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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사지나의 문화재 이야기 2021. 3. 8. 15:22
3 보물 제538호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洪城 五官里 幢竿支柱)이 일대는 고려시대의 광경사(廣慶寺)터로 알려져 있고 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함께 전하고 있다.
월계천이 남문천이 합류되는 홍성읍 대교리 제방길 밑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일대를 광경사지라고 부르며,광경사지의 남쪽에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만다라 불교 문화원 | 광경사지 당간지주 (廣景寺址幢竿支柱) 홍성 오관리 / 보물 538호 - Daum 카페
미륵사지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한건택님)충남 홍성군 홍성군 38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광경사지삼층석탑
(廣景寺址三層石塔)광경사의 옛 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3층 석탑
1914년 일본인이 자가집 정원으로 옮긴 것을 1959년에 홍성여중으로
홍성군 제작 안내문
산행 과 여행 | 홍성 광경사지 3층석탑(문화재자료(제159호) - Daum 카페한악어님의 말에 따르면 광경사지라는 절은 없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역사교사가 광경사지라고 부친 것이 유래가 되어 그렇게 불린다고 하는데 한악어님은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꼭 바로잡고 싶어 한다. 홍성여중 입구에 있는데 탑이 여기까지 오게 된 유래와 이름이 참 기구하다.
이 석탑은 홍성읍 대교리의 옛 절터였던 광경사지 당간지주 옆에 있었다.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 내포 불교문화재 답사 마지막 날, 홍성, 보령 - Daum 카페
[ 문화행사 > 문화소식 > ] (cnkccf.or.kr)충남 홍성군 홍성군 39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0호대교리석불입상
(大橋里石佛立像)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에 있는 불상으로 광경사지 미륵불이라고도 불린다. 충남 홍성군 홍성군 40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광경사지석불좌상
(廣景寺址石佛座像)홍성읍 대교리 광경사에 있었던 것으로 1975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광경사지에 있던 것인데 홍성읍 오관리 191번지 정돈영집 뒤뜰에 안치되었다가 1975년 4월 현 용주사로 옮겨왔다.
원래는 홍성읍 대교리 광경사에 있었던 것으로 1975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일설에 의하면 용방치기사지에 있었던 불상이 광경사지삼층탑(내현리 탑골사지 탑)의 일본인과 다른 일본인에 의해 당시 조양문 앞 조양각의 정원에 옮겨졌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孤雲 文學館 | [연재 36] 구재기 시인과 함께 詩로 찾는‘너른 고을, 홍성洪城’ / 광경사지 석불좌상廣景寺址 石佛坐像 앞에서 / 구재기 - Daum 카페
홍성의 용주사 석불좌상 즉 광경사지 석불좌상이 빈절골사지에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한다.
광경사지석불좌상이 아니고 충청남도지에 용봉산에서 반출된 불상이라는 기록이 있고 증언도 있다고 한다.
가야산역사문화연구소 | 빈절골사지 - Daum 카페
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 광경동이라고 한다. 여기서 광경사지라는 유령사찰의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내 눈에는 불상처럼 보이는데 한악어님은 불상같이 보이냐고 묻는다. 근처에 소원지를 매다는 곳이 있는데 일본식이라고 한다. 공무원들이 조금만 신경쓰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텐데..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 내포 불교문화재 답사 마지막 날, 홍성, 보령 - Daum 카페충남 홍성군 홍성군 우리문화 사랑 모임(우사모) | 홍주성과 광경사지 - Daum 카페
사라진 광경사지탑을 찾아서-한건택님
전략
내용은 현재 홍성여자중학교에 있는 광경사지탑은 본래 내현리 탑골에 있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에 의하여 구성모병원근처(현재 홍성읍 명동골목부근)에 있는 그의 집 정원에 옮겨졌다. 1945년 해방이 되며 그 일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탑골의 탑은 다행이 일본으로 반출은 안 되었다. 이어 구성모병원 근처에 홍성여자중학교가 개교를 하였고, 1959년 학교가 커지자 현재의 소향리로 이전을 하면서 내현리 탑골의 탑도 같이 이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홍성여자중학교 역사교사가 광경사지에서 나온 탑이라고 말하면서 광경사지탑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고 현재 안내판에도 광경사지 당간지주 옆에 있었다라고 되어있다. 이 사실은 전범수(75세, 구항 내현리 거주)씨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범수씨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구항 내현리 탑골의 탑밭에서 일본인에 의해 홍성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홍성여자중학교에 있다는 얘기를 확실히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후략
충남도 문화재자료(159호)로 지정되어 있는 홍성 광경사지 석탑은 원래 광경사의 탑이 아니고, 실제 광경사의 탑은 홍주성 조성시에 파괴되어 축성에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홍성군 문화재해설사 한건택 씨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홍성 읍내의 광경사지는 고려시대 홍성의 대표적 불교유적이었으나 도시 확장으로 인하여 완전히 멸실되고 현재 보물 제538호 당간지주와 문화재자료 제159호 삼층석탑(현 홍성여중), 그리고 문화재자료 제161호 석조불좌상(현 용주사)이 잔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석탑의 경우는 구항면에서 이전해온 것이며, 광경사지 석탑은 조선 초 홍주성 축성시에 축성의 석재 일부로 이용되어 그 부재가 지금도 읍성의 성벽에 산재하여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11월 18일(화)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제1회 충남 향토사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출처 : 금강뉴스(http://www.kknews.co.kr)노규홍 씨는 "홍성여중에 있는 광경사지 오층석탑 때문에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는데 이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군수는 "홍주성을 비롯해 문화재 때문에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데 문화재로 인한 군민의 피해를 최소화 하자는 것이 군의 방침"이라며 "탑 이전에 대해서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마을 주민 찾아 격식없는 소통 나서 | 바른지역언론연대 (bjynews.com)
대교리(광경동) 4구에서는 '미륵불'에 제사를 지내고 복을 기원했다.
'광경사지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대교리 석불입상'은 지난 1984년 5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대교리 놀이터 내에 세워져 있다.
중략
한편, '대교리 석불입상' 안내판에는 조선시대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농부가 발견한 것으로,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후략
정월대보름 소원, 가장 많은 건 "가족 건강·행복 기원"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일설에 의하면 용방치기사지에 있었던 불상
마을에 용방축이 있었다 해서 용방치기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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