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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연곡사에는
    나의 문화재 이야기 2019. 4. 9. 19:56


    연곡사에는 





    백제 성왕 22년(서기 554년)에 창건된 고찰이다.


    1500년에 35년 모자란다.


    정말 오래된 사찰이다.


    그동안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이런 고찰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
    (求禮 鷰谷寺 東 僧塔)
    코드목록 동영상
    전남 구례군 연곡사

    2

    국보 제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
    (求禮 鷰谷寺 北 僧塔)
    전남 구례군 연곡사

    6건이다.


    6건 모두 석조문화재다.


    이곳에는 석조문화재만 국가지정문화재다.

    그 이유를 알게된 것은

    집에 돌아와서다.

    왜 전각들 중에는 문화재가 없을까?

    오래된 절인데.


    1.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 -승병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천년고찰을 불태우는 만행을......


    2.1907년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400여년된 고찰을 불태우는 만행을........

    3.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전소-중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소...........

    이제 중창중이라.......

    전각으로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없다.











    연곡사에는 고광순 의병장이 있었다.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 초명은 고광욱(高光旭) 또는 고광순(高光珣·高光詢).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 전라남도 담양 출신. 생부는 고정상(高鼎相), 양부는 고경주(高慶柱), 항일투사 기산도(奇山度)가 사위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각 읍에 격문을 띄우고, 기우만(奇宇萬)과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나주를 본영으로 의병을 불러모으자 일본군이 나주로 집결하므로 광주(光州)로 옮겼다.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북진하던 중 선유사(宣諭使)의 권고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고제량(高濟亮)과 순창에 이르렀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다시 기우만·백낙구(白樂九)와 모사하였으나, 그들도 곧 붙잡혔다.

    1907년 1월 24일 저산(猪山)의 제각(祭閣)에서 고제량·고광훈(高光薰)·고광채(高光彩) 등 족친들과 윤영기(尹永淇)·박기덕(朴基德)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12월 말 남원의 양한규(梁漢圭)와 남원성을 공격, 관군과 접전을 벌이던 중 양한규가 죽고 남원의진이 붕괴하여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綾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습격하였다.

    그 뒤 지리산 문수암(文殊庵)을 거점으로 활약하던 김동신(金東臣)과 연합작전을 구상, 지리산으로 집결하였다. 그 동안 고광순의 종가는 적의 습격으로 사당만 화를 면하였을 뿐 피해가 컸다.

    8월 구례연곡사(燕谷寺)로 가서 화개동(花開洞)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대원들을 머무르게 한 뒤, 군대를 훈련시키고 군량을 보충하며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의기를 북돋웠다.

    그 뒤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9월 적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받아 부장인 고제량을 비롯, 주요 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서 소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3316


    의병장 고광순(高光珣·高光詢)은 독립투사로서 일본군의 야습으로 이 곳 연곡사에서 전사하셨다.

    아 원통하다.








    6건의 석조문화재를 살피다 또 놀랐다.


    1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전남 구례군 연***

    보물 제152호와 153호다.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는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도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졌다. 정황으로 보아 뻔한 일 아닌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2호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 (陜川 海印寺 龍城禪師 僧塔 및 塔碑)의 비신(가로/폭/높이) 73.5/26.5/176.0 cm


    으로 보아 없어진 비신은 이것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신에는 중요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필요로 했나 아니면 그 돌을 필요로 했나?


    문화재청 자료검색에서 승탑비로 검색을 하면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가 유일하다.


    승탑으로 검색을 하면 43건의 문화재가 검색된다.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2호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 두 건이다.

    비몸돌이 있는 보물 이상의 문화재는 없다.

    안타깝다.


    괜히 화난다.

    ///////////////////////////




    연곡사의 발전을 기원한다.


    앞으로 영원 불멸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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