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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遺墨 - 國家安危勞心焦思)-보물 제569-22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15. 11. 25. 10:36
안중근의사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遺墨 - 國家安危勞心焦思)
-보물 제569-22호
종목
보물 제569-22호 명칭
안중근의사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遺墨 - 國家安危勞心焦思)
분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
1점
지정일
2000.02.15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0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시대
대한제국시대
소유.관리
안중근의사숭모회,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설명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安重根義士遺墨-國家安危勞心焦思)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살아있을 때 남긴 글이나 그림)중의 하나로 그의 서예이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여기에는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근배(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이것의 크기는 가로 38.2㎝, 세로 149㎝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여순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안강정사랑 (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죽기 직전 그의 장녀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후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이것은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복제품이라
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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