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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사존재 (盈德 思存齋)-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8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9. 3. 3. 10:31
영덕 사존재 (盈德 思存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8호
종목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28호
명칭
영덕 사존재 (盈德 思存齋)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
1棟
지정일
2007.10.25
소재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23-1 ,122-5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김영락
설명
사존재(思存齋)는 장례원 판결사에 증직된 신봉상(申鳳祥, 1518~1567)의 아들 운계 신경제(雲溪 申經濟, 1555~1614)와 중형이지만 백부 인상(麟祥)에게 양자간 삼우정 신의제(三友亭 申義濟, 생몰년 미상)를 추향하기 위해 후손과 지역 사림에서 건립한 재사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의 홑처마 팔작와가로 평면 구성은 어칸의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中堂挾室)형이며 전면과 좌측면에는 헌함(軒檻)을 두르고 난간마루 가장자리를 따라 계자각난간으로 장식하였다. 18세기 창건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긴 하지만, 一자형 재사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평면구성과 투박한 고식의 치목수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다.
신봉상(申鳳祥, 1518~1567)
율리 문중 입향조인 운계공(雲溪公) 판관(判官) 신경제(申經濟) 선조님의 상계는 판사공파의 파조이신 15세 판사공(判事公) 휘 득청(得淸) - 16세 예(藝) - 17세 영석(永錫) - 18세 희(禧) - 19세 명우(命佑) - 20세 종부(從簿) - 21세 봉상(鳳祥)선조님이시다.
영덕 삼근리에서 거주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왕산전에 참여한후 군자감 판관(軍資監 判官)을 제수 받은후 이곳 신안으로 이주하여 촌락을 형성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14대 종손 봉진 옹과 종부 남경휴 여사가 종가를 지키고 있고 15대 홍국 宗은 학군장교출신으로 외환은행 간부로 근무하고 있고 퇴직후 낙향하여 뒤를 이어 종가를 더욱더 부흥시킬 것이다. 16대 재협군이 있다.
운계 신경제(雲溪 申經濟, 1555~1614)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제(申經濟, 1555∼1614)의 시문집이다. 신경제는 자가 경설(景說)이고 호가 운계(雲溪)이다. 신경제는 1592(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형인 신홍제(申弘濟)․신의제(申義濟) 등과 의병을 모집하여 화왕산(火旺山)으로 가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왜적을 물리쳤다. 그 전공이 인정되어 선교랑(宣敎郞)과 군자감(軍資監)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선교랑에 임명될 때 지은 시가 「봉선교랑교지감음(奉宣敎郞敎旨感吟)」 2수이며, 의병을 모집할 때 지은 격문(檄文)이 「화왕산성부의격문(火旺山城赴義檄文)」이다.
이 문집은 8세손 신규(申圭)가 편집하여 1867(고종 4)년에 간행하였다. 이 문집의 목판은 사주쌍변(四周雙邊)과 반광(半匡),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삼우정 신의제(三友亭 申義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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