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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경수당 (漆谷 敬守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3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5. 11. 1. 13:33
칠곡 경수당 (漆谷 敬守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3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3호
명칭
칠곡 경수당 (漆谷 敬守堂)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5동
지정일
2011.03.28
소재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140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설명
경수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 석담 이윤우(1569-1634)가 세거하던 자리에 지어진 주택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법무무 형사국장을 지낸 바 있는 김낙헌이 거주하던 집이었다. 이후 낙헌의 친구인 후석 이주후(1873-1957)가 매입하여 지천면 신리 208번지(경수당의 재실인 영모헌이 있던 곳)에서 지금의 자리인 신리 140번지로 이거해 오면서 벽진 이씨 후석파종택으로 삼았다 한다.
칠곡 신리 웃갓마을의 북쪽 끝편에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자리하였다. 800평 규모의 넓은 대지에 一자형의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광채가 동향으로 나란하게 병렬 배치되어 있고 안중사랑채가 사랑채와 안채사이에 남향으로 직교 배치된 형식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남쪽이 터진 튼 ㄷ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나 안마당의 남쪽 끝부분에 방앗간채(정면 3칸, 측면 1칸, 초가)가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원래는 튼 口자형 배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2칸 크기의 사랑방과 1칸 사랑마루로 이루어진 간략한 평면이다. 방과 마루 전면에는 반칸 폭의 툇마루를 꾸몄으며 마루 우측면에도 폭이 좁은 쪽마루를 시설하였다. 사랑방 정면 매칸에는 머름 위에 두짝의 여닫이 띠살창과 고졸한 用자살 짜임의 미닫이창을 이중으로 설치하였고 마루와의 사이에는 불발기 형식의 4짝 미서기문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2칸 크기의 정지, 안방, 대청과 1칸 크기의 건너방이 순서대로 일렬 배열되었으며 방과 마루 전면으로는 폭이 좁은 쪽마루가 시설된 一자형 평면이다. 정지에는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이 잘 남아있고 그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안방과 건너방의 전면 매칸에는 두짝의 亞字 미서기문이 달려있는 반면 마루 앞 뒤로는 4짝과 두짝으로 된 유리창문이 각 각 설치되어 있다. 마루의 유리창문은 역시 후설된 것이다. 안채 상부가구는 보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려 마루도리를 받게 한 간략한 3량가 구조인데 휘어진 건실한 대량의 형태에서 자연의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경수당은 생활의 편리를 위해 창호교체와 일부 증축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간결한 평면구조와 영남내륙지방의 분동형 배치, 그리고 사랑채의 물익공형 초각장식등은 특징적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유구로 당시의 정치제도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담양담 등이 남아 있다.미서기문
미세기문
방문 두 짝을 한편으로 밀어 겹쳐서 여닫는 문.
미서기라고도 한다. 구조적으로는 미닫이문과 거의 비슷한 형식이지만, 문이 2짝이나 3짝 또는 4짝으로, 여닫을 때 한편으로 겹치도록 홈을 2줄 또는 3줄로 하여 문 1짝을 다른 짝 옆에 밀어 붙이게 되어 있다.
미닫이는 문 전체를 열 수 있으나 미세기는 반만 열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3짝일 경우에는 1/3만 열리게 되어 있다. 장지문이면 홈을 내고, 문이 무거우면 레일을 댄다. 이러한 형식은 미닫이와 마찬가지로 실내 공간이 방해되지 않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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