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울 육상궁 (서울 毓祥宮)-Yuksanggung Shrine, Seoul
    문화재/내가 본 사적 2022. 6. 16. 17:24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수량 일곽
    지정일 1966.03.22
    소재지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2 (궁정동)
    시대 조선 영조 1년(1724)
    소유자 국(문화재청) 
    관리자 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육상궁은 나즈막한 담에 둘러싸여 있고 왼쪽에는 네 개의 사당이 각기 독립해 서로 접하여 서있다. 이 사당 앞쪽에는 제사지내는 곳과 우물이 있으며 그 앞에 정문이 있다. 제사 지내는 건물 주위의 뜰은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어 정숙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육상궁(지상건물일체포함) → 서울 육상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청와대 개방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서울 육상궁 (서울 毓祥宮) | 국가문화유산포탈 | 우리지역 문화재 (heritage.go.kr)

     

    1725년(영조 1)에 창건되었는데, 당시는 숙빈묘라고 불렀다가 뒤에 육상묘(毓祥廟)라고 고쳐 불렀으며, 1753년에 묘를 승격하여 육상궁으로 고쳤다. 1882년(고종 19)에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불탄 것을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이때 지은 것이다.

    육상궁은 ‘7궁(七宮)’으로도 불린다. 그것은 1908년에 저경궁(儲慶宮)·대빈궁(大嬪宮)·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경우궁(景祐宮)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제궁(諸宮)을 육상궁의 경내에 합사(合祀)한 뒤, 1929년에 덕안궁(德安宮)도 옮겨 모셔, 모두 일곱 궁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경궁은 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追尊王)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仁嬪金氏, 1555∼1613),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禧嬪張氏, ?∼1701), 연호궁은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靖嬪李氏, ?∼1721), 선희궁은 역시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 장조의 사친(私親)인 영빈 이씨(暎嬪李氏, 1696∼1764),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친어머니인 수빈 박씨(綬嬪朴氏, 1770∼1822),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친어머니인 순헌귀비 엄씨(純憲貴妃嚴氏, 1854~1911)의 신위를 모셨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체항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문화재청자료

     

    • 기르다

    획수 14획  부수 (말무, 4획) 

    • 1. 상서롭다
    • 2. 좋다
    • 3. 재앙
    • 4. 조짐
    • 5. 요괴(妖怪)

    획수 11획  부수 (보일시, 5획)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