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말이산 고분군 咸安 末伊山 古墳群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이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을 의미하는데, 이를 보아 말이산의 어원이 아라가야의 왕과 관련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이산은 함안의 가야분지에 위치한 해발 40~70m의 나지막한 구릉이다. 남북으로 약 2㎞ 정도 길게 뻗은 중심능선과 이로부터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되어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중심과 가지능선에 열을 지어 서 있으며, 이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산위의 산’이라는 경외(敬畏)의 느낌을 받게 한다. 말이산고분군의 면적은 52만㎡로 단일 고분유적으로서는 국내 최대급이다. 말이산 구릉의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능선의 꼭대기에는 대형의 봉토분이, 경사면에는 중소형의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대형의 봉토분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을 1~37호분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정밀지표조사 결과, 이들 봉토분(封土墳)을 포함해서 약 1,000기 이상의 고분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이산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2호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원대학교박물관, 경남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 의해 수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말이산고분군은 널무덤(木棺墓)서 대형의 덧널무덤(木槨墓)으로 교체되고,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6세기에는 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을 중심구조로 하는 대형 봉분이 밀집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밝혀졌다. 특히 1918년 일제에 의한 약탈적 발굴조사 이후 100년 만에 이루어진 말이산 13호분 발굴조사에서는 가야무덤 최초로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되어 가야인의 천문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말갑옷을 비롯한 말갖춤새, 꾸미개, 철제 무기류, 토기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갖춘 아라가야의 수준 높은 문화와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말이산고분군은 수준 높은 고대문화를 간직한 채 한반도의 주요 국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발전했던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봉토분(封土墳): 시신과 부장품을 묻는 장소를 흙이나 돌로 쌓아 규모를 크게 만든 무덤 **널무덤(木棺墓):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널(관)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 ***덧널무덤(木槨墓):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설치하여 그 안에 관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무덤 ****돌덧널무덤(石槨墓): 깬돌이나 판돌을 잇대어 널(관)을 만들어서 쓴 무덤 *****굴식돌방부덤(橫穴式石室墳): 깬돌이나 판돌로 널(관)을 넣는 방을 만들고, 한쪽에는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에 흙을 덮어씌운 무덤
문화재 설명
Ο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본래 함안도항리고분군(사적)과 함안말산리고분군(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2011년 7월 28일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산자락에 걸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으로 재지정한 것임
Ο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37기의 대형 고분들이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여 있는 이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 때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34호분(현 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큰 규모의 무덤이었음. 최근에는 8호분 조사를 통해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