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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청풍비 (海東淸風碑)-경상북도 기념물 제82호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2. 12. 6. 21:20
해동청풍비 (海東淸風碑)-경상북도 기념물 제82호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82호 명칭
해동청풍비 (海東淸風碑)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397㎡ 지정일
1990.08.07 소재지
경북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478-2 시대
일제강점기 소유.관리
장영환,장병주 설명
전국 유림들에게 항일의식을 드높인 자하 장기석 선생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장기석(1860∼1911)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다 39세의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여 43세에 학문을 두루 통달하였다. 그 뒤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에 힘썼으며, 일제 때 경찰서장으로 부터 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여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단식을 시작하였고 의식을 잃어 일본경찰들이 음식을 먹이려 하자 그릇으로 서장을 때려 옥중에서 생을 마치었다.
비는 평평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형태이다. 비문은 심산 김창숙이 글을 짓고 백범 김구가 글씨를 썼다. 1936년 전국 유림에서 뜻을 모아 세웠으나 그 이듬해에 일제에 의해 파괴되어 버려진 것을, 광복 후 조각들을 찾아 모아 다시 세웠다. 비 옆에는 1937년 일본경찰이 비를 깨부수려 할때 목숨을 끊어 이에 항거한 부인 박씨를 기리는 비가 함께 놓여 있다.안내문이 잘 보이질 않는다.
일제에의해 다섯여섯?토막으로 비 뒤를 보지 못하고 왔으니!부인 박씨의 비
- 생몰년 : 1860-1911
- 시대 : 조선, 항일기
- 분야 : 항일/국방 > 의열사 > 순국지사
장기석(張基奭)에 대하여
장기석(張基奭)
1860(철종 11)∼1911. 순국지사.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진여(震汝). 경상북도 성주출신.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38세까지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부인 박씨와 함께 열심히 살아 재산을 모은 뒤, 공부를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겨 3년간 두문불출하고 밤낮없이 학업에 전념하였다.
일제 때 성주군수와 경찰서장으로부터 메이지(明治)의 천장절(天長節)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자,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일본경찰을 목침으로 때려 중상을 입힌 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10여일 만에 의식을 잃었다.
일본경찰들이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 하자 그릇으로 서장을 때리며 먹기를 거부,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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