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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명승 제107호문화재/내가 본 명승 2016. 11. 13. 17:29
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
명승 제107호
종목
명승 제107호
명칭
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
분류
자연유산 / 명승/ 역사문화명승
수량
26,832㎡ 지정일
2013.11.06
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0
시대
소유.관리
한국농어촌공사 등,광주광역시 북구청
설명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환벽당(環碧堂)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호 위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명종 무렵 나주 목사를 지낸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조영하였으며, 푸름을 사방에 가득 둘렸다‘ 는 뜻을 가진 ’환벽‘이란 이름은 신잠(申潛)이 붙였다고 한다. 김윤제(金允悌)는 중종 26년(1531)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과 교리, 나주 목사등을 지낸 인물로, 관직에서 물러나 이 정자 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정철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에 연유하여 환벽당은 김윤제의 별서로서 뿐만 아니라, 정철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독서와 학문의 인연을 가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당시 인근의 식영정(息影亭) 및 소쇄원(瀟灑園)과 함께 ‘한 마을의 세 명승 (일동 삼승 一洞三勝)’이라 일컬어지면서 많은 문인들이 출입하였던 문학활동의 주요한 무대였으니, 송순·임억령· 김인후·김성원·정철·백광훈 등의 시가 지금도 전한다.
정자 아래에는 김윤제와 정철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전설이 서린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골기와를 인 팔각지붕 형태로 왼쪽 2칸은 거실이다. 현재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어느 무더운 여름날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 1501∼1572)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자신의 집(환벽당) 바로 아래 냇가에서 용 한 마리가 승천하는 것이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하인을 불러 냇가에 가서 살펴보라고 하니 웬 청년이 멱을 감고 있다고 전했다.
그를 데려오게 해 가만히 뜯어보니 생김생김이 예사롭지 않게 보여 자초지종을 듣고 그를 가르쳤던 것이니 그 청년이 바로 송강 정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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