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신라 제26대 왕인 진평왕(579~632 재위) 대의 충신 김후직(金后稷)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김후직은 진평왕 2년(580)에 병부의 으뜸 벼슬인 병부령*을 지낸 인물이다. 진평왕이 사냥만 즐기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자 김후직이 왕에게 사냥을 중지하기를 간언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고, 그는 병이 들어 죽었다. 그는 죽은 뒤에도 왕을 깨우칠 수 있도록 왕이 사냥을 가는 길목에 묻어 달라고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고 나서도 왕에게 충심으로 간언(簡言)하고자 했던 김후직의 말을 사람들은 ‘묘간(妙簡)’ 이라 칭송하였고, 그의 무덤을 ‘간묘’라고 불렀다. 무덤 앞에는 조선 숙종 36년(1710)에 경주부윤 남지훈이 세운 비석이 남아있다. *병부령(兵部令) : 신라 시대 병부(兵部)의 으뜸 벼슬. 법흥왕 때에는 1명을 두었다가 진흥왕과 태종 때 각각 1명씩 늘려 모두 3명을 두었다. 재상과 사신(私臣)을 겸하기도 하였다.
문화재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신라 제26대 진평왕(579∼632)대의 충신이었던 김후직의 묘이다.
진평왕 2년(580)에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병부령을 지냈으며, 진평왕이 사냥만을 즐기고 나라일을 돌보지 않아 중지할 것을 충고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세 아들에게 유언을 하여 왕이 사냥 다니는 길목에 묻게 해 죽은 뒤에라도 왕을 깨우쳐 주겠다고 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충신으로 불려온 것이다.
묘는 흙으로 높게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묘 앞에는 숙종 36년(1710)에 경주의 남지훈이 김후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