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산청 대포서원 (大浦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
    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3. 3. 20. 21:37

    산청 대포서원 (大浦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

    명칭

    산청대포서원 (大浦書院)

    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

    4동/2,560.1㎡

    지정일

    1993.12.27

    소재지

    경남 산청군 생초면 명지대포로236번길 91 (대포로)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여흥민씨졸수종중

    설명

    농은 민안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민안부는 고려 후기 충신이며 두문동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고려 공양왕(재위 1389∼1392) 때 예의판서에 이르렀으나, 조선의 개국으로 72현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갔다. 후에 산음현의 대포리로 내려와 은둔하여 살며 고려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켰다.

    대포서원은 숙종 19년(1693)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뒤 고종 11년(1874) 유림과 후손들이 숭절사, 숭의제, 동재·서재 등을 고쳐 세웠다.

     

    한글 명칭과 한자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민안부(閔安富)

     

    생몰년 미상. 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두문동(杜門洞)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영숙(榮叔), 호는 농은(農隱). 도첨의사인(都僉議舍人) 유(孺)의 아들이다. 학문과 지행이 높았다.
    일찍이 등과하여 대소의 과환(科宦)을 거치고 공양왕 때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1392년(태조 1) 이성계(李成桂)가 개국을 하자 이에 반대하여 구홍(具鴻)·박심(朴諶)·채귀하(蔡貴河)·이맹운(李孟芸) 등 72현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서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조선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주어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경상남도 산청 산음현(山陰縣)의 대포리(大浦里)에 숨어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송경(松京)을 바라보면서 망국을 추모하였다.
    자손들을 경계하여 조선조에 벼슬하지 말도록 하였고 현감에 기용된 아들을 사직하게 하였다.
    영조조에는 그를 비롯한 72현의 충신들이 은거하여 있던 그곳을 부조현에 봉하고 치제하는 은전을 내렸다. 산청 영남유림들에 의하여 숭절사(崇節祠)에 제향되었고, 정조 때는 표절사(表節祠)에 제향되었다.

     

     

     杜門不出(두문불출)

    [解義]고려(高麗)가 멸망하고 조선조(朝鮮朝) 태조(太祖)가 개국(1932년 7월)하자 고려의 유신(儒臣) 신규(申珪), 신혼(申琿), 신우(申瑀), 조의선(曺義先), 임선미(林先味), 이경(李瓊), 맹호성(孟好誠), 고천상(高天祥), 서중보(徐中輔), 성사제(成思齊), 박문수(朴文壽), 민안부(閔安富), 김충한(金忠漢), 이의(李倚) 등 72인의 충신들이 개성 동남방의 부조현(不朝峴)에서 조복(朝服)을 벗어 걸어 놓고 헌갓으로 바꿔 쓰고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杜門洞)으로 새 왕조인 조선을 섬기지 않고 들어 갔다.그 뒤 그들은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고 여생을 보냈는데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을 ˝두문동 72현˝이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