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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성당 (全州 殿洞聖堂)-Jeondong Catholic Cathedral, Jeonju-사적 제288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8. 22. 20:00
전주 전동성당 (全州 殿洞聖堂)-사적 제288호
사적 제288호 사적 제288호
종목 사적 제288호 명칭 전주 전동성당 (全州 殿洞聖堂)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천주교/ 성당 수량 679㎡ 지정일 1981.09.25 소재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동) 시대 일제강점기 소유.관리 재단법인전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설명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프랑스 신부인 위돌박이 설계·감독을 하였고 1914년 완성되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사적 제288호 사적 제288호 명동성당 :
http://blog.daum.net/shinh-k791104/603
1759(영조 35)∼1791(정조 15). 초기 천주교회 순교자.세례명 바오로. 전라북도 진산(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함) 출신. 정약용(丁若鏞)의 외사촌이다. 25세 때 진사가 되었다.1784년(정조 8) 겨울 서울에 올라가 김범우(金範禹)로부터 처음으로 천주교서적을 빌려보았고, 3년 후 정약용 형제들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나가던 중 1791년 여름 어머니 권씨(權氏)의 상을 당하자, 교리를 지키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고 신주를 불살랐다.이러한 사실은 곧 친척과 유림에게 알려져 불효자라는 지탄을 받게 되었고, 끝내는 관가에 고발, 곧 체포되었다. 진산군수 신사원(申史源)은 여러 가지 말로 회유도 하고 위협도 하였으나, 그는 오히려 교리의 타당함을 주장하여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였으므로, 그를 따르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었다.여기에서도 혹독한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굽히지 아니하므로, 그 해 12월 8일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신해박해 또는 진산사건(珍山事件)이라 불리는 것이다.
1750(영조 26)∼1791(정조 15).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세례명 야고보. 진산 사람으로 원래 유학을 공부하다가 고종사촌 윤지충(尹持忠)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1791년 윤지충의 어머니인 고모가 세상을 떠나자 윤지충이 교리에 따라 제사를 올리지 않았는데, 그도 종래의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 일로 친척과 친지들의 욕설과 비난을 받았다.그 해 10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역도로 몰려 윤지충이 체포되었으며, 그에게도 체포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진산관아에 자진 출두하여, 자신들이 믿는 교는 무군무부의 도가 아님을 교리를 들어 설명하면서 항변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 해 10월 28일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12월 8일 윤지충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 때 정조는 사형집행을 유예시키려 하였으나 이미 집행이 끝난 뒤였다. 이로써 그는 제사문제로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가 되었다. 이 사건을 신해박해 또는 진산사건이라 한다.유항검(柳恒儉)
1756년(영조 32)∼1801년(순조 1).
카톨릭 신자(信者)로 교명(敎命)은 아우구스티노이다. 유동근(柳東根)의 아들이다. 윤지충(尹持忠)‧권일신(權日身) 등에 의해 가톨릭 신자(信者)가 되어 천주교 신앙(信仰)의 실천 운동에 가담하였다. 가성직(假聖職)제도에 따라 자치적조선교회(自治的朝鮮敎會)의 신부(神父) 권한을 위임받아 호남 지방 전교(傳敎)에 힘썼다.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입국(入國)을 도왔다. “전주(全州)의 사도(使徒)”라고도 불리웠다. 홍낙민(洪樂敏), 이단원(李端源)과 함께 외국의 도움으로 신앙의 자유(自由)를 얻기 위해 청나라에 김유산(金有山)을 파견(派遣)하였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호남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되어 대역부도죄(大逆不道罪)로 능지처참형(陵遲處斬刑)을 받고 순교(殉敎)하였다. 부인 신희(申喜), 큰 아들 유중철(柳重哲),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동생 유관검(柳觀儉)과 그의 아들 유종선(柳宗善), 유문철(柳文喆) 등 일가족이 함께 순교(殉敎)하였다.윤지헌( 尹持憲) 윤지헌(프란치스코, 1764~1801)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군과 논산군 지역)에서 학문으로 이름 있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바오로) 형으로, 윤지헌은 1789년 윤지충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791년 신해박해로 형이 순교하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윤지헌은 가족을 데리고 전라도 고산 운동(현 완주군 운주면 저구리)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교회 서적을 베껴 읽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천주교에 입교시키곤 했다. 1795년에는 저구리를 방문한 주문모(야고보) 신부에게 성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교회 밀사 황심(토마스)을 북경에 파견하는 일에 동참했다.
윤지헌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전주감영 옥에 갇혔다. 감사 앞으로 끌려나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그는 한양으로 압송돼 포도청과 형조를 거쳐 의금부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다시 전주로 이송돼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에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37살이었다.https://youtu.be/j0KGKXAo-x0?list=PLk1KtKgGi_E75MdvpGQW2dsQj4_0z7oQh&t=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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