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총이란 고대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이 무덤처럼 쌓인 유적을 의미한다. 성산패총은 1973년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가 시행되어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4년부터 발굴한 것이다. 패총 아래 철을 만들던 작업장과 삼한시대에 형성된 패총, 그 위에 쌓인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산패총 아래 야철지*는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과 일본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즉, 성산패총 아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철이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이다. 패총에서는 민무늬 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한나라 오수전(五銖錢)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중 가장 의미 있는 유물은 한나라 오수전이다. 한 무제(漢武帝, 기원 전 141~87 재위) 때 만들어진 오수전은 패총의 조성 시기 및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국제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성산패총 위에 조성된 삼국시대의 성곽은 5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서는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성산패총은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 창원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야철지(冶鐵址): 철을 만들던 작업장
문화재 설명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조개를 먹고 버린 껍데기와 생활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하는데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창원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낮은 구릉에 있고, 구릉의 꼭대기는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탈진 곳에 조개더미들이 쌓여있는데 A지구, B지구, C지구라 부른다. 쌓임층은 가장 위에 겉흙층이 있고, 그 아래에 조가비층이 있으며, 바닥에는 부식토층이 깔려 있다.
발굴한 결과 A지구의 겉흙층에서는 신라 토기와 근대 도자기들이 나왔고, 조가비층의 윗부분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 처음으로 만든 오수전이라는 화폐와 토기가 나왔으며, 아랫부분에서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와 간석기(마제석기)가 나왔다. B지구에서는 적갈색 연질토기, 회청색 경질토기 등과 철기가 나왔고, C지구에서는 민무늬토기와 반달돌칼, 돌도끼, 와질토기 등이 나왔다.
구릉 꼭대기에는 흙으로 쌓은 성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성벽에서 수습된 토기는 이 성이 조개더미 유적과 관계가 적은 신라 때의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조개더미의 일부가 신라 때까지 계속 쌓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유적에서 나온 오수전은 유적의 처음 쌓인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로서 기원전·후 시기부터 유적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라토기의 형식을 보면 A·D 4세기 무렵까지 이어지며, 성벽에서 나온 중국 당나라 화폐인 개원통보의 연대를 통해서 A·D 5세기 무렵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성산 조개더미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오랜 기간동안 창원지역의 중심지이었음을 보여주며, 창원 분지내에 있는 내동 조개더미, 가음정동 조개더미 등의 유적과 함께 당시의 생활유적으로 중요하다.
※(마산외동성산패총 → 창원 성산 패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