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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 316호 서산보원사지를 가다
    나의 여행기 2007. 1. 21. 18:17

    서산마애삼존불을 보고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
    간간이 내려오는 차들도 있다.
    1.5킬로미터 올라가니 길이 두 갈래다. 보원사지라는 간판이 있다. 그러나 화살표가 없어 두리번 거렸다. 차에서 내려 앞을 쳐다보니 작은 개천 양쪽으로 100여미터 정도 넓게 탁 트였다. 꽤나 길어 보인다. 그리고 당간지주가 벌판 가운데 보인다.
    아 여기로구나! 좀더 오르다보니 왼쪽에는 곳곳에 빨간 깃발과 발굴 흔적이 보인다. 절터로서는 꽤나 커 보인다.
    안내 간판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야 여기가 보원사지로구나
    보원사가 아닌 것이 섭섭했다.




    보이는 건물은 없으나 벌판에 이런 안내 간판이




    날씨가 푹해서 그런지 땅이 질척질척하다. 간판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벌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당간지주를 보았다. 어찌 이 허허벌판에

    ...........보원사지라했으니 절터란 뜻이다. 터만 남았으니 그럴 수밖에. 당간지주는 대개 절 앞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보아왔다. 아 그렇다면 여기가 절 입구라. 그리고 부근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보물 103호 당간지주



    조그만 개울 건너 탑이 보이고 그 탑 주위에는 다섯명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세 사람은 화판을 들고 무얼 그리는 듯 하다. 조그만 개울에는 다리가 없고 돌다리다. 그 개울물은 깨끗하다. 20여미터 위를 보니 개울가에 돌을 쌓은 흔적이 보인다. 아마 옛날에는 다리라도 있었을 듯한 곳이다.
    개울을 건너니 앞에는 탑이 있고 양 옆에는 발굴작업으로 흰 줄을 띄우고 돌만이 여기저기 비교적 규칙적으로 깔려있는 모습이다.

    그곳에는 발굴작업을 체험이나 견학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이것은 처음보는 조치다. 좋은 생각이다. 대부분의 발굴은 천막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발굴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굴작업 현장



    발굴작업 현장 중심에는 5층석탑이 굳건히 그 옛날 풍상을 안고 큰 파손이 없는 상태로 당당히 서있었다. 백제시대 어느 석공들이 온 정성을 다해 돌을 다듬고 맞추고 옮기고 했을 그 작업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보물 104호] 보원사지 5층 석탑


    [고려시대의 오층석탑. 높이 9m.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올린 일반형 석탑이다.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여진 지대석 위에 기단부를 구성하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양각된 사자상이 있다.
    하층기단 갑석 상면에는 두 개의 우주가 모각되었고 탱주로 양분한 각면에는 팔부중상의 조각이 있다. 특히 사자상은 통일신라의 양식을 잘 계승한 것이다. 상층기단 면석의 팔부중상과 천수상에서도 통일신라의 양식이 나타난다. 상층기단의 갑석은 평평하며 하면에는 얕은 부연이 표시되었다. 탑신은 탑신석을 각기 1석으로 조성하였다. 옥개석은 하면에 4단의 받침을 조각하였는데 각층의 옥개석은 백제탑 계통의 양식을 따랐다.
    처마는 완만한 곡선이고 네 귀퉁이 전각의 반전도 뚜렷하다. 각층 탑신은 별다른 조식은 없으나 초층 탑신 각면에 문비형이 모각되어 있다.
    보원사는 본래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 초기에 중창되었다고 하는데, 이 석탑도 중창 때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돌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3명이 그리고 있었는데 와 어려운 작업이다. 비가 오고 눈이오고 바람불고 돌이 움직일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가급적 신속한 작업이 요청된다. 요즘 과학의 발전으로 발굴작업도 신속하게 처리했으면 하나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다.
    탑 뒤에는 대웅전 터로 보이고 그 옆에도 터가 있고 탑 옆으로도 꽤 큰 집터가 보인다. 그 옛날에 빗물흐름을 돕는 유구도 보였다.
    뒤로 가보니 탑과 비가 하나씩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보물 105호]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 : 이 탑은 보원사(普願寺)터에 세워져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광종 19년(968)에 왕사(王師), 974년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그 이듬해 이 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에 왕이 ‘법인(法印)’이라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다.



    [보물 106호] 보원사지법인국사보승탑비 : 978년(고려 경종3) 건립. 전체높이 450㎝, 비신높이 240㎝, 나비 116.5㎝, 두께 29㎝. 이수의 상부에 용연을 파고 용이 사방에서 모이도록 한 조각이 매우 특이하며, 전체적으로 장중하다. 비문은 김정언이 짓고, 글씨는 2㎝ 정도의 구양순류 해서체이다.


    발굴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고마웠다. 집사람과 나는 보원사지가 보원사가 되기를 기원했다. 사실 보물 103-6을 이미 지정했으면 이미 그 때 그곳에는 고찰이 있었음을 알았을 텐데.........아쉽다.
    나중에 돌아와서 알았지만 커다란 수조가 보물 102호로 그 곳에 있었는데 보지 못하고 와서 섭섭했다.
    그 큰 고찰을 머리에 그리며 다음 행선지인 남연군묘로 향했다.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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