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鳳巖寺 磨崖彌勒如來坐像 보물 제2108호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은 17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전해지며 관련 기록에서는 환적 의천 선사 幻寂 義天. 1603~1690의 願佛이라 한다. 높이 4.5m 폭 4.4m로 국내 마애불 중 비교적 큰 편이다. 머리 주위는 약간 깊게 파서 광배를 겸하는 듯하게 조각하였고,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처럼 만들었다. 머리는 입체적으로 조각하였으나 몸체는 선으로 가늘게 새겨 조각 수법이 다르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석 왕관의 중앙에는 꽃무늬가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 가지를 받치고 있다.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무릎이 넓고 높아 안정감이 있다.
문화재 설명
보물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1663년(현종 4)에 제작된 마애불로서, 경북 봉암사 옥석대(백운대라고도 함)에 위치해 있다. 제작시기와 주관자에 대해서는 풍계 명찰(楓溪 明察, 1640-1708)의 문집『풍계집(楓溪集)』에 수록된 「환적당대사행장(幻寂堂大師行狀)」을 통해 확인된다. 명찰은 17세기 승려 환적당 의천(幻寂堂 義天)의 제자로 이 책에 환적당이 주관해 마애불을 조성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환적당 의천은 1630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여 88세 되던 1690년에 해인사 백련암에서 입적했다. 환적당이 봉암사에서 처음 수행한 것은 60세(1662년)부터 61세까지로, 행장에 의하면 백운대에 이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조성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환적암(幻寂庵)을 지었다고 한다. 보살좌상은 높이가 539.6cm, 너비가 502.6cm 정도이며 머리 주변을 깊게 파서 광배 형상을 만들고, 위는 깊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얕은 부조로 처리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눈매, 단정히 다문 입 등이 조화를 이룬 인상이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옅게 표현했고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이며, 주름은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가슴에는 수평으로 걸친 군의와 이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었고, 주름은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절제감 있게 새겼다. 앉은 모습은 길상좌(吉祥坐)이며, 노출된 오른발은 불상의 크기와 넓은 무릎에 폭에 비해 작은 편이다. 특히 얼굴과 자세, 착의법 등 세부표현에서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탱>(1622)을 비롯하여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1653년), <하동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1688년), <여수 흥국사 영산회상도>(1693년) 등 17세기 괘불에서 보이는 표현요소를 찾아 볼 수 있어 불화와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불상의 수인(手印)은 용화수인(龍華手印)으로, 두 손으로 긴 다발형의 꽃가지를 쥐고 있는 모양이다. 1663년이라는 뚜렷한 제작연대를 염두에 둘 때 마애불 도상이 확인된 기준작으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보물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문헌을 통해 제작시기와 제작동기, 발원자, 도상 등에 대해 고증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마애불이라는 점, 조선 후기 마애불 연구뿐만 아니라 미륵불상의 도상 연구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사실적인 조각수법, 당대 불화와 연관성이 있는 창의적 표현 등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