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성 泗川 船津里城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 사천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주둔한 왜군이 일본식으로 지은 성이다. 사천읍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선진리 북쪽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 복원된 형태로 남아 있다. 당시 북진하던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저항하자 경상도 남해안 지방으로 물러나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고 머물렀는데 그때 쌓은 성 중 하나가 선진리성이다. 이 성은 기록에 따르면 왜군 장수 11명이 1597년 10월 29일부터 12월 27일까지 지휘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안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고, 성 주위에는 해자*와 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 시대 전국 12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通洋倉)을 보호하기 위한 토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성은 왜군이 활동하기 위한 주요 근거지였기 때문에 한때 이순신 장군에게 격파당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선진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해자(垓字): 성 주위로 들러 판 못 **선진(先陣): 지휘를 하는 본부가 있던 군영의 앞에 자리 잡거나 앞장서서 나아가는 부대 ***조창(漕倉) :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의 명목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저장, 운영하던 국영 창고. 주로 해안이나 하천의 포구에 설치
문화재 설명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는데, 선진은 싸움터에서 앞장서는 군대를 뜻한다. 『읍지』와 『대동지지』의 기록을 보면 이 선진에는 전함이 1척, 병선이 1척, 하후선이 2척 있었다고 하여, 삼천진이라 불렸다. 선조 30년(1597)에 왜의 석만자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울산의 도산, 순천의 왜교와 더불어 3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樓)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