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선생 생가는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1891~1968) 선생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집이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양반집을 따라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광이 있는 집), 정자로 이루어졌으며, 1844년 이병기 선생의 조부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승운정(勝雲亭)이라는 작은 정자는 1906년에 지은 것이다. 사랑채에 수우재(守愚齋)라는 현판이 걸린 2칸 방은 이병기 선생이 생활하던 곳이며, 한 칸 건너 진수당(鎭壽堂)이란 현판이 걸린 방은 서재로 사용하였다. 분수를 지키며 바보처럼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수우재’란 이름에서 이병기 선생의 고결한 기품과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문화재 설명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이다.
시조의 현대적 혁신과 부활을 위한 새 운동을 전개하며 고전 발굴 연구에 힘쓴 가람은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말과 글을 보존하는데 노력하였다. 주된 공적은 시조에서 이루어졌지만 서지학과 국문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신재효의 판소리 등을 발굴 소개한 공로는 크다. 주요 저서로 『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등이 있다.
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 광채와 모정 등이 남아 있다. 모정 앞쪽에 작은 연못이 2곳 있다. 본디 초가지붕이며 건물 자체에는 특징이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며, 모정과 연못을 배치하는 등 조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