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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9호문화재/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2013. 4. 2. 10:42
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9호
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 종목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9호 명칭 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일곽 지정일
1993.08.31 소재지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51 시대
조선시대 소유
김경식 외1 관리
김경식 설명
일제시대의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가 살던 옛 집이다. 철종 13년(1862)경에 지어 그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집이라 한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랑채, 사당, 곳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후대에 양쪽에 각각 1칸씩 덧붙였다.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잡고 있는 안채의 양식은 다른 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안채의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안채와 사랑채에 비해 훨씬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행랑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안채의 양쪽으로 곳간채가 1동씩 있으며, 안채 뒤로는 사당이 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이다.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 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 김정회고가 (金正會古家)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자 서화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립(中立), 호는 보정(普亭)이다.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610-2번지에서 태어났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천(晦泉) 김재종(金在鍾)이다.
김정회(金正會)는 어려서부터 종조할아버지 항재(恒齋) 김순묵(金純黙)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약관에 경사자집(經史子集)[중국의 옛 서적 가운데 경서(經書), 사서(史書), 제자(諸子), 문집(文集)의 네 부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두루 통달하였다. 1929년 27세 때 한갓 시골 선비로 옛 것만을 고수하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지 않는 것은 시류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하여 29세 때 경학원(經學院), 즉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원에 입학하여 청나라에서 수입된 학문을 익히면서 국내의 석학들과 밤낮으로 학문을 연마했다. 또한 당시 서화로 이름난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에서 글씨와 그림을 익혀 일가를 이루어 1938년 전일본문예전람회에서 입선을 하였으며, 1940년 전일본국전(全日本國展)에서 「풍죽(風竹)」이 특선으로 입선되었다.
1934년 고향집 만수당(晩睡堂)에서 도산보통학교를 개교하였고, 다음해인 1935년 아버지가 희사한 대지에 새로 학교를 지어 그 곳으로 옮겼다. 1941년 39세 때 경학원 강사로 선임되었다. 1945년 일제가 물러나고 광복이 되자 서울로 올라왔으나 혼란한 정치상을 보고 다시 귀향하였다. 이후 집안의 노비들을 불러 전답을 나누어 주고 왕등도로 들어가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1946년 어머니의 상을 당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55년과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작품이 거듭 입선하였다. 1970년 68세의 나이로 죽었다.
저서로 『연연당문고(淵淵堂文稿)』 10권이 전한다.
내가 본 것이 김정회 고가가 아닌 듯 다시 가보아야 하겠다.'문화재 > 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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