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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함묘에서 한자로 인해 혼동을나의 문화재 이야기 2009. 9. 22. 10:21
윤인함묘에서 한자로 인해 혼동을
2009.9.21 윤인함묘를 찾았다.
사전 정보도 없이 물어물어 찾아간 곳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길게 여러개의 묘가 이어져 있다.
어떤 것이 윤인함의 묘인가?
제일 앞에 있는 이 묘를 보고 바로 이것이구나.
오른쪽 비를 보니 尹仁洽이다.
이렇게 여러 기가 죽 늘어서있다.
두번 째 묘는尹 應奎(응규)다.
세번 째 묘는
尹 宕(탕)이다.
네번 째 묘는
尹 師淵(사연)이다. 이 묘소만 벌초가 되어있지 않았다.
다섯번 째 묘는
尹 仁涵(인함)이다.
맨 위에는 방향을 달리잡은 선대의 묘인가 보다.
윤 사하 묘다.
[洽]을 [함]으로 읽은 내가 한심하다.
[洽]이 [흡]자 인 것을 모르고.이것이 尹 仁涵묘였다.
이 尹仁洽(윤인흡)의 묘를 尹 仁涵(윤인함)의묘로 보았으니 한심했다.
윤사하 : 윤인함의 증조
윤인함
【성 명】 윤인함(尹仁涵)
【생몰년】 1531(중종 26)∼1597(선조 30)
【본 관】 파평(坡平) 윤(尹)
【자·호】 양숙(養叔), 죽재(竹齋), 죽당(竹堂)
【저서·작품】 《죽재집(竹齋集)》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31(중종 26)∼1597(선조 30).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양숙(養叔), 호는 죽재(竹齋) · 죽당(竹堂)이며, 윤사하(尹師夏)의 증손으로 윤탕(尹宕)의 손자이며 첨정 윤응규(尹應珪)의 아들로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명종 8년(1553) 진사시에 오르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 대교(待敎) · 정자(正字) · 박사(博士) · 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1561년 전조(銓曹)의 좌랑(佐郞)으로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63년 이조 정랑이 되어 동료들에게 인사에 대한 기밀을 누설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었다. 전적 · 풍덕 군수 · 양주 목사 · 사복시 정 등을 역임하고 1584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工曹)와 호조(戶曹)의 참의(參議)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주 부윤으로서 적군을 방어하지 못한 죄로 좌천되었으나 경주가 함락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적병 수백명을 죽였다. 1596년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제수되고 이듬해 영위사(迎慰使)를 겸임하여 명나라 장수와 평양으로 출영나갔다가 객사하였다.
문장과 그림에 능했고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다. 저서에 《죽재집(竹齋集)》이 있다.
윤사연
윤탕 : 윤인함의 조부
윤응규 : 윤인함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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