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덕 삼벽당(盈德 三碧堂)-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90호문화재/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2019. 3. 2. 12:51
영덕 삼벽당(盈德 三碧堂)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90호
종목 경상북도민속문화재 제190호
명칭 영덕 삼벽당(盈德 三碧堂)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 1동
지정일
2017.05.15
소재지
경상북도 영덕군 인량1길 21-2 (창수면, 영덕삼벽당)
시대 소유
관리
설명
삼벽당은 영천이씨 하연공파 이중량(자 공간, 호 하연, 연산 10년(1504)~ 선조 15년(1582))의 종택이고, 그의 父는 농암 이현보이다. 이 건물은 인량마을의 좌측의 뒤편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배치는 사당과 우측에 ‘ㅁ’자형 본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반이고, 중문간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다. 삼벽당의 주요 특징은 본체 대청의 배면 창호에 가운데설주 홈 자국과 몸체 우측 익랑의 문얼굴에서도 고식의 특징이 잘 남아 있어 조선중기의 건물 구성요소들이 잘 갖추고 있다.
2017.05.15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되었으나 아직 교체를 못했다.이중량李仲樑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권지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곧 예문관에 선임되어 1536년까지 검열·대교·봉교를 역임하였다. 1537년 세자시강원설서·승정원주서를 거쳐, 경상도관찰사인 아버지 현보의 관하 수령이 명사를 위한 지대물(支待物) 진상을 상찰(詳察)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장계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파면되었다.1539년 어머니의 상을 마친 뒤 예문관봉교에 복직되고, 곧 성균관전적에 승진한 뒤 예조좌랑·정언을 역임하였다. 1541년 11월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곧 병조정랑·경기도도사를 거쳐 1542년 황해도도사, 이듬해 부모 봉양을 위해 영천군수를 자원하였다.1549년(명종 4) 종부시첨정으로 입조한 뒤 삼척부사로, 1550년 청송부사, 1554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면서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다. 1557년 아버지의 상을 마치고 사헌부장령에 복직한 뒤 사간·집의를 거쳐, 1559년 특명으로 홍문관에 선임되어 교리·전한·직제학을 역임하였다.그 해 11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자하면서 승정원동부승지에 발탁, 이후 1561년까지 우부승지·예조참의·좌부승지·우승지·5위장을 지냈다. 1562년 상주목사, 1563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뒤 경주부윤으로 옳겼고, 1564년 경주부의 군액이 많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1567년 영해부사, 1570년(선조 3) 공조참의, 곧 강원도관찰사에 체직되었으나, 1572년 병사(兵事)를 소홀히 했다고 파면되었다. 이후 승지(勝地)를 유력하면서 유유자적하다가 죽었다. 성품이 과묵하고 겸손했으며, 효행과 학행이 뛰어났다. 20여 년간 외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었고, 특히 영해부사 때는 유민 정착에 힘써 칭송을 받았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014 에서'문화재 > 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강고택(曲江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123호 (0) 2019.03.02 인양리용암종택(仁良里龍巖宗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 61호 (0) 2019.03.02 영덕 우계종택 (盈德 愚溪宗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4호 (0) 2019.03.02 영덕 괴시동 태남댁 (盈德 槐市洞 台南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8호 (0) 2019.03.01 영덕 괴시동 해촌고택 (盈德 槐市洞 海村古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70호 (0) 201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