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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향교(盈德鄕校)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5. 3. 15. 19:25
영덕향교(盈德鄕校)
영덕향교(盈德鄕校)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4년 향교 자리에 영덕공립보통학교를 신설하면서 향교의 대성전과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게 되자 화개리 개인 집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1924년영덕공립보통학교가 신축되자 군수 홍의식(洪義植) 등의 주선으로 구 향교를 보수하여 위패를 이안(移安)시켰다.
1944년 1군1향교 방침에 따라 같은 군에 있던 영해향교(寧海鄕校)를 폐쇄하고 그 위패를 영덕향교에 이안하였으며, 영덕향교의 위패는 땅에 묻었다.
그 뒤 6·25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가 1965년 전교(典校) 신수원(申壽元)과 유림의 노력으로 현재의 터를 매입, 후임 전교 박종대(朴鍾大)의 주선으로 대성전과 명륜당·동재(東齋)를 개축하여 1967년에 완공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1970년 전교 김우영(金羽英)의 주선에 따른 군비 보조와 장의(掌議) 방도원(房道源) 및 유림의 성금으로 대성전·명륜당을 개축하고 정문·서재(西齋)를 신축, 동재 수리 등 대대적인 중수작업을 1981년까지 실시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각 8칸의 동재·서재, 정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해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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