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양동 관가정 (慶州 良洞 觀稼亭)-Gwangajeong House in Yangdong, Gyeongju-보물 제442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13. 11. 11. 18:00
경주 양동 관가정 (慶州 良洞 觀稼亭)-보물 제442호
보물 제442호 보물 제442호 종목 보물 제442호 명칭 경주 양동 관가정 (慶州 良洞 觀稼亭)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 1 동 지정일 1966.04.11 소재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47 (양동리)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손동만 설명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관리로서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
언덕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배치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 막아, 집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보통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방과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로 ‘관가정(觀稼亭)’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문의 오른쪽에는 온돌방, 부엌, 작은방들을 두었고 그 앞에 ㄷ자로 꺾이는 안채가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살림을 하는 공간으로, 부엌, 안방, 큰 대청마루,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의 사랑방과 연결이 된다. 네모기둥을 세우고 간소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뒤쪽의 사당과 누마루는 둥근기둥을 세워 조금은 웅장한 느낌이 들게 했다. 사랑방과 누마루 주변으로는 난간을 돌렸고,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가 한 지붕으로 이어져 있다.
관가정은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보물 제442호 보물 제442호
손중돈
1463(세조 9)∼1529(중종 24). 조선 중기의 문신.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발(大發), 호는 우재(愚齋). 등(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사성(士晟)이고, 아버지는 계천군(鷄川君) 소(昭)이며, 어머니는 유복하(柳復河)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1482년(성종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를 거쳐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 양산군수, 이어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하였다.1506년 중종반정 직후에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1509년(중종 4)에는 표리(表裡) 1습(襲)을 하사받고 좌승지로 승진하였다. 이어 공조·예조 참판을 역임하다가 1517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뒤에 공조판서·이조판서·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을 지낸 뒤 도승지를 세번, 대사헌을 네번 지냈으며,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주의 동강서원(東江書院), 상주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0573'문화재 > 내가 본 보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梁山 通度寺 國長生 石標)-보물 제74호 (0) 2013.11.13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보물 제370호 (0) 2013.11.12 경주 양동 향단 (慶州 良洞 香壇)-Hyangdan House in Yangdong, Gyeongju-보물 제412호 (0) 2013.11.11 회재 이언적 선생 종가의 일부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보물 제411호 (0) 2013.11.11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牙山 邑內洞 幢竿支柱)-보물 제537호 (0) 201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