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내가 본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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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전 민애왕릉 (慶州 傳 閔哀王陵)-사적 제190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3:36
경주 전 민애왕릉 (慶州 傳 閔哀王陵) -사적 제190호 종목 사적 제190호 명칭 경주 전 민애왕릉 (慶州 傳 閔哀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11,302㎡ 지정일 1970.02.06 소재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산40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제44대 민애왕(838∼839)의 무덤으로 높이 3.8m, 지름 12.5m이다. 여러차례 도굴을 당하였으나 1984년 9월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무덤과 주변을 발굴조사하여 규모를 밝히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무덤 밑부분 바깥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12개의 구멍이 있었다. 구멍에는 곱돌로 만든 12마리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십이지신상을 하나씩 묻었다. 조사 당시에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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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내물왕릉 (慶州 奈勿王陵)-사적 제188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3:21
경주 내물왕릉 (慶州 奈勿王陵)-사적 제188호 종목 사적 제188호 명칭 경주 내물왕릉 (慶州 奈勿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22,769㎡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교동 14 시대 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이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었다.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前秦)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높이 5.3m, 지름 2.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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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무왕릉 (慶州 神武王陵)-사적 제185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2:54
경주 신무왕릉 (慶州 神武王陵)-사적 제185호 종목 사적 제185호 명칭 경주 신무왕릉 (慶州 神武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36,618㎡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동방동 660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동생이다. 839년 4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해에 병으로 죽었다.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이름을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신무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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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효소왕릉 (慶州 孝昭王陵)-사적 제184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2:38
경주 효소왕릉 (慶州 孝昭王陵)-사적 제184호 종목 사적 제184호 명칭 경주 효소왕릉 (慶州 孝昭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15,385㎡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조양동 산8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무덤이다. 신문왕(재위 681∼692)의 아들로서 삼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발전이 있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서시전과 남시전 등 시장을 열어 물품의 유통을 쉽게 하였다. 높이 4.3m, 지름 10.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있다. 무덤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혼령이 머무는 자리라는 혼유석만이 있다. 『삼국사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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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효공왕릉 (慶州 孝恭王陵)-사적 제183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2:24
경주 효공왕릉 (慶州 孝恭王陵)-사적 제183호 종목 사적 제183호 명칭 경주 효공왕릉 (慶州 孝恭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37,993㎡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14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무덤이다. 높이 5m, 지름 21.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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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선덕여왕릉 (慶州 善德女王陵)-사적 제182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1:52
경주 선덕여왕릉 (慶州 善德女王陵)-사적 제182호 종목 사적 제182호 명칭 경주 선덕여왕릉 (慶州 善德女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사적163호에 포함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시대 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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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사적 제181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1:36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사적 제181호 종목 사적 제181호 명칭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35,283㎡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453-1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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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안왕릉 (慶州 憲安王陵)-사적 제179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1:20
경주 헌안왕릉 (慶州 憲安王陵)-사적 제179호 종목 사적 제179호 명칭 경주 헌안왕릉 (慶州 憲安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사적177호에 포함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92-2 시대 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47대 헌안왕(재위 857∼861)의 무덤이다. 헌안왕은 본명이 김의정으로, 45대 신무왕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특별한 치적은 없으나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는데 힘썼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무덤의 형태는 가장 단순한 형식의 무덤으로 높이 4.3m, 지름 15.3m의 원형 봉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