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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심었다는 수종사의 은행나무문화재/내가 본 보호수 2016. 2. 27. 15:22
수종사의 은행나무
절집을 찾는 사람들의 자취는 허공으로 흩어지지만 그 안에는 수종사의 긴 역사를 증거하는 자취가 하나 있다. 큰법당을 비롯한 여러 전각 가장자리 언덕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도 나무의 기세는 대단하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 앞의 안내판에는 나무의 키를 35m, 가슴높이 줄기 둘레를 6.5m라고 했다.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 1982년에 측정한 값이지만,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눈짐작으로는 대략 25m가 채 안 돼 보인다. 큰 줄기가 부러진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갑자기 나무의 키가 줄어들었을 리도 없다. 아무래도 애당초 부실한 측정이었지 싶다.
그러나 나무에는 숫자로 드러낼 수 없는 넉넉한 기품이 담겼다. ‘수종사’라고 이 절을 명명한 조선의 임금 세조가 손수 심은 나무인 까닭이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는 전국의 물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가 오대산 상원사의 약수로 목욕을 하고 돌아오면서 이곳 운길산 아래 마을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밤 세조는 신비롭다 해야 할 만큼 청아한 종소리를 들었다. 세조는 신하들을 시켜서 소리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했다. 신하들은 “운길산 중턱에 폐허가 된 천년 고찰이 있는데, 그 터의 한쪽 바위 굴에 열여덟 나한이 줄지어 앉아 있다.”며 “신비로운 종소리는 그 바위 굴 옆의 큰 바위 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라고 아뢰었다.
물소리의 신비를 지키고 싶었던 세조는 옛 절을 다시 고쳐 세우라고 지시하면서 그 절의 이름을 손수 물 수(水)와 쇠북 종(鐘)을 써서 수종사라 했다. 1459년의 일이다. 절집이 완공되자 세조는 몸소 가파른 산길을 올라 종소리를 내는 샘물을 다시 찾아보고는 절집 마당 한켠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때가 정확하니 나무의 나이도 정확하게 554살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임금의 손길을 말없이 증거하는 음전한 생김새의 나무다.
http://www.서울신문.kr/news/newsView.php?id=20120607021004&spage=16수종사는 9월 20일 오전 10시에 사찰 경내에서 550년 된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냈다. 이 은행나무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됐으나 수종사 측은 관광객이 늘어 나무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아직 제사를 한 번도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 550년 된 나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했으며, 이날 역대 대통령들을 함께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수종사는 이날 경내 약사전 점안식과 산사음악회도 개최하였다. 전국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신목으로 대접받아 마을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제사를 지내는 곳도 많다.
사찰 종무소 직원에 의하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암나무로 은행이 열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조금 작은 수나무가 있다고 하였다.http://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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