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범어사비로전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1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유형문화재 2013. 2. 16. 09:12

    범어사비로전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1호

     

     

    종목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1호

    명칭

    범어사비로전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분류

    유물 / 불교조각/ 목조/ 불상

    수량

     3 구

    지정일

    2006.11.25

    소재지

    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 범어사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범어사

    설명

    범어사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방형(方形)수미단(須彌壇) 위 연화좌(蓮華座)에 각각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중앙 본존불은 125㎝, 좌우협시는 100㎝ 정도의 크기로, 중앙의 본존불이 협시불에 비해 규모가 크게 조성되었다.

    본존인 비로자나불은 등을 세우고 얼굴을 앞으로 약간 숙여 아래를 굽어보고 있으며, 수인은 지권인(智拳印,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양)이다. 보편적인 조선 후기 불상과 마찬가지로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보살로서의 형식적인 차이가 있을 뿐 자세나 신체의 비례, 전체적인 얼굴 표현 및 기법, 인상 등은 본존불과 거의 유사하다.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비교적 규모가 큰 불상으로, 신체 비례는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차이가 있으나 안면과 머리 부분의 표현은 매우 흡사하다.

    범어사에 전해오는 비로자나삼존불의 「중수도금기(重修塗金記)」에 의하면, 비로전의 삼존불상은 1638년 해민(海敏) 스님이 비로전을 중창할 당시에 조성되었으며, 이후 1722년의 중수․도금 작업에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한 진열(進悅), 청우(淸雨), 청휘(淸徽), 관성(貫性), 옥홀(玉㧾) 등이 관여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지(梵魚寺誌)』, 범어사 관음전 대좌묵서명 및 「중수도금기」 등에 기록된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의 중수와 조각승에 대한 기록이 동일한 것을 보면 「중수도금기」의 내용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함께 조각승 진열의 작품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작품의 수준도 높은 뛰어난 문화재이다.

    범어사 홈페이지에는

    본 작품은 비로전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다. 중앙에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이 있고, 좌협시는 왼손은 어깨까지 올리고 오른손은 무릎위에서 연화가지를 쥐고, 우협시는 좌협시와 동일하나 양손의 위치만 반대이다. 삼존불상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계측을 통해 좌협시가 우협시에 비해 규격이 조금 더 크고 양감도 있다. 이 불상도 관음전의 관음상과 마찬가지로 두부가 신체에 비해 다소 큰 편이다. 본존상은 오른 손바닥을 바깥을 향한채 검지를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이며, 나발상의 머리는 지발과 육계가 거의 경계없이 완만한 형태로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각각 두고 있다. 얼굴은 정방형에 가깝고, 표정과 수법이 관음상과 거의 흡사하다. 법의는 대의를 왼쪽어깨와 팔을 감싸고 오른쪽은 어깨만을 걸친 반단식 표현이고, 그 아래 편삼을 걸친 이중착의 형식이다. 법의는 어깨와 양팔에서 계단식의 단을 이루며 의습자락이 흘러내리며, 가슴에는 수평상의 군의 띠자락이 드러나보인다. 오른발을 드러내며 흘러내린 군의자락은 양쪽 다리 사이로 흘러내려 곡선을 이루며 좌우로 정연하게 퍼진 형태가 대웅전의 석가삼존상과는 대조적이다.

     

    양협시는 안면과 법의의 표현기법이 본존상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가슴부위에 목걸이 장식을 하고 있으며, 보관은 몸체부분에 화염보주와 화문, 봉황 등의 장식을 부착하고 있다. 특히 보관아래 발제선을 따라 드러나는 모발은 음각 선조를 넣어 모발 가닥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관음상과 표현기법이 거의 유사하다. 정수리의 발계는 두 갈래로 나누어 뒤로 말아 마무리하였으며, 어깨위로 수발이 세갈래로 나뉘어 흘러내리고 있다.

     

    본 작품은 전반적으로 대웅전의 작품과는 표현기법상에 차이를 보이는 반면, 관음전의 관음상과는 거의 유사한 점이 많다. 비로자나삼존불의 重修鍍金記에 의하면 본 불상은 崇禎11년(1638)에 조성되었으나, 이후 康熙61년(1722) 壬寅에 본 불상의 중수도금에 進悅이 관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앞서 밝힌 관음전의 관음상 연화 대좌 묵서명에 동일인물 進悅을 비롯하여 4명이 조성하였음을 기술하고 있어, 비로자나삼존불상과 관음상의 제작기법의 유사함은 같은 시기에 동일인물이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비로자나불의 조성되었을 때 모습이 이후 중수 도금하면서 그 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 그리고 새롭게 거듭난 요소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나, 현존 상태로 봐서는 거의 1722년 중수도금하면서 새롭게 전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삼존불좌상이라 했지만 방문시에는 분명 가운데 본존상만 있었다.

     

    3軀

    朝鮮時代 17∼18世紀

    本尊像: 一木造, 鍍金, 坐像高 124.6㎝

    左挾侍像:木造, 兩手別造, 鍍金, 坐像高 108.1㎝

    右挾侍像:木造, 兩手別造, 鍍金, 坐像高 102.2㎝

     

     

     

    범어사비로전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문화재청 홈페이지  2012년5월26일 방문시  범어사 홈페이지 
     

     

     

     

     

     

    관련내용:http://blog.daum.net/shinh-k791104/3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