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내가 본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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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문수사 극락보전(瑞山 文殊寺 極樂寶殿)-Geungnakbojeon Hall of munsusa Temple,Seosan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1. 19. 11:44
「문화재보호법」 제23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 제4항에 따라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에 관한 사항을 다음과 같이 예고합니다. 2024년 1월 16일 문화재청장 1. 공 고 명 :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 2.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내용 1)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ㅇ 지정명칭 :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瑞山 文殊寺 極樂寶殿)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수 량 : 1동 ㅇ 구조/규격 : 목조 / 와가 / 맞배지붕 ㅇ 소유자(관리자) : 문수사(문수사) ㅇ 지정구역(㎡) : 191.6 3. 지정사유 : 붙임 참조 4. 예 고 일 : 관보 공고일(2024. 1. 16.) 5. 예고기간 : 관보 공고일로부터 30일간 분류 유적건조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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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Wooden Seated Shakyamuni Triad of Ssanggyesa Temple , Jindo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1. 17. 14:43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수량 불상 3구, 발원문 3점, 후령통 3점 지정일 2018.10.04 소재지 전라남도 진도군 운림산방로 299-30 (의신면, 쌍계사)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 문화재 설명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현종 6) 희장(熙壯), 도우(道雨) 등 9명의 조각승이 합심하여 만든 불상으로, 가운데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좌․우 각 1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진 삼존불(三尊佛) 형식이다. 희장은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彫刻僧)으로, 쌍계사 불상은 그가 1660년대 중반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조성한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본존 석가여래와 좌우 협시보살상의 보존 상태와 도상의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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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英陽 縣里 五層模塼石塔)Five-story Stone Brick Pagoda in Hyeonri, Yeongyang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1. 11. 10:21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 1기 지정일 2020.07.27 소재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리 464 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초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양군 문화재 설명 「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북지역에 집중된 모전석탑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경북지역 전탑과 모전석탑은 초층탑신의 1면에만 감실을 마련하는 것이 특징인데 감실 좌우 문설주에 당초문을 조각하여 예술성을 높인 점은 이 석탑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모습이다. 또한 벽돌모양으로 석재를 다듬을 경우 각진 위치에 자리하는 모서리 돌들을 둥글게 처리하여 탑의 조형에 부드러움을 주고자 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점도 특이한 사례이다. https://youtu.be/kuWTpx0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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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사지석정 (南澗寺址石井)-Stone Well of Namgansa Site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1. 6. 20:01
남간사지석정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주거시설 수량 1기 지정일 1985.08.05 소재지 경북 경주시 남간안길 7 (탑동)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개별안내판 남간사지 석정 南澗寺址 石井 문화재자료 이 우물은 남간사 터에 남아 있는 돌우물로, 깊이가 1.4m 정도 된다. 자연석으로 외벽을 짜 올리고, 위쪽은 2매의 다듬은 돌로 원형 틀을 덮어 마감하였다. 우물 틀 둘레에 위아래로 이중테를 둘렀는데, 윗단은 직각, 아랫단은 곡선으로 조각하여 놓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간사의 승려 일념(一念)이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내력을 실은 「촉향분예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고, 남간사 동쪽에 승려 혜통(惠通)의 집이 있던 은천동(銀川洞)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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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Stone Seated Buddha in Samneunggye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1. 5. 06:39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수량 1구 지정일 1980.06.11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2-6 시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주시 안내판 개별안내판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보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자리한 석불로 불상의 몸과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추었다. 불상의 얼굴 아래쪽이 부서지고 광배(光背)도 부서져 흩어져 있던 것을 발굴, 조사한 후 복원하였다. 불상의 머리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큰 육계(肉髻)가 있다. 처음부터 불상의 머리와 몸을 따로 제작해 조립한 것인데, 얼굴 아래쪽이 심하게 손상되었던 것을 복원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친 옷은 옷의 주름이 간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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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慶州 遠願寺址 東·西 三層石塔)-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Wonwonsa Temple Site, Gyeongju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3. 12. 29. 19:18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 2기 지정일 2005.04.07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산12-3번지 시대 통일신라시대(8세기 중기)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주시 문화재 설명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사적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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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慶州 鍪藏寺址 三層石塔)-Three-story Stone Pagoda at Mujangsa Temple Site, Gyeongju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3. 12. 29. 18:19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 1기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암곡동 산1-7번지 시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주시 문화재 설명 무장사터는 경주시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깊은 산골에 있으며,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병기와 투구를 매장한 곳이라는 뜻으로 ‘무장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스러운 시대를 열겠다는 문무왕의 결연한 의지가 이 절을 창건하는데 큰 힘이 되었고, 또한 절 안에 3층석탑을 세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이다. 아래층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 2개를 새겼고, 윗층 기단은 동그란 안상(眼象)을 각 면에 2개씩 조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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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慶州 鍪藏寺址 阿彌陀佛 造像 事蹟碑)-Stele for the Construction of Amitabha Buddha at Mujangsa Temple Site, Gyeongju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3. 12. 29. 17:30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귀부이수 수량 2개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암곡동 산1-9번지 시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 경주시 개별안내판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慶州 鍪藏寺址 阿彌陀佛 造像 事蹟碑 보물 이 사적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왕비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아미타불상을 조성할 때 세운 비석이다. 건립 연대는 801년으로 추정되며 불상을 조성한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14년에 절터 주변에서 비석 조각들이 발견되어 이 절이 무장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국유사』에 무장사는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곳에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석은 파손이 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