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안희제 생가는 초창연대가 17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건축물로 안희제가 기존 생가가 낡고 오래되어 1915년에 직접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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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안희제 생가 宜寧 安熙濟 生家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의령 안희제 생가는 1885년 안희제가 태어난 곳이다. 안희제 생가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큰 마루, 방,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건물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남쪽으로 1칸 크기의 마루를 두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또 별도의 건물을 두지 않고 한 건물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방을 둔 조선 시대 후기 민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안희제는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백산상회는 단순한 개인 기업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거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60% 이상을 지원하였다. 또 민족 교육과 민족 언론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투사로 헌신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문화재 설명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의 생가이다.
안희제는 독립운동가로 창남학교, 의신학교 등을 설립하여 신학문 보급에 힘을 썼으며, 민족언론의 선구자 역할도 하였던 분으로 5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2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6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왼쪽에서부터 마루·방·대청·방·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바짝 붙어 있다.
이들 건물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남쪽으로 마루를 1칸씩 구성하고 있어 특이하다. 또한 다양한 기능을 가진 방이 필요한데도 별도의 건물을 두지 않고 한 건물 내에서 해결하는 조선시대 후기의 주택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