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육(파리-베르샤이유 궁전)나의 여행기 2009. 12. 3. 18:43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육(파리-베르샤이유 궁전)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육(파리-베르샤이유 궁전)
제4일
키리아드호텔에서 일찍 일어났다.
안개낀 날씨다. 아침이라 출근 길의 사람들이 분주하다. 호텔앞에 눈에 익은 글씨가 보인다. 삼성광고다.벨사유궁전으로 가는 길은 완벽한 가을이다. 나무들도 곱게 물들어 있다. 번잡 복잡하지 않고 시원하게 뚫렸다.
가끔 보이는 숲은 부럽다.
길가에 주차한 차량들이 많았다. 여기에 주차시킨 사람들은 어디에 갔는지 궁금했다. 보이는 것은 숲인데
멀리 벨사유 궁이 보인다.
호텔에서 50분 정도 소요
베르샤이유 궁전(LE CHATEAU DE VERSAILLE)
[베르사이유 궁전은 1623년부터 1789년까지 167년 간 프랑스의 4대왕이 머물던 궁전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이다. 17세기를 대표하는 세계 5대 황실중에 하나로 꼽힐만
큼 화려한 이 곳은 1634년에 루이 13세에 의해 사냥궁으로 세워진 베르사이유 궁전은 '짐은 국가다' 라고 했던 루이 14세
에 의해확장공사가 있었으며 1682년에서부터 프랑스 대혁명이 있은 1789년까지 107년간 황실 가족과 정부가 머물던 곳이
다. 20년에 걸쳐 세운 궁으로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았다
. 건조물 중핵부는 부왕 루이 13세가 J. 르메르시에에게 명하여 1626년에 건립한 수렵용 별장이다. 1661년 루이 14세는 이
중핵부에 이어지는 별관증축을 R. 르보에게 의뢰했으나 정원 쪽 정면설계만 마치고 죽자, 1679년 공사는 J.H. 망사르에게
이어졌다.
이는 르보의 설계를 답습하여 별관을 좌우로 넓혔으므로 내·외부공사가 완성된 것은 루이 필리프 치세(1830∼48) 때였다.
정원 쪽 정면은 고전적 설계로 구성되었으나 중앙부와 양단부가 약간 앞쪽으로 나오게 한 열주(列柱)로 외관에 악센트를 주
었고, 상단부에는 석재조각을 바로크적 굴곡으로 나타냈다. 궁정 안 중심부는 유명한 <거울의 방>이 차지하고, 그 양 끝에
<전쟁의 방> <평화의 방>을 두었다. 국정심의에 사용된 거울의 방은 망사르가 설계하고 C. 르브룅이 장식하였다. 금분을
칠한 바로크풍 벽면장식을 고전적 모티프인 편개주(片蓋柱)가 장대한 반구형(半球形) 천장을 받치고 있다. 전체길이 550m인
이 궁전은 1만 명을 수용한다. A. 르노트르가 설계한 정원은 궁전의 공간적 연장이며, 군상(群像)으로 장식된 많은 연못, 루
이 14세의 그랑 트리아농, 루이 15세의 프티 트리아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촌락 등의 건축이 루이왕조의 화려한 양식미를 오
늘에 전한다. 건물의 규모, 절대왕정의 예술품, 100ha 나 되는 대정원이 유명하다.루이 14세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건설한 대궁전으로 원래는 늪지대였는데, 전국에 있는 흙을 파다가 집터를 다지고 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대한
펌프를 사용하여 세느강의 강물을 15km나 끌어 올리고, 분수를 만들기 위해 강물 줄기를 돌려 놓았을 정도로 대자연까지 대
대적으로 개조해 만든 궁전인 셈이다. 이 궁전은 1662년부터 1710년으로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건설되어졌으며, 프랑스
당시의 최고 건축가 루이 르 보, 망사르, 르 노트르 등이 참여 하였다. 1870년에는 프러시아 군사령부가 주둔했으며 1871년
에는 프러시아의 왕이 빌헬룸1세라는 이름아래 대관식을 갖기도 하였다.
이런 굴욕의 역사를 설욕하기 위해 1919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을 이곳에서 갖기도 하였다. 궁을 비룻하여 정원
등 모든 구조가 당시 태양왕이라 불리우던 루이 14세의 침실을 중심으로하여 설계되었고 항상 누구나 정문에서 빌려주는 칼
과 모자만 있으면 들어와 정원과 왕을 볼수 있었던 점이 특징으로 뽑을 수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는 70
년 통치기간동안 전쟁으로 일관된 영토확장한 위대한 군주였던 그는 많은 문화유산도 남겼다.
이곳에서 매일 밤 호사스런 사교파티를 열었다. 이러한 사치와 전쟁으로 국운은 쇠퇴하였고, 루이 16세가 20세에 즉위하였으
나, 무능과 시대의 변화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1789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1789년 10월 6일, 시민들은 베르사이유를 습격하기에 이르고 왕비 앙투아네트는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에게
도움을 청하여 1791년 탈출을 시도하나 발각 되고, 루이 16세와 왕비는 파리로 끌려와 옥에 갇히고 1792년 왕정은 끝나고
공화국이 선포된다.
이로써 베르사이유의 화려한 영광도 끝이 나고 이곳은 그 시절 자취를 보기 위해 모이는 관광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바뀌게
된다.]
[정원과 숲]
정원과 숲은 그 화려함과 더불어 그 광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경치로 루이 14세때의 영화를 짐작케한다. 대혁명전까
지는 6000ha에 이르렀으나 오늘날은 95ha로 그 규모가 축소 되었다. 중요 분수로는 라뽄느 분수, 아폴로 분수, 그리
고 포세이돈의 분수가 있으며 물울 뿜어내는 그 모든 시스템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로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대 접견실]
대 접견실은 한편으로는 레하클레스 살롱,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이라 불리는 6개의 살롱과
그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이며, 다른 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분
리되어 있다.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이 화려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헤라클라스의 방>은 왕
실 예배당이 완공되기 전까지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 되었던 공간이며, ‘헤라클라스의 예찬’이라 불리는 천장화가
유명하다.
6개의 살롱에는 벽면에 실제 대리석과 실물처럼 그려진 가짜 대리석이 함께 교묘히 공존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눈속
임을 유도하는 <비너스의 방>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다이애나의 방> 그리고 공식적인 국왕의 침
실이기도 하며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바쳐진 <아폴로의 방>이 있다. 그밖에 <전쟁의 방>, <머큐리의 방>, <마르스
의 방> 등이 있으며, 궁전 내의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는 유명한 <거울의 방>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
이탈리안 바로크 양식으로 금 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이다. 그랑다빠르뜨망은 뷔페 연회가 열렸던
Salon de l'Abondance와 루이 14세 때에 당구장으로 쓰인 Salon de Diane, 원래는 대기실이었으나 때때로 리셉
션 장소로 쓰인 Salon de Mars, 각국의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던 Salon d'Spollon, 화려한 천장화가 유명한 Salon
de Venus로 구성되어 있다.
[거울의 방]
1687년 망사르가 완성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길이 75m, 높이 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
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베르사이유를 방문한 귀빈이 국왕을 만나러 국왕의 처소로 들어가는 통로다.
아치형의 대형 거울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창 밖으로 정원의 아름다움과 대운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이곳
에서는 주로 궁정 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이해
궁입구 문짝도 황금 빛이다. 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고 주차공간도 넓다. 문안으로 들어가니돌로 바닥을 깔았다.
아직 현지 안내인이 도착을 하지 않아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이 자꾸 밀려온다.
정면에서 궁을 보니 대칭형이다. 절대왕정이니 저렇게 크게 짓고 화려하게 살았으리라. 좀 상상하기는 그렇고.
왕은 한명 왕비 한 명 가족 등 10여명 안팍 이 사람들을 위한 수백 수천 명이 이곳에 살았으리라. 수시로 연회를 베
풀었으니 그들을 위한 모든 준비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른 수많은 수행원들도 묵었으리라. 꾸미자니 돈
들고 연회를 베풀자니 돈 들고 경제는 점차 바닥이 날테고 결국 오래갈 수 없는 사회로 나갔으리라. 결국 루이 16세
는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서는 ......아!
본인은그렇게갔지만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프랑스는 큰 변화를 이루고 현재의 프랑스가 된 것을 보면 그의 그와
같은 행위도 프랑스 발전에 한 획을 긋는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그 영욕의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 감동적이다. 어쩜
그로인해 관광객을 수백만명씩 모으는 일로 인해 프랑스는 문화로만으로도 프랑스 국민을 살게하는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역사다. 역사를 무엇으로 탓할 수 있단 말인가?바깥문을 들어서면 중심에 있는 건물은 대칭형이다.
지붕은 온통 황금빛이다. 황홀하다. 금덩이인가?처음에 들어간 곳인데 밀려 들어간다.
그 유명?한 정원
자연스럽지 못한, 억압받는, 인공적인, 생명체는 자유가 없는, 그런 정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의 손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10분만에 끝냈으니 정말 엉터리다.
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16세
재위 1610년 ~ 1643년 별명 정의왕 왕비 안 도트리슈 이전 왕 앙리 4세 다음 왕 루이 14세 재위 1643년 ~ 1715년 별명 태양왕,
대식가왕비 마리아 테레사 이전 왕 루이 13세 다음 왕 루이 15세 재위 1715년~1774년
별명 친애왕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
왕가 부르봉
이전왕 루이 14세
다음왕 루이 16세
재위 1774년-1792년
별명 마지막루이
왕비 마리앙뚜아네트
이전왕 루이 15세
다음왕 루이 17세(명목상)
왕가 부르봉
정신없이 밀리듯이 경황없이 베르샤이유 궁전을 둘러보았다.
2시간 정도 소요.
그저 황홀하다. 어찌 저렇게, 왕은 다르구나, 황제는 다르구나.
본인이 직접 뛰는 것이 아니라 수십,수백,수천,수만의 민초들의 움직였을 것이니 그대로 묻혀간 민초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일정에 밀려 쉼없이 다음 일정으로.
버스를 타고 [리옹역]으로 간다.
리옹역 도착 약 1시간 소요
[리옹역]
스위스 제노바 도착 약 3시간 30분 소요
리옹역에서 스위스 제노바까지 큰산은 기억나지 않는다. 프랑스 동부지역 광활한 초지만 기억난다.
'나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팔(마테호른) (0) 2009.12.07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칠(스위스) (0) 2009.12.07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오(파리-세느강 야경) (0) 2009.12.03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사(파리-개선문) (0) 2009.12.01 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삼(파리-루브루 박물관) (0) 2009.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