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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종택(牧使公宗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0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9. 3. 3. 11:14
목사공종택(牧使公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0호
종목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20호
명칭
목사공종택(牧使公宗宅)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
1棟
지정일
1996.07.16
소재지
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1길 5-10 (칠성리)시대
시대미상
소유.관리
박신일
설명
조선 선조 때의 무관 박홍장이 살던 집이다.
박홍장(1558∼1598)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장수로 유성룡이 추천하여 왜란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다. 도요토미가 사절일행을 멸시하였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 가옥은 선조 3년(1570)에 세워 전하다가 숙종 46년(1720)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이루는 팔작지붕이다. 천장에 초가집이 까치구멍집과 비슷한 형태인 투창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박홍장(1558∼1598)
개설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임(士任). 증 사복사정 박지몽(朴之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공조참의 박영기(朴榮基)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세렴(朴世廉)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병사(兵使) 박의장(朴毅長)의 아우이다.생애 및 활동사항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아이만호(阿耳萬戶)가 되었고, 그 뒤 선전관·제주판관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방장(助防將)이 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귀향하였다. 1596년(선조 29)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통신사의 부사가 되어 정사 황신(黃愼)과 더불어 강화의 중책을 띠고 일본에 갔다.도요토미[豊臣秀吉]가 조선사절을 멸시, 국서에 답하지 않았으나 조금도 굴함이 없이 국가의 체면을 욕되게 하지 않고 돌아온 뒤 가자(加資)주 01)되었다. 그해 순천부사를 거쳐 상주목사 재임 중에 죽었다. 사후에 형 박의장과 함께 영해(寧海)의 구봉정사(九峰精舍)에 제향되었다.주석- 주01
- 품계가 오름
집필자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380 에서- 집필 (1997년)
- 조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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