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134호 산성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산의 정상부나 경사면에 쌓은 성을 말한다. 용산산성은 높이가 해발 435m이고 용산 정상을 중심으로 경사가 급하지 않은 동쪽과 남쪽 면은 돌로 쌓았고, 경사가 급한 북쪽과 서쪽 면의 일부는 돌과 흙으로 쌓았다. 지금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81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이다. 동서남북 네 곳에 문터가 남아있으며, 내부에서는 군사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터 두 곳이 확인된다. 외성에 있는 ‘무지개 샘’ 은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으며, 용성지역 사람들이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산성 내부에서 채집한 토기와 기와 등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에는 태종무열왕의 아들 김인문이 656년에 지금의 경산지역인 압량주 군주로 임명되어 백제와의 전투를 대비해 장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때 쌓은 장산성이 용산산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가유산 설명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해발 435m 용산의 정상 아래를 둘러싼 형태의 산성으로, 경사가 완만한 동·남쪽으로는 돌을 쌓았으며, 경사가 급한 서·북쪽으로는 돌과 흙을 이용하여 쌓았다.
지금 남아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81㎞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이다. 동쪽의 성벽은 내외 2중 성벽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성안에는 잡석과 흙을 다져 뒤채움을 하였고, 회곽도로를 만들어 통행하였다. 경사가 아주 급한 서문터와 남문터 사이의 구간에는 계단을 만들어 성벽이 무너지는 것에 대비하였고, 북쪽 구간과 동·남쪽 구간에는 성의 안팎으로 성벽을 쌓았다.
4대문터 주위에는 문루 등의 건물이, 동남쪽의 모서리에는 장대 혹은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로부터 돌아와서 군주로 임명되었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이 성을 만든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