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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의 추대를 제일 먼저 발의한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5. 5. 21:20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종목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명칭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기타

    수량

    一圓

    지정일

    2000.06.12

    소재지

    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15번지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정철호,청주정씨춘곡파종친회

    설명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춘곡(春谷) 정탁(1363∼1423)의 묘소이다.

    고려 우왕 8년(1382)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수찬을 역임한 뒤 여러 관직을 지낸 후 1392년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어 성균대사성에 올랐으며, 태조 5년(1396)에는 중국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돕기도 하였으며, 이후 두루 관직을 거쳐 우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묘는 산의 경사면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축대를 쌓았고 봉분 앞쪽은 돌을 쌓아 전체적으로 사다리꼴형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제사지낼 때 음식을 차려 놓도록 무덤 앞에 마련해 놓은 돌)·문인석이 있으며 묘비는 마모가 심해 글자를 읽기 어렵다.

    조선 전기 양식의 이 묘역은 봉분 앞쪽에 사다리꼴 모양의 돌을 쌓은 특이한 형태로, 당시 무덤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춘곡정탁묘역 (春谷鄭擢墓域)

     

     

     

     

     

     

     

     

     

     

     

     

     

     

     

    [정의]

    1363(공민왕 12)∼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여괴(汝魁)·축은(築隱), 호는 춘곡(春谷).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공권(公權)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 후 고려대를 통하여 춘추관수찬관·사헌규정(司憲糾正)·좌정언·호조좌랑·병조좌랑·광흥창사(廣興倉使) 등을 역임하였다.1392년(태조 1) 사헌부지평과 성균관사예를 거쳐 대장군이 되었고, 이성계의 추대를 제일 먼저 발의한 공로로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393년 문하부직문하(門下府直門下),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396년 중추원우승지로 있을 때 전년부터 조선과 명나라의 현안문제로 대두된 표전문제(表箋問題)의 찬표인(撰表人)으로 명나라에 압송되었고, 귀환하여 좌승지에 서용되었으며, 다음해 중추원부사에 승진하면서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다.
    1398년(정종 즉위년) 10월 방간(芳幹)의 난 평정에 대한 공로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 곧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가 되었다. 이어 예문관·춘추관의 대학사, 정당문학을 거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냈다.
    1403년(태종 3) 판한성부사가 되었으며, 1405년 살인죄로 직첩을 몰수당하고 영해로 유배되었으나 공신이므로 곧 사면되었다.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를 거쳐, 1408년 태조가 죽자 고부청시사(告訃請諡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5년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되었고, 1421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다.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익경(翼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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