 물려 그 독이 퍼진 핏줄들의 튀어나옴과, 고통에 겨워 온몸을 비트는 근육들의 묘사, 그리고 괴로워하는 표정이 너무나도 생동하게 실제처럼 잘 묘사 되었고, 오른쪽 팔이 발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팔을 뻗고 있느냐 구부리고 있느냐. 두 파로 나뉘었는데 미켈란젤로가 구부리고 있다는 소수의견을 내었다.
    그래야 배 근육의 모양이 맞다는 것이다. 팔이 펴져있다면 배도 펴져 있어야 한다며. 나중에야 나머지 한 쪽 팔이 발견되었고, 미칼렌젤로가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더 유명한 더 걸작인 것으로.


     

     

     

        

     

     

     

     

     

        

     

     

    [동물의방]

     

     

     

     

     

     [술의 신 박카스]

     

     

     

    [하프르르 연주하고있는 뮤즈의 석상]

     

     

     

     

     

     

     

    벨베데레토르소 [Belvedere Torso]

     

    네스토르의 아들인 아테네의 조각가 아폴로니오스의 서명이 들어 있어서 오랫동안 BC 1세기의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금은 아폴로니오스가 2세기의 원품을 모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작품의 동적인 자세는 미켈란젤로의 힘찬 조각 양식을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뒤로 마니에리스모 시대나 후기 르네상스 시대 및 바로크 시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이것을 깊이 연구하였다.

     

     

     

     

     

    원형의 방(Sala Rotonda)안  헤라클레스 상(오른쪽)

     

     

    [네로의 대리석 욕조]
    대리석 욕조다 여기에 물을 채우려면 . 신분이 아주 높지 않으면 불가하리라 바닥의 모자이크는 그저 입을 벌릴뿐이

    다. 욕조라면 들어가기와 나오기가 어려울 듯. 혼자서는 도저히

     

      

     

     

    [돔천정]


    [모자이크]

     

     

     


    [대리석 관]

    대리석 석관도 있다. 그렇다고 시신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저것이 땅속에 있다면 .......또 건물지하에 있다면

    일부러 파괴하지 않으면 반영구적이겠구나 생각했다.

     



    [다생산과 풍요의 여신]아르테미스상

      

     

    [레오 13세]인가

     [교황 레오13세 흉상]

     

      

     

     

     

     

     

     

    [아라찌의 방]

    (Tapistery)'가 전시되어 있는 '아라찌의 방(Galleria degli Arazzi)

    [16세기에 라파엘로(Raffaello)의 제자들이 그린 예수의 일생을 기초로 부룩셀 산 고블랭천 위에 수를 놓아 만든 것이다.]

    이것은 조각도 아니고 회화도 아니고 직물이다. 실로 짠 것이라니. 바로,타피스트리



     

     

     

     

     

     

     

     

     

    조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분명 회화란다. 아직도 사실인지 여부가 궁금타. 만져보지 못해서

    보지 않고 믿는자는 복이 있다고 했지만


     

     

     

     

     

     

     

    [지도의 방 천정]

     

     

     

     

     


    [지도의 방]
    [16세기말 무씨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3년간에 걸쳐그린 지도다]

    [주인공은 그레고리우스 13세-]

    천정은 화려하다. 벨사이유 궁전의 천정화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무씨아노와 그의 제자들은 이탈리아를 몇번이나 돌아다녔을까? 500년이 지났건만 정확성이 있다는데. 인간의 눈은

    그 눈동자에 보이는 그 영상 말고 그 눈에 보이는 심상 또한 깊은가보다. 천리안도 가진 것 같고. 축지법도 사용한

    것이 아닌가. 그저 놀랄뿐이다. 김정호가 생각이 난다.



     

     

     




     

     

      

     

     

    이 방을 지나서 시스티나 성당을 들어가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았다. 천정 전체가 [천지창조]요 정면

    전체가 [최후의 심판]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찍지 말라면 말아야지. 아쉽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는 여기저기 사

    진이 등장한다. 대부분 몰카다. 오래전에 찍혀진 것들이 많다. 암튼 저 높은 천장에 어떤자세로 작업을 했을까? 그

    역작을 남긴 작가를 존경한다. 인생 그 자체는 가서 없지만 그가 남긴 역작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새삼스레

    예술은 길구나 하고 생각했다. 기독교를 모르더라도 카톨릭을 모르더라도 이탈리아 역사를 모르더라도 그 자체를 보

    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박물관에 있던 안내판 그림이라도 찍어올 걸 하고 후회했다. 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천지창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탈리아 조각가·화가·건축가·시인. 카프레제 출생. 이탈리아 르네상스 말기
    에 활동하였으며 89세에 로마에서 죽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성당내에 무덤이 있다. 조각작품 약 40점, 회화로는
    4면의 대벽화 외에 약간의 타블로, 건축에서는 교회와 기념건축물 등의 설계와 장식을 남겼고 또 회화·조각·건축에
    관한 습작·소묘·에스키스 등 약 800점이 세계 각지에 분산하여 전해지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내에 프레스코 대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역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위촉에 의한 것이다.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하지 않았고 고개를 젖히고 천장에다 그리는 힘든 작업이므로 그는 육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그리는> 고충을 호소하였다. 천장화의 천지창조로 시작되는 9장면(나비 13m, 길이
    40m)은 33세인 1508년부터 약 3년, 또 정면의 《최후의 심판》 장면(약 14.5m×13m)은 약 30년 후 바오로 3세의
    위촉으로 36년부터 41년까지 5년 반의 세월이 걸려 그려진 것이다. 거인과 같은 <노한 그리스도>가 중앙에 군림하
    는 최후의 심판도에서는 여러 성자 외에 구원받은 영혼, 벌받은 영혼이 전부 400명 가까이 그려져 있다. 왼쪽의 천국
    에 오르는 영혼과 오른쪽의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의, 크게 회전하는 군상의 동적 구도와 동적 표현은 르네상스의 고
    전양식의 해체와 격정적인 바로크양식에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밖의 벽화에는 바티칸의 파올리나성당의 《바
    울의 개종(1545?)》과 《성 베드로의 책형》이 있다. 또 1504∼1506년경의 템페라에 의한 원형화(圓形畵) 《성가족
    (聖家族)》은 면밀한 구도상의 배려와 정성들인 묘사에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아래의 천지창조는 웨사이트에서 찾아 화면을 프린트한 것이다.]

     

     

     

     

     

     

     

     

     

    [천지창조][Michelangelo Buonarroti ]

     

     

     

     

     

     

     

     

     

     

     

     

    [최후의 심판][Michelangelo Buonarroti]

     

     

    반가운 소식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다시 그린 것을 본다니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다.
     

     

        

     

        

     

     

     

     

     

     

     

     

         

     

    [베드로 광장]

    베드로 광장이다. 텔레비젼 화면에서 성탄미사 광경으로 익숙한 장소다. 앞에는 베드로 상이 있다. 회랑 건물 위로

    사도들상으로 전부 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회랑의 대리석 기둥들이 힘차게 받치고 있다. 교황의 미사집전 자리

    도 보인다. 벌써부터 성탄미사 준비란다. 뒤를 돌아보니 베드로 성당 대리석 기둥이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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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대천개(Baldacchino by Giovanni Lorenzo Bernini)

    -세계 최대의 공예품

     

     

     

     

     

     

        

     

        

     

     

     

    이 밑으로 내려가면 베드로가 묻혀있고 교황들의 시신을 모신 곳이라 한다. 정신세계의 총본산이 아닐까?

     

     

        

     

     

     

     

     

        

                                                                       [성베드로주교좌]

     

        

     

     

    [A.캄비오의 성베드로상]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다고 했지만 뚜렷이 보지 못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마지막 사진 깊

    숙한 곳에 보인다. 확대했으나 선이 보이질 않는다.

     

     

     

     

    성당안을 들어가니 색 조화가 조용하고 엄숙하다.벽 어느 한 곳 빈자리가 없다. 수많은 작은 조각들이

    대천개라는 청동 기둥도 우람하다. 베드로 주교좌도 보고 싶지만 가까이는 갈 수 없었다. 제단 바로 앞 청동 대천개

    밑으로 촛불이 있다. 이곳 아래에는 베드로 묻혀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미켈란제로에 의해서다. 130미터가 넘

    는 돔도 미켈란젤로의 목재 모형을 보고 현재의 모양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베드로 대성당]

    옛 성당 건물은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 베드로의 묘 위에 지은 것인데, 이것이 황폐해지자 교황 니콜라오 5세(재위 1447∼55)가 B. 로셀리노에게 개축을 명령하였다.
    1452년 로셀리노는 우선 제실(祭室)의 증개축(增改築)에 착수하였지만 1455년 교황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뒤 약 50년이 지나서 다시 시작하려하자 교황 율리오 2세(재위1503∼13)가 옛 성당을 모두 부수고새 성당을 짓기로 하여, 당시 건축가들의 여러 제안중에서 D. 브라만테의 안을 받아들여 1506년 공사를 시작하였다. 브라만테의 구상은
    그리
    스십자형 평면설계에 로마의 판테온을 보고 착상한 돔을 얹으며, 주주(周柱)를 두르고 정탑(頂塔)을 그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1514년 중앙돔을 받칠 네 기둥을세우는 중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명된 S. 라파엘로는 G. 상갈로와 F. 조콘도의 도움을받아
    브라만테의 고안은 전례(典禮)에 적당하지 않다고 하여 라틴십자형으로 고쳐서 공사를 진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1520년 라파엘로도 죽자 상갈로의 조카 안토니오 다상갈로가 공사를 이어받았는데, 그 동안 교회의 재정적 압박과 유명한 <로마의 약탈>로인해 공사가 진전되지 못했다. 1546년 안토니오가 죽자 미켈란젤로는 독자적 구상을 가지고 공사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었다. 그는 다시 라틴십자형에서 그리스십자형으로 바꾸고 돔을 지탱하는 원통형부분의 외관효과를 강조하고, 성당 안의 앱스와 예배실의 설계를 바꾸었다. 지금 볼 수 있는건축적 특징의 많은 부분이 그의 구상에 의한 것이다. 1564년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그가 남긴 목재의모형을 보고 G. 포르타가 돔을완성하였다. 그 후 17세기에 파울로 5세(재위 1605∼21)의 뜻을 받아 C. 마데르노가 신랑(身廊)을 서쪽 전방으로 연장하고, 나르텍스[前廊(전랑)]를 만들어 라틴십자형 방식으로 고쳐 1614년에는웅대하고 화려한 정면(파사드)을 구축하였다. 이렇게 하여 공사를시작한 뒤 120년이 지난 1626년 11월 18일 우르바노 8세에 의해새성당의 헌당식이 이루어졌다. 이 날은 기이하게도 옛 성당이 헌당되고 나서 130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그 후에도계속되어 1656∼1667년 G.L. 베르니니가 커다란 주랑(柱廊)을 둘러싼성당 앞광장을 정비하고 이 주랑에서 교황청으로 통하는 계단인스칼라레지아를 1666년에 완성하였다. 현재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1510㎡ 동서로는 186.36m, 남북으로137.5m이고 돔의 높이 132.5m, 지름 42m의 규모인 이 거대한 성당에는 르네상스 및 바로크 조각이 많이 있다. 1625년에 완성된성 베드로 대성당은 미켈란젤로의 걸작품 중의 걸작품입니다. 안뜰과 벽의 두께까지 합하면 211m입니다.성당 안의 제대는 44개, 성상이 395점, 이 가운데 대리석이 104개, 석회석이 161개 청동이 40개, 석고가 90개입니다. A. 캄비오의 작품이라 전해지는
    《성 베드로상》, 미켈란젤로 초기의 《피에타》, A. 카노바의 《클레멘스 8세의 묘비》,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주교좌》와《우르바노 8세의 묘비》 등이 유명하다. 특히 돔 바로 아래, 즉 베드로의 무덤 바로 위에 베르니니가 세운 청동상

    《대천개(大天蓋)》는 세계 최대의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성당을 나왔다.

     

     

     

     

     

     

     

     

     

    [지붕의 사도상]

     

     

        

     

     

        

     

     

     

     

     

        

     

     

     

     

     

     

     

     

     

     

     

    기념품을 하나샀다. 외손주를 줄 모자다. 다시 성을 끼고 돌아서 아침에 내렸던 그곳으로 갔다. 바티칸 시국 반은 돌은 것 같다.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탔다.외침을 받았을 때 수많은 보물을 약탈당했고 그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이 엄청난 성을 쌓는 결과를 낳았다. 빼앗아 간 것은 잘 보관되어 있을까?

     

     

     

     

     

     

     

     

     



    로마 시내를 달린다. 이 길 저 길을 돌아간다. 현지인의 안내가 가끔 있었다. 기억은 잘나지 않는다.

     

    로마제국의 오랜 역사는 로마를 역사의 고장으로. 곳곳이 다 역사의 현장이다.

     

     곳곳에 내려서 하나하나 봄직하다만 시간이

     

     

     

     

     

     



    부족하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는가?



     

     

     


    소나무가 보이는 길이 제일 오래된 길이라고 했던가.


     

     

     

     

     



    중국집이다. 점심도 푸짐하게 먹었다. 피사에서도 보았지만 벽면에 역시 낙서가 많았다.

     

     

     

     

     

     

     

     

     

     

     

     


    꽤 넓은 홀이다.

     

     

     


    점심먹고 나왔다. 음식점 앞 도로 건너편에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 꼭대기에는 안테나가 어지럽게

     

    공청안테나를 쓰지 않는 것 같다. 역시 개인적이다.

    하늘을 나는 잠자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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