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송재고택 (伴松齋故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4. 3. 1. 18:11
반송재고택 (伴松齋故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명칭 반송재고택 (伴松齋故宅)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일곽 지정일 1992.07.18 소재지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78-10 (상금곡 462)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김철빈 설명
갈천 김빈이 살던 가옥이다.
김빈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으로 벼슬을 그만둔 후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살았다.
이 집은 김빈의 아우 김정이 세운 것으로 후에 자손들의 가세가 기울자 팔았다가 구한말 이유인이 사들여 광무 3년(1899)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담장 안에 있는 안채와 사랑채는 남향으로 배치하였고 곳간채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사랑채 앞에 담장과 연결된 대문채가 있는데 영남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배치를 보여 준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2호 김빈(金빈 ; 1621~1694)은 용문면 죽림리 남악골(南嶽洞) 출신으로, 상금곡리로 옮겨 살았다. 자는 빈여(賓如), 호는 갈천(葛川), 본관은 의성, 시진(侍振)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에 진사가 되고, 1657년(효종 8)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예조 좌랑 등의 벼슬을 하였다. 문경 현감으로 있을 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고 안간힘을 써서 1671년(현종 12)의 큰 가뭄에도 굶주린 백성이 없었다. 그리하여 문경을 떠날 때는 많은 문경 사람들이 환송하며 슬퍼하였고, 선정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그 후 종2품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거쳐, 승정원 도승지 등 내외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여러 차례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임금께 청했으나, 김빈의 인품을 아낀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겸손하고 부지런한 학자일 뿐 아니라, 벼슬에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항상 칭찬을 받았고, 남의 헛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또한 벼슬에 욕심을 내지 않고 모든 일을 정성을 다하여 소신대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왕이 매우 아끼었다. 김빈은 자비, 치밀, 청렴, 분별을 다스리는 원리로 삼았다.
'문화재 > 내가 본 문화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용문사 천왕각 (南海龍門寺天王閣)-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0) 2014.03.02 남해용문사봉서루 (南海龍門寺鳳棲樓)-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4호 (0) 2014.03.02 예천권씨병암정및별묘 (醴泉權氏屛巖亭및別廟)-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3호 (0) 2014.03.01 예천권씨영사당종택 (醴泉權氏永思堂宗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4호 (0) 2014.03.01 보문사극락전 (普門寺極樂殿)-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3호 (0) 20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