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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3. 11. 11. 15:32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명칭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2동

    지정일

    1992.07.18

    소재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84

    시대

    소유.관리

    손영호

    설명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다 죽은 손종로(1598∼1636)와 그의 충성스런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손종로는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하여 남포현감을 지낸 분으로 병자호란 때 이천의 쌍령전투에서 그의 노비인 억부와 함께 전사하였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여 옷과 관으로 제사를 지냈다.

    정조 7년(1783) 왕의 명을 받아 세워 놓은 비로, 비문은 우승지 이정규가 짓고 정충필이 글씨를 썼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 생년
  • 몰년
  • 본관
  • 관련사건
  • 대표관직(경력)        
  • 집필자
  •  
    ?∼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경(考卿). 우참찬 중돈(仲暾)의 현손이다. 어려서는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장성하여서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서궁(西宮)에 유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34년(인조 12) 남포현감이 되었다. 이 때 도체찰사(都體察使) 김류(金瑬)로부터 치적이 별로 없다 하여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에 피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에 따르고자 하였으나, 이천(利川)에 이르러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경상좌병사 허완(許完)쌍령(雙嶺)에 주둔하고 있음을 듣고 이에 투신하여 막하에서 활동하다가 쌍령싸움에서 전사하였다.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증직받았고, 1784년(정조 8)에 정려가 세워졌으며 1816년(순조 16) 8월에 충절로써 가증(加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