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 동쪽 골짜기에 있는 이 성은,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준왕 즉 기준箕準의 고사와 관련해서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백제 무왕 때 세운 성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공격해 항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성내에서 백제 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1990년의 발굴조사로 백제 이후에 성을 쌓아 조선초기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개축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성의 길이는 1,822m, 높이 4~5m, 폭 약 5m로 익산지역 최대 규모의 산성이다. 성내에는 건물터, 우물터 등이 남아 있는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옹성과 성벽은 발굴조사 후 정비된 것이다.
문화재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이 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으로 불리는데,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했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기준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