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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기 유럽 일부 여행-그 사(파리-개선문)나의 여행기 2009. 12. 1. 14:59
예정된 시간은 다 되었다.
수십만 작품중 겨우 천여점 정도 그것도 유명한 것만 아쉽다.유리피라미드 아래 광장에서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이곳이 입구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한다.
올라와 보니 꽤 큰 광장이다.
[ㅁ]자 박물관의 중심이다. 유리피라미드 상단 부분이 중심에 있고 출입구 방향으로 커다란 연못이다. 분수도 있다.
개선문 방향으로는 정원이 보이고 확트였다. 카루젤 개선문도 보이고
루이 14세 동상이라고 했나 동상도 있고
[유리 피라미드][카루젤 개선문]The Place du Carrousel (ka-ru-zel) is a public square in the
, located at the open end of the courtyard of the
, a space occupied, prior to 1871, by the
. Sitting directly between the museum and the Tuileries Garden, the Place du Carrousel delineates the eastern end of the gardens just as the
defines its western end.The name "carrousel" refers to a type of military
, an equine demonstration now commonly called military drill. The Place du Carrousel was named in 1662, when it was used for such a display by
.
[나폴레옹이 오스텔리츠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며 1808년에 세운 개선문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모방하여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며 8개의 장밋빛 원기둥이 독특합니다.높이는 14.6m,너비는 19.5m이다. 문 위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져 온 4마리의 황금빛 말이 장식되어 있었느나 그 말은 돌려주고 다시만들어 올리고1815년 이후에 왕정복고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함께 세웠다.]바쁘다 버스를 타야할 시간이다.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 앞 도로]
[루브루 호텔]
다시 한번 박물관 왼쪽과 오른쪽을 훑어보고 호텔을 보았다. 주 출입구 건물도 다시 보았다.
버스를 탔다.
다 보지 못한 것을 한하며박물관과 직선으로 연결된 콩코드 광장이라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리질 않고 휙 지나가는 바람에 본 것이 없다.
조금가니 앞이 확트인 넓은 도로다. 도로 끝쪽에 개선문도 보인다. 상젤리제 거리라 한다. 오른쪽 넓은 인도는 조그
만 가 건물들이 죽 설치되어 있다. 넓은 도로 가에는 푸라타너스 가로수가 개선문까지 이어진다. 상젤리에 그 도로는 왕복 8차선 도로다. 양쪽의 인도도 4차선 도로폭은 될 것 같다.개선문을 보기 위해 내렸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자유관람 시간을 주었다. 뿔뿔이 흩어졌다. 자세히 보기 위
해서 지하도를 통해서 개선문으로 갔다.[에투알개선문]
[루이 14세가 부상병, 연로한 퇴역장병들을 위해 파리에 설립한 건축. 건축가 L. 브뤼앙에 의해 1670년부터 센강 좌안에서 건설이 시작되어 1674년 중정(中庭)을 둘러싼 좌우대칭의 병원으로 완성되었다. 1706년에는 그 중심부에 J.H. 망사르에 의해 돔 형식의 교회가 건설되었다. 이것은 집중형으로 설계한 교회로, 상부에는 거대한 목조 연판을 붙인 원개(圓蓋)로 덮여 있다. 외부의 2단으로 된 오더�탬부어(원통)의 위계적인 구성은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의 한 규범이 되었다. 1840년 이 교회 지하에 나폴레옹이 매장되었다.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되어 있다.]개선문 꼭대기에 사람들도 보인다.
개선문주변은 개선문을 보기위해 찾은 관광객 상젤리제 거리를 보기위한 시민과 관광객 등으로 혼잡하다.
점심을 먹기위해 버스를 탔다. 식당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에펠탑도 보이고
황금지붕도 보인다. 동남아시아 중국등에서 황금지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 루이 데 앵발리드 교회]앵발리드(Invalides)는
의 역사적 건축물 중 하나이다. 1671년
가 부상병을 간호하는 시설로 계획하고 리베랄 브뤼앙(Libéral Bruant)이 디자인을 지휘하여 1674년부터 부상병들이 간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건설은 1677년에 시작되었고, 1706년에 완성했다. 돔 교회의 지하 묘소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관이 중앙에 놓여있다. 또한, 주위에 나폴레옹의 친족이나 프랑스의 유명한 장군의 묘가 놓여있다.
주차난도 심각
[달팽이 요리]
이 음식점에 들어가 유명하다는 달팽이 요리를 먹었지만 내 입에는 별로다.
난 식용 그래서 꽤나 큰 줄 알았다. 맛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이런 달팽이 요리도 있구나 정도로 맛을. 간에 기별도 안간다.
집집이 문패가 다른 것은 얼른 이해되지만 건물의 입구의 문양은 같은 것이 없었다. 그 문양은 오래전부터 그 집만이 같고 있는 문양 사고팔땐
어떻게 되는지 궁금타.
점심 먹고 다시 차를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단다.
잘보이는 곳으로 간단다. 언제 보는 거야. 차에서 내리지 않으니 볼 수는 없고
사이오 광장이다.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확 트인다. 기분도 확. 야!에펠탑이 잘보이는 곳으로 가고 있다. 에펠탑 옆을 지난다. 대단히 큰 구조물이다. 이곳에서 볼 수 없는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위한 장소로
그곳이 바로 사이요궁 광장이다.
[사이요궁(Paris Palais de Chaillot)]-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두 개의 별관을 잇는 곡선의 날개부가 아름답습니다. 파리 국립극장과 해양 박물관, 인류 박물관, 문화재 박물관,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파리시내에서 에펠탑을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아!
대단한 구조물이다.아름답다.
1889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박람회를 계획하면서 이에 적합한 기념물의 설계안을 공모했다. 100여 점의 설계안이 제출되었으나, 100주년기념위원회는 유명한 교량기술자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안을 채택했다. 높이 300m의 노출격자형 철구조를 세우려는 에펠의 구상은 경이와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미학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반대를 받았다.
조금이라도 이와 비슷한 구조물은 여태껏 지어진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 탑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나 기자의 대(大)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옛날 기념물과는 달리 에펠의 탑은 적은 노동력과 싼 비용으로 몇 달 만에 세워졌다. 풍력(風力) 등의 하중을 받는 금속 아치와 금속 트러스의 성질에 관한 앞선 지식을 활용해 건설된 이 구조물은 토목공학과 건축설계 분야의 일대 혁명을 예고했으며, 계속된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미학적 가치를 입증했다. 4개의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 탑의 기단은 공학적인 배려와 함께 에펠의 예술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곡선을 따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했다. 미국의 오티스엘리베이터회사에서 설계한 유리 승강기는 이 건축물의 주요특색으로, 에펠 탑을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켰다. 에펠 탑은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 때, 회장(會場)의 기념비로 건설된 철탑. 높이 312m. 명칭은 이 탑을 건설한 기술자 A.G. 에펠의 이름에 유래한다. 에펠은 지상 300m 높이라는 당시의 건조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세계 최고의 강철탑을 그 자신이 축적해 온 철교의 가설기술을 구사하여 실현시켰다. 구조재(構造材)인 강철은 프랑스 국내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했으며, 2년 2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에펠탑에는 1층(58m), 2층(116m), 3층(276m)에 각각 전망실이 있으며,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다. 또 건설 당시에는 이 탑이 도시경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었는데, 화가 들로네는 에펠탑의 연작을 남기며 찬성했고, 시인 베를렌은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뒷골목으로만 다녔다. 소설가 모파상은 자신의 기념상을 돌려놓았으며 철거를 위한 3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파리 경관에 없어서는 안 될 명물이 되었다.]
천상을 향해 올랐다. 백색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파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젊은이들도 많다. 대개는 쌍쌍이다. 낭만을 만
끽하는 듯. 사크레 쾨르 대성당을 지을때의 기원과는 거리가 먼 듯
[Sacre Coeur: 샤크레 쾨르 대성당. 1870년 두 사람의 사업가가 프러시아 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기기를 기원하며 제물로 바칠 성당을 짓게 된다. 이것이 지금 몽마르트에 있는 샤크레 쾨르 성당이다.샤크레 쾨르 대성당 내부: 이 성당은 예수의 성심에 바쳐진 교회당으로 1885년 부터 그 경배의 행렬이 밤낮으로 줄을 이어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본당 천장에 그리스도의 대형 모자이크가 있다.보불전쟁과 파리 코뮌으로 뒤숭숭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카톨릭 신자들이 회개하는 의미의 기금을 모아 1876년에 착공, 1914년에 완공하였다.]
몽마르뜨언덕에서 바라본 파리시
다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10유로를 주고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 두잔을 사서 마셨다. 비싼 커피값이다. 몽마르뜨 이름을 붙인다면 오히려 싸지
않은가?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났다.70유로 주고 초상을 그리는 우리 일행이 있었다.
[몽마르뜨 풍경]
[에펠탑]
신혼부부가 어딘가로 눈길을 피해서 급히 움직이고 있다. 신랑의 표정으로는 즐겁지 않아 보이는데.
힘들겠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것도 고역이다. 앞에 동전통에는 그 수고의 값이
건물 지붕이 굴뚝으로
굴뚝 수가 방의 갯수를 말한다나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오면서 위만 보다가 아래를 보니 꽃이 보였다. 그래 파리는 꽃이 별로 없다. 정원도 그렇고
아직 꽃이 좀 남아있다.목마타는 곳이 하나 있는데 놀고 있다.
싼물건을 많이 파는 난전이 죽...............
자전거도로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나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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