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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유품 - 선서문 (尹奉吉義士遺品 - 宣誓文)-보물 제568-1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15. 11. 25. 11:45
윤봉길의사유품 - 선서문 (尹奉吉義士遺品 - 宣誓文)
-보물 제568-1호
종목
보물 제568-1호 명칭
윤봉길의사유품 - 선서문 (尹奉吉義士遺品 - 宣誓文)
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문서류/ 문서류
수량
1매(7행)
지정일
1972.08.16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시대
일제강점기
소유.관리
국유,국립중앙박물관
설명
윤봉길의사 유품-선서문(尹奉吉義士 遺品-宣誓文)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는 것을 직접 손으로 쓴 선서문이다.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글의 크기는 가로 21.5㎝, 세로 27㎝이다.복제품으로 만나 본
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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