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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서원 (龜岡書院)-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3. 3. 13. 18:36
구강서원 (龜岡書院)-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명칭
구강서원 (龜岡書院) 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
일곽 지정일
1987.05.13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679 시대
소유.관리
경주이씨양월문중,이종원 설명
익재 이제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학자로서 이제현은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을 수용·발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문학 부문에서도 그는 대가를 이루었다. 많은 시문을 남겼고, 고려의 한문학을 발전시켜 한단계 높게 끌어 올렸다. 한편 사학(史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익재난고』10권과 『역옹패설』2권이다.
구강서원은 원래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이제현의 영당(影堂)으로 세운 것을, 숙종 12년(1686)에 서원으로 다시 세웠다. 하지만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04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서원 배치는 공간을 田자형으로 나누어 토담을 둘렀다. 그 왼쪽에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같은 선상에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고사와 경각을 두었다. 경각 안에는 익재영정과 익재집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며,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문이 닫혀있어 주변만 맴돌았다.
이제현 [李齊賢]1287(충렬왕 13)~ 1367(공민왕 16). 고려 후기의 문신·시인.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실재(實齋)·역옹(櫟翁). 아버지는 검교정승인 진(瑱)이다. 1301년(충렬왕 27) 15세에 성균시에 장원, 이어 대과에 합격했다. 그해 대학자인 권보(權溥)의 딸과 혼인했다. 1303년 권무봉선고판관과 연경궁녹사를 거쳐 1308년 예문춘추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314년(충숙왕 1) 백이정의 문하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했고, 같은 해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그를 불러들이자 연경(燕京)에 가서 원나라 학자 요수·조맹부·원명선 등과 함께 고전을 연구했다. 1319년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밝혀 1323년 풀려나오게 했다. 1357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그는 탁월한 유학자로 성리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충목왕 때는 개혁안을 제시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문학에 있어서는 도와 문을 본말(本末)의 관계로 파악하여 이들을 같은 선상에 두면서도 도의 전달에 상대적인 비중을 두는 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시는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과 관계되는 충효사상·관풍기속(觀風記俗)·현실고발의 내용과 주제도 담고 있는데 영사시(詠史詩)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산문은 앞 시대의 형식 위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내용을 위주로 한 재도적(載道的)인 문학을 추구했다. 〈익재난고〉의 〈소악부 小樂府〉에 고려의 민간가요를 7언절구로 번역한 17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의 저술로는 〈익재난고〉 10권과 〈역옹패설〉 2권이 전한다. 경주의 구강서원과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고,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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