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송 화지재 (靑松 花池齋))-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문화재/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2014. 11. 9. 12:52
청송 화지재 (靑松 花池齋)-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
청송 화지재 (靑松 花池齋)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 명칭 청송 화지재 (靑松 花池齋)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일곽 지정일
2013.04.08 소재지
안덕면 장전리 115 안덕면 장전리 115 시대
소유
관리
설명
청송지역 영양 남씨 시조인 남계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이곳은 명당으로 건물과 비석,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질서 있게 자리잡고 있다. 1670년경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으며 17세기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남아 있지 않지만 독특한 지붕 양식을 지니고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재실 건축물로 민속적 가치를 지닌다.청송 화지재 (靑松 花池齋) 성명 : 남계조(南繼曺) , 1541년 ~ 1621년 본관
: 영양 자
: 선술(善述) 호
: 운강(雲岡) 출생지
: 경북 출신지
: 경북 청송군 영양 분묘지
: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화지골 증직및기타
: 통정대부호군(通政大夫護軍) 생애이야기
남계조(南繼曺, 1541~1621)는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자는 선술(善述)이며 호는 운강(雲岡)이다. 할아버지는 남찬(南讚)으로, 교위(校尉) 남현범(南賢範)의 아들로 선조(宣祖) 때 부사과(副司課)를 지냈다. 아버지 근재(謹齋) 남억령(南億齡)은 참봉(參奉)을 지냈다.
남계조는 어릴 때부터 모습이 빼어났고 글재주가 뛰어났다. 8살에 시를 지으니 아버지가 “우리집 문종(文種)이 끊어지지 않았다”하고 크게 되기를 기대하였다. 1554년 13세에 부친상을 당했는데, 어른처럼 엄숙하게 상례를 치러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퇴계(退溪)의 문인인 비지(賁趾) 남치리(南致利)와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인 남정방(南靖邦) 두 선생에게서 수학하였다. 학문과 행실이 빼어나서 수월(沙月) 조검(趙儉)과 사월(沙月) 조임(趙任) 등이 그를 흠모하고 공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맏형인 남윤조(南胤曹)가 화왕산성(火旺山城) 의진(義陣)에 참가하자, 남계조는 모친을 모시고 안덕면 장전리에 피난했다. 그러나 남윤조가 화왕산 의진에서 전사하였다. 남계조는 형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통곡하면서 초혼사(招魂辭)를 짓고, 형을 부친의 곁에 장사지냈다. 이 일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형은 나라를 위하여 충성(忠誠)을 하고, 동생은 어버이를 효로 섬기어 가히 효와 충을 둘 다 온전하게 하였다”고 집안 형제를 칭송했다. 또한 관찰사(觀察使) 김수(金晬)가 남계조를 충효가 뛰어나다고 천거하여, 그는 통정대부호군(通政大夫護軍)에 제수되었다.http://www.ugyo.net/tu/psn/man.jsp?sMan_Code=20282&sType=life
'문화재 > 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시행가옥-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3-8호 (0) 2014.11.13 방호정 (方壺亭)-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1호 (0) 2014.11.11 안동세덕사 (安東世德祠)-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7호 (0) 2014.10.31 함양 벽송사 목장승-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2호 (0) 2014.05.15 고성봉동리배씨고가 (固城鳳東里裴氏古家)-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6호 (0) 201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