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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당 (忠義堂)-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9호문화재/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2013. 3. 11. 13:51
충의당 (忠義堂)-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9호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9호 명칭
충의당 (忠義堂)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일곽(7동) 지정일
1993.02.25 소재지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492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최채량 설명
정무공 최진립(1568∼1636)이 살았던 곳으로 가옥의 사랑채에 해당된다. 처음에는 당호를 흠흠당이라 했는데 1760년경 건물을 수리한 후 충의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집의 구성은 정면의 충의당을 중심으로 뒷면에 정침과 광채 그리고 흠흠당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제향공간이 있어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배치방법을 지니고 있다.
인근에는 선생을 추모하여 정려비각을 세우고 용산서원에 배향하였다.정무공 최진립(1568∼1636)
1.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1568~1636)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계종(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무과에 급제해 정유재란 때 울산전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1607년 오위도총부 도사(都事)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능창군 추대 사건(선조의 서자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 갔다가 인조반정 후 복직되어 가덕 첨사(僉使)로 복귀했다. 그 뒤 경흥부사, 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인조 8) 경기수사가 되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했으며 1634년(인조 11) 전라수사를 지냈다. 공주 영장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충청관찰사 정세규가 출정하면서 연로한 공에게 전쟁을 치르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라고 참전을 만류했다. 그러나 용인 험천(險川)에 이르러 보니 공이 먼저 와 있었다. 정 감사가 “어찌 여기 왔소”라고 물었더니 “임금이 포위를 당해 있고, 주장(主將)이 전장으로 나아가는데 어떻게 물러나리요. 또한 나라에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주장과 같이 죽으러 왔소”라고 대답하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잘 훈련된 청나라 군대를 당해 낼 수 없었다.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평소 그림자처럼 따르던 두 종 옥동(玉洞)과 기별(奇別)에게 “너희들 중에 나를 따를 사람은 이 옷을 받아 입어라”하고 옷을 벗어던지자 기별이 울면서 옷을 주어 입고 “주인이 충신이 되는데 어찌 종이 충노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 뒤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청백리로 뽑혔으며, 경주 용산서원 등에 제향되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받았다.'문화재 > 내가 본 시도민속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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