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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리갈암고택 (梧村里葛庵古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9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2. 11. 15. 19:29
오촌리갈암고택 (梧村里葛庵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9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9호 명칭
오촌리갈암고택 (梧村里葛庵古宅)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1 동 지정일
2000.09.04 소재지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29 시대
소유.관리
이철희 설명
갈암 이현일(1627∼1704) 선생이 임진왜란 뒤 조선 현종 14년(1673)경에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현일 선생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학행이 높아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분이다. 지은 책으로는 『갈암집』과 편서로 『홍범연의』가 있다.
이곳은 퇴계 이황 선생의 학통을 이어 받아 이현일 선생이 학문을 익혔던 집으로 그 학행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이현일 [李玄逸]
태어난 때 1627(인조 5) 죽은 때 1704(숙종 30). 소속 국가 한국 소속 국가 부속정보 조선 직업 문신·학자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형인 휘일(徽逸)과 함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주요한 인물로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하여, 이이(李珥)학파의 설을 비판했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
아버지는 시명(時明)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로 흥효(興孝)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과 1648년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1666년(현종 7) 영남유생의 대표로, 효종의 모후인 조대비의 복상(服喪)을 만 1년으로 하자고 주장한 송시열의 기년설(朞年說)을 비판하는 소를 올렸다. 1679년(숙종 5) 허목(許穆)의 천거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1689년에는 산림유현(山林儒賢)에게만 제수되는 사업(司業)·좨주(祭酒)를 지내고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으로 과거를 실시할 때 승보시(陞補試)·학제(學製)·도회(都會)·잡과(雜科) 등을 폐지하고 덕행·문예를 중심으로 한 정자학교(程子學校)의 제도와 공거제도(貢擧制度)를 따르는 과거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이조참판·찬선을 거쳐 병조참판·우참찬·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추방되자 조사기(趙嗣基)를 신구(伸救)하다가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서인 안세징(安世徵)의 탄핵을 받아 종성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1697년 광양으로 이배(移配)되었고, 전리방귀(田里放歸)의 명이 내린 뒤 안동의 금양(錦陽)에 집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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