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碑石) 문화는 중국 한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무덤 앞에 세우는 묘비(墓碑)에서 발달하였다. 비석은 처음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 세상을 떠난 이의 공적이나 행적 등을 찬양하고 이를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하여 글을 새겨 넣은 돌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비석의 형태는 크게 비석을 받치는 대좌(臺座), 비문을 새겨 놓은 비신(碑身), 비신을 덮는 개석(蓋石)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2003년 예원예술대학교 전북역사문화연구소는 만일사비 탁본 및 연구 조사를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만일사는 백제시대에 처음 건립되었다. 이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건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 조선 효종 9년(1658)에 지홍대사(智弘大師)와 원측대사(元測大師)가 전란으로 무너진 만일사를 비석과 함께 다시 세웠다. 만일사비가 자리한 만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고승과 문인들이 수행하던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에 재건되었고 1988년 전통 사찰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던 만일사비는 1978년에 봉합, 복원되었다. 현재는 석재가 노화되고 비문이 마멸되어 육안으로는 비문을 판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중엽 한때 ‘전라도’가 ‘전남도’로 개칭되었다는 것, 회문산 내에 산성과 군진(軍陣)이 있었다는 기록을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덕분에 만일사비는 순창 지역의 불교문화와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 설명
만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로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고, ‘만일사 비’와 1760년(영조 36년)에 간행된 『옥천군지(玉川郡誌)』에 의하면 백제시대에 건립된 천년고찰로 전해지고 있으며, 지난 1988년 전통사찰 제65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이 절을 중창하고, 만일(萬日)동안 이성계의 임금 등극을 기원했기 때문에 ‘만일사’라 칭해졌다는 이야기와 남원에서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전주 오목대로 귀환하기 전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만일사로 가는 도중 민가에서 먹은 고추장 맛에 반해 임금이 된 후 궁중 진상품으로 올리게 했다는 설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지난 2014년 KBS(한국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정도전’에도 이 설화가 소개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탐방하는 명소가 되었고, 전라북도에서는 도내에 산재한 이성계 관련 유적과 다른 관광지를 연계한 관광 상품인 ‘태조 이성계 관광 프로젝트’사업을 개발하여 운영하기도 한 바 있다.
한편 지난 2003년 예원예술대학교 전북역사문화연구소가 실시한 탁본 및 연구조사에 의하면 만일사 비에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던 만일사를 지홍대사(智弘大師)와 원측대사(元測大師)가 1658년(효종 9년)에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만일사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고승과 문인이 수도하였으나, 6.25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자영 스님이 주지로써 운영하고 있으며, 경내엔 대웅전, 삼성각, 무설당, 일주문, 비각, 종각, 요사채,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