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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여행기3->야나가와->다자이후 텐만구신사나의 여행기 2017. 12. 13. 12:18
큐슈여행기3
야나가와(柳川)시로 향한다.
나를 뺀 3식구 잠을 청했다. 그래 나를 믿고
비가 죽죽 내린다.
물방울 때문에 사진이
아쉽다.
좀 참아 주었으면 했다.
밖 풍경을 잃었다.
야나가와로 간다고 했다.
큰일본노각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7389
휴게소 들렀을 때 본 나무다.
노각나무는 보았지만 큰일본노각나무는 처음이다.
아직 비는 계속이다.
야나가와시
야나가와 시(일본어: 柳川市 )는 일본 후쿠오카 현 남부, 지쿠고 지방의 남서부에 위치하는 시이다.
후쿠오카 시로부터 니시닛폰 철도 덴진오무타 선으로 약 45분, 구루메 시, 오무타 시로부터 약 15분이다. 시내를 수로가 종횡으로 흐르기 때문에 물의 수도로 불리고 지쿠고 지방 남서부의 상업의 중심지인 것과 동시에 수로를 사용한 강놀이, 옛 번주 다치바나 씨의 별저 "쇼토엔",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 등의 문화인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간척지를 중심으로 풀, 아리아케 해에서 김의 양식 등이 활발한도시이다.
구 야나가와 시역, 구 미쓰하시 정역은 후쿠오카 도시권에 속한다.
후쿠오카 현 남부, 지쿠고 지방의 남서부에 위치해 기타큐슈 시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후쿠오카 시에서 남쪽으로 약 50km, 구루메 시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오무타 시에서 북쪽으로 약 15km의 거리에 있다. 시의 거의 전역이 평탄지이기 때문에 시역 면적 76.9km²가운데, 99.8%가 가주지이며 가주지면적은 현내 6위이다.
시형은 남북 12km, 동서 11km의 부채꼴이다. 시의 북동부는 서쪽을 지쿠고 강, 남동쪽을 야베 강이 부채의 양단을 형성하고 있고 그 사이를 야베 강에서 분기한 오키노하타 강, 후타쓰 강, 시오즈카 강이 시내를 가로지른다. 야베 강을 포함해 각 하천은 부챗살처럼 북동쪽에서 남서방향으로 흘러 모두 시의 남서쪽의 아리아케 해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각 하천으로부터 분류하는 수로가 시내를 종횡하여 흐른다.
시역의 중심부에 옛 야나가와 번의 성시와 니시테쓰 야나가와 역 주변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시가지를 둘러싸듯이 주택지 및 농지가 펼쳐져 있다. 니시테쓰 야나가와 역 주변은 후쿠오카 시의 교외·베드타운의 양상이며 성시로부터 발전한 조나이 지구와는 분위기가 차이가 난다. 시내를 니시테쓰 덴진오무타 선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후쿠오카 시, 구루메 시로의 통근 도시권을 형성한다.
번의 행정 시대(1603-1869年)의 유산이 숨쉬는 물의 구도탐승
후쿠오카(福岡)에서 남쪽으로 60분 정도에 위치하는 성(城)의 마을 야나가와(柳川)는 중심시가지 2km 사방에 연장 60km에 걸쳐 수로(堀割,호리와리)가 종횡으로 둘러쳐진 물과 공생하는 세계유수의 도시입니다.
이 수로는 지금부터 약 400년전 번의 행정 시대에 치쿠고(筑後)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 야나가와성을 축성할 때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치수(治水)・이수(利水)를 위한 수리체계가 정비되었으며 선조의 지혜에 의한 여러가지 구조가 지금도 숨쉬고 있습니다.
강에 가설되어 있는 다리를 주의 깊게 보면 다리는 강폭보다 상당히 좁게 만들어져 V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물의 흐름을 좁은 입구에서 막고 다리 아래에서의 흐름을 늘림으로 해서 산소를 받아들여 물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또 상부가 넓게 되어 있는 것은 수량이 늘었을 때 물의 흐름을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리아케해(有明海)는 간만의 차이가 6m나 되어 만조 때는 육지보다 바닷물면이 높아지기 때문에 간조 때에 배수하고 만조 때에는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제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제방은 약 100기나 있어 강의 수리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밀기계와 같은 작용을 합니다.
http://kawakudari.com/korea
야나가와 카와쿠다리 뱃놀이 -시내를 종횡으로 질러 흐르는 수로를 '돈코부네'라고 하는 옛날 그대로의 나룻배를 타고, 한가로운 사공의 뱃노래를 들으면서 막힘없이 강을 내려간다. 물풀이 뜨는 수면에는 수양버들이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사계 철마다의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다. 붉은 벽돌로 세운 나란히 서있는 창고, 흰 흙벽돌의 이은 틈을 석회로 불룩하게 만든 벽. 진기한 어로법인 거미발 어망 등, 거기에는 키타하라 하쿠슈가 노래한 시의 세계가 펼쳐 있다.=>뱃놀이장 도착
비가 계속 온다.
우비를 준비했다.
세찬 소나기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큰 걱정이다. 사진 좀 찍어야 하는데......
비는 와도 즐겁다.
나무에는 '일엽http:참고//blog.일엽초 (daum.net)daum.net/shinh-k791104/4254
'수구리'를 몇 번
우리가 했다.
전문가가 아닌예부터 이곳에서 살았던평범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물결과 함께 춤을 추었다.앞배를 움직이는 사공의 뱃노래는 힘찼다.
우리 배의 사공은 구성졌다.
푸르러서 좋았다.
딱 20분 탔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중국댕강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7396
먹을 때는 즐거운 것이야
초밥이다.
다시 타고
2,30분 또 간다.
오늘 따라 중국 크루즈선이 후쿠오카항에 들어와 중국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유명 신사에 중국인들까지 그래서 좀 늦었다.
공부의 신이라 하니 많은 사람이 찾을 듯
인간은 사는 동안 빌 것이 하도 많아
암튼 복잡하다.
다자이후텐만구
주차장에서 200여미터 상점이 많은 거리를 지나야 한다.
상점의 유혹에 많이 넘어간다.
하기야 그 맛을 즐기는 것도
관광이리라.
이제 좌회전이다.
마눌 증명사진 찍고
직진
석등이다.
협회라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협찬석등은 우리 문화재도 많다.비교된다.국보 제17호 영주부석사앞 석등
http://blog.daum.net/shinh-k791104/2422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http://blog.daum.net/shinh-k791104/1704 국보 제44호 장흥 보림사 석등
http://blog.daum.net/shinh-k791104/1685쌍계사에 있는 석등 마지막 토리이다.
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양쪽에 석등이 많다.
우리의 홍살문 같은 것(토리이)이 여러개다.
의미는 알 수 없고
그냥 간다.
차근 차근 식물을 좀 보아야 하는데
너무 급하다.다자이후 덴만구신사 - 신사 4 Chome-7-7番-1号 Saifu Dazaifu-shi, Fukuoka-ken 818-0117
Michizane, who had been a high-ranking government officer, was demoted because of the slander and political chicanery
of his rivals, the Fujiwara clan.
He endured a life of extreme hardship and misery in exile at Dazaifu, yet preserved his character continuing his scholarly
studies and never developing the hatred for those who had exiled him. He died in 903 at the age of 59.
His funeral procession was a melancholy occasion, attended only by his faithful follower Yasuyuki Umasake and a few
neighbors. The coffin was carried on a wagon hauled by an ox led by Yasuyuki, according to the legend the ox suddenly
came to a halt and refused to budge despite threats and entreaties. The burial therefore took place on the spot, and this
became the site of the Tenmangu's main shrine visited today by so many admirers.
Michizane was born in Kyoto in 845 into a family of scholars and was heir to a long tradition of loyal service to the Emperor.
He was a devoted scholar from his earliest years and at the tender age of five gazed at a plum tree in the family garden and
composed this celebrated Waka;
"How beautiful the red plum blossom, I wish to color my cheek with it."
By the age of eleven he was composing poetry in the Chinese style and using Chinese characters.
He went on to serve the Emperor as a trusted Minister of the Right, until he fell into disfavor and was exiled to Dazaifu, as
Dazai Gonnosochi. Two years of his exile were spent at the Minami-kan(South hall) of Enokidera(present Enokisha), the
detached office of the Dazaifu Government.
Michizane is celebrated as a man, pure in heart and deed, and after his death he was deified and worshipped as a God.
The way of the kami(deities). Numerous deities, including clan ancestors, were worshiped in ancient Japan, and official
life was also inextricably bound up with worship of the gods. However, this native religion was not known by any particular
name until Buddhism and Confucianism were imported from the Chinese continent. As a religion, Shinto is not based on a
founder, dogma, or sacred scripture, but rather on custom, reverence for ancestral traditions, and living and acting according
to the guidance of the gods. The imperial house has preserved a relatively pure version of this ancient tradition; popular
beliefs have generally developped in amalgamation with other religions.
There are approximately 6,000 plum trees of 197 varieties in the vicinity of Tenmangu, reflecting Michizane's lifelong affection
and regard for the trees and their blossoms.
Perhaps the most famous is the one to the right of Honden (main shrine). Known as Tobiume (the flying plum tree), legend
has it that after Michizane left Kyoto for a life in exile, this particular tree yearned so much for him that, uprooting himself,
it flew to reunite with him in Dazaifu.
In early January each year, Tobiume is always the very first tree to blossom, and the thousands of other trees quickly follow,
producing an incredible sight when the Tenmangu is coverd in small pink and white flowers.http://www.dazaifutenmangu.or.jp/en
波瀾萬丈 生涯
類まれなる才能の持ち主であり、人々から厚い信頼を得ていた菅原道真公。
そのご生涯は、政略による左遷など波乱万丈のものでした。
神童と称された幼少期
Michizane의 뿌리는 밝히지 않았다.http://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3513에는 이런 주장이 있다.교토시에 있는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 후쿠오카시의 다자이후텐만궁(太宰府天満宮), 야마구치현의 호후텐만궁(防府天満宮) 은 우리의 조상 스가와라를 모시는 일본의 3대 천신신사(天神神社)로 유명하다..............일본의 신사는 신사의 격에 따라 궁(宮), 대사(大社), 신사(神社)로 불리는데 스가와라를 모시는 텐만궁은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명치왕 사당인 명치신궁(明治神宮)에 버금가는 품격 높은 사당이다. 다자이후텐만궁에서 학문의 신으로 떠받느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태어난 것은 서기 845년 8월 1일로 아버지 스가와라노 고레요시와 어머니 오오토모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글을 또박또박 잘 읽어 신동으로 불린 꼬마 신동 스가와라 집안은 할아버지 대대로 고급 관리와 문장박사로 통하던 집안으로 증조부 스가와라노 후루히토(菅原古人)때에 하지(土師))씨에서 스가와라(菅原)로 성을 바꾸었다......족보는 노미노 스쿠네부터 족보가 시작되지만, 노미노 스쿠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서기》에 “수인천황(垂仁) 3년 3월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일본발음 아메노히보코)이 왔다. 그가 가져온 것은 구슬, 칼, 창 등 이른바 7종의 신기(神器)로 이것은 현재 효고현에 보존하고 신물(神物)로 삼고 있다.”라고 했으며 《신찬성씨록》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천손(天孫) 곧 신라에서 건너온 왕자인 천일창의 후손이다.”라고 되어 있다.......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는 일본의 대중 스포츠 ‘스모’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며 ‘스모’는 《일본서기》 수인천황기(垂仁天皇紀)에 스마히(捔力)라고 했으며 수인 7년조(垂仁7年)에 보면, 당시에 천하장사라고 뻐기던‘다이마게하야(當麻蹶速)’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을 물리칠 사람을 찾던 중 이즈모(出雲) 출신의 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가 나타나 한판 결투를 시킨 결과 보기 좋게 한방에 게하야를 때려눕혔다.
그래서 천황은 거들먹거리던 게하야의 토지를 몰수하여 노미노에게 하사하고 천황의 곁에서 보필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일본 씨름인 스모의 시작이라고 일본역사는 쓰고 있다. 한반도 출신 노미노 스쿠네는 일본 스모의 창시자인 것이다.........스가와라의 맨 처음 족보상의 첫 인물인 일본스모의 창시자 ‘노미노 스쿠네’ 다음 인물을 살펴보자. 그 후손의 성씨가 그대로 ‘노미’씨라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러나 족보에서 보듯이 ‘스모 할아버지’는 성씨를 이내 ‘하지(土師)’로 바꾸게 된다.....이때의 상황을 《속일본기》를 통해 살펴보자. 때는 수인천황(垂仁天皇) 32년으로 사랑하던 왕비가 죽었다. 그때까지 일본은 무덤에 산 사람을 함께 파묻는 순장제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조정안은 늘 시끄러웠다. 문명사회로 한발자국씩 내달으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그래서 수인천황은 왕비의 장례를 앞두고 산 사람을 순장 시키지 않을 묘안이 없을까를 대신들과 의논하였는데 이때 스모 창시자 노미(野見宿祢)씨가 순장을 대신할 좋은 아이디어를 천황에게 제시했다. 당시에는 힘이 센 자가 머리도 좋았던 모양이다. 노미씨는 산 사람 대신 흙으로 사람형태의 인형과 말을 무덤에 묻을 것을 권유하고 스스로 손수 이를 만들어 천황에게 바쳤다. 이를 하니와(埴輪)라고 한다. 수인천황은 산 사람을 매장하지 않고 사람형상을 묻는 방법을 일러준 노미의 아이디어에 몹시 기뻐하며 그 공적을 칭찬해마지 않았다. 이에 수인천황은 노미(野見) 씨에게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으므로 흙을 다룰 줄 아는 스승이란 뜻의토사(土師, 일본 발음은 하지)성을 하사했다. “흙의 스승”이란 “흙의 연금술사”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히 흙으로 말과 사람형상만을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土師)라는 성을 하사받기 전인 노미(野見)라는 성씨는 건축 도구인 “끌”이라는 연장을뜻하는 일본말로 노미=하지씨는 흙과 나무와 석재를 잘 다룰 줄 아는 건축과 조각에 뛰어난 한반도 출신의 장인 그룹이었던 것이다. 《속일본후기》에도 하지(土師)씨는 노미(野見宿禰)씨의 후예이며 이즈모계(出雲系)로 설명하면서 아메노(天穂日命)→다케노(建比良鳥命)→노미(野見宿禰) →하지(土師)-스가와라(菅原)씨 관계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노미노 스쿠네 할아버지는 천황으로부터 하지(土師)라는 성을 하사받았고 하지 씨는 다시 일본의 50대 천황 간무왕을 낳은 생모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친정인 大枝(오오에) 씨와 학문의 신 스가와라( 菅原)씨 집안으로 나뉘게 된다. 이 일은 스가와라의 증조부 때의 일이다.이렇게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집안은 이른바 ‘도래인’으로서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건너와 황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조정에서는 문장박사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학자 집안에 태어나 걸음마를 익힐 때부터 글을 배운 스가와라가 5살에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는 것은 어쩜 새삼스런 일이 아닐지 모른다.천만궁 신사의 제신(祭神)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자랑스럽게도 한반도계 출신 학자이다.
증조부 :증조부 스가와라노 후루히토(菅原古人)조부 :기요토모헤이안시대 제일가는 천재라고 칭송받은 인물이다. 격은 낮지만 학자가문인 스가와라 가에서 태어나[6]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재상급인 우다이진(우대신:右大臣)까지[7] 올랐다.살았다고 알려진 땅이 가야계 스에키 토기가 발견되는 옛 금관가야인의 주거지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역시 하제 씨의 후손으로가야인의 피를 잇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기도 했지만 신라사부로 떡밥과는 달리 그렇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7] 우리나라로 치면 우의정 정도이다. 게다가 헤이안시대 일본은 오를 수 있는 관직과 관위가 타고난 신분에 따라서 거의결정되기 때문에 낮은 신분은 아무리 애를 써도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없던 때이다. 한마디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엄청난 인물.그러나 그 대가가 너무 비쌌다.https://namu.wiki/w/%EC%8A%A4%EA%B0%80%EC%99%80%EB%9D%BC%EB%85%B8%20%EB%AF%B8%EC%B9%98%EC%9E%90%EB%84%A4나무위키......전략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845년 교토에서 스가와라노 고레요시와 도모도 사네나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가와라씨는 고대유력 호족인 하지씨(土師氏)의 일문으로, 헤이조쿄의 스가와라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미치자네의 할아버지 기요토모와아버지 고레요시는 당대 뛰어난 유학자로, 아버지는 대학 문장과(文章科)의 수장인 문장박사를 역임한 고위 관료였다...........후략결국 947년 무녀 다지히노 아야코가 교토 기타노에 사당을 건립하고 미치자네를 천신으로 모셨다. 그곳이 기타노텐만 궁이다..........후략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18800014구즈노기(大樟) 나무-녹나무마침 국화전시회가 있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음보는 국화다.
종이로 꽃잎을 받쳐주고 있다.
아마도 꽃잎이 처지는 모양이다.
처지는 꽃잎이 아니라면 더 인기가 많겠다.
주를 이루는 문양은 매화 문양이다.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옥천교를 닮았다.
황소상
The coffin was carried on a wagon hauled by an ox led by Yasuyuki, according to the legend the ox suddenly
came to a halt and refused to budge despite threats and entreaties. The burial therefore took place on the spot, and this
became the site of the Tenmangu's main shrine visited today by so many admirers.
매화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언제부터 이 문양을 사용했을까?
궁금타.
온통 매화문양이다.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한다고 참례 방법이......
참례할 때 눈은 어디를 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이 거울(?)을 보아야 하나?
좀 위의 거울(?)을 보아야 하나.
나는 무식하다.
도비우메<飛梅>-비매
본전 앞에 있는 도비우메<飛梅>라고 불리우는 꽃 나무가 바로 전설을 간직한
( 매화 가지가 교토에서 규슈로 날아와 하룻밤 새 6천 그루나 꽃을 피웠다는)
나무라고 한다.
녹나무 연리지다.
천연기념물 녹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4581
좀참빗살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3435
콩짜개덩굴http://blog.daum.net/shinh-k791104/3384
천연기념물 녹나무
우단일엽http://blog.daum.net/shinh-k791104/3830
다음 일정 하카다 타워로 향했다.15:00처음본 꽃큰일본노각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7389
중국댕강나무http://blog.daum.net/shinh-k791104/7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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