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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에는
    나의 문화재 이야기 2012. 3. 13. 07:41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에는



    목포시입니다.

     


    좀더 가까이 내려가고


     


    더 내려가고

     

     

    좀 더 내려가면





    전남 목포시 중앙동2가 6번지를 주소지로 둔 목포 근대역사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구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지점 (舊東洋拓殖株式會社木浦支店) 으로서 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로

    1999년 11월 20일 지정되었다.일제 강점기 때 일제 침략의 면모를 생각케하는 건물 유적이다. 그 당시 이 건물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그 이름 학창시절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를 배울 때 많이 들었던 회사 이름입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동양척식)은 조선의 경제 독점과 토지·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일본제국이 세운 국책회사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대영제국동인도 회사를 본뜬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1908년 제정한 동양척식회사법에 의해 세워졌다. 자본금 1,000만 원이며 조선은 설립자본금의 30%에 해당하는 국유지를 출자했지만 주요 목적은 일본식민지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토지와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인들의 식민지 개척 및 활동을 돕는 것 곧 일본 제국식민지에서의 착취를 위한 기관이었다.

    1909 1월부터 대한제국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원래는 대한제국, 일본의 양쪽 국적의 회사였으나 1917년 본점을 도쿄로 옮기고 일본 국적의 회사가 되었으며 대한제국에 지점들을 두었다. 소유는 일본인에 한하였으며 활동지역은 이후 만주까지 확대되고 1938년부터는 다른 식민지인 타이완,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영업지역이 확대되었다. 1938년에는 9개 지점과 831명의 직원을 두었다. 조선인 간부로는 부총재 민영기와 이사 한상룡이 있었다.

    사업내용
    농업 토지의 매매, 임차, 경영, 관리, 건물의 건설, 매매, 대차 그리고 특히 오단백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얼마 안 되는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일본 소작인들의 한국으로의 이민을 지원하는 동척농업이민계획을 펼쳤으며, 조선 각지에 일본인 촌락을 건설하고 정착을 위한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식산은행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대표적인 기관이 되었다. 1917년까지는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한 일본인 이주, 농업경영, 토지경영, 토지개량, 임업경영이 주력 사업이었지만 1930년대 이전까지는 금융 사업을 확장하면서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서는 1916년 쌀폭동이라고 불린 식량 부족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조선에서의 식량 수탈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고대 로마 제국과 근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일본의 평화 곧 일본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식민지를 수탈하던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에는 광업 부분으로 확장하고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 공업을 지원했다.

    동척과 토지수탈
    처음 한국으로부터 토지 1만 7,714정보를 자본으로 출자를 받은 후 토지 매입으로 1913년까지 4만 1,148정보를 매입하였으며 조선 총독부에 의한 토지조사사업으로 국유지불하에 의해 1917년말 7만 5178정보의 토지를 소유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총독부 다음으로 최대 지주가 되었다. 이후 계속 늘어나서 1942년말에는 20만722정보를 소유했다. 동척은 소작인들에게 5할이나 되는 고액의 소작료를 요구하거나, 춘궁기에 양곡을 빌려주었다가 2할 이상의 이자를 받는 등 경제 수탈에 앞장서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소작민들에 대한 수탈은 한국인들의 대규모 해외 이주를 불렀다. 1933년까지 일본으로 113만 5852명, 만주연해주로 150만여 명이 이주한 것으로 집계된다.

    일본인 이민
    수탈한 토지를 기반으로 일본인 농업 이민자들을 한국 각지에 정착시키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1917년까지 매년 1천호, 1926년까지는 매년 360호정도의 이민을 받아 1926년까지 9,096호가 한국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원 아래 직접 경작하기보다는 지주가 되었다.

    독립이후
    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한국을 지배한 미군정1945년 9월 25일 제정된 "패전국 소속 재산의 동결 및 이전제한의 건"과 1945년 12월 6일 제정된 "조선 내 일본인 재산의 권리귀속에 관한 건"에 의해 모든 한국내 일본인 소유재산(적산)은 미군정청 소유가 되었다. 이때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재산을 인수 개편하여 "신조선회사"로 개명하였으며 1946년 2월 21일, 신한공사(新韓公社)를 창설하였다. 이회사의 소유경지는 한국 논밭 경지의 12.3%에 달했으며 소속된 소속농가는 58만7974호로 전체농가 217만 2435호의 27.1%였다. 1948년 3월 22일에는 중앙토지행정처로 바뀌었다. 이후 미군정에서 소유하던 토지는 토지개혁을 통해 한국 농민들에게 귀속되었다.

    동척의 잔재
    현재 대한민국에는 동척 지점 건물이 남아있는 곳은 목포부산이 있다.

    목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은 전라남도 기념물 17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옛 일본인 거류지에 아직 남아있다. 1998년에 철거의 위기를 겪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두어 사적지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보존되었다. 후에 목포근대역사관으로 개장하면서 근대사진전을 열고 있다. 부산보다 남아있는 건물의 크기가 크고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남기념물 174호로서 붕괴 위험으로 해군의 철거 조치가 내려질 뻔했으나 각계의 반발과 1920년대의 건물로는 유일하다는 데 착안하여 문화재로 남게 됐다.


    http://ko.wikipedia.org/wiki/%EB%8F%99%EC%96%91%EC%B2%99%EC%8B%9D%EC%A3%BC%EC%8B%9D%ED%9A%8C%EC%82%AC


     

     

     

     

     

    앞에 보이는 벽면 밑에는



     

     



    이곳이 해군목포기지 주둔지로서 3년간 사용하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세종 21년(1439)에 목포 만호진을 설치하고

    고종 21년(1895)에 폐진하였였으니 조선 수군이 456년 사용했던 곳으로는 적절한 사용이었다.

    독립이후 만호진은 지금보다는 조선 만호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리라 보여진다.

    이 표지석 오른쪽에는 세 개의 비가 나무 울타리 보호되고 잇다. 왼쪽의 현대비는 이 비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 비에 의하면 오른쪽의 두 비가 일제 강점기에 당청사를 지으면서 조선 말살, 민족혼 말살 정책으로 당청사

    뒷 뜰 땅속에 묻어 감추었으나
    다행이 발견이 되어 근대 역사관 벽 옆에 겨우 자리를 잡고 있다. 435년 이후 이

    만호진에서 크게 공을 세웠을 것으로 판단되는 우리 선조 두 분이다.

     

     

    두 분의 비석이 오래되어 그 글씨를 알아보기는 어려웠으나 현대 표지판에서 보면 수군절도사 신 공과

    만호 방 공의 비다. 그 당시에 왜군과 왜구의 방어를 위해 크게 공을 세웠으리라. 왜구와 왜군을 물리친

    공으로 치적비를 세웠으나 또다시 일본제국에 의해서 그 비가 수난을 겪은 것이다.그 비를 지키지

    못한 우리가 부끄럽다. 이곳에서 직선 거리로 300여미터 거리에 목포진 유적비가 있다. 또 이곳은

    목포진의 영내였을 것이다. 근대 역사관 옆으로 이비되기 전 목포 일본영사관 앞 큰 길가에 있었으나

    다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민족의 수난으로 이 선조의 치적비도 함께 수난을 겪은 것이다.

     

     

     

     

    수군절도사 신 공의 치적비

     

     

    만호 방 공의 치적비

    이 두 분의 치적을, 수난을 생각하며......


    목포 근대 역사관은

     

     




    이 간판 말고 또 하나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침탈 야욕을 알리는 간판을 하나 더 만들어 왼쪽벽에 걸어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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