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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태사묘 (安東太師廟)-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2. 11. 8. 17:11

    안동태사묘 (安東太師廟)-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명칭

    안동태사묘 (安東太師廟)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

    4,035㎡

    지정일

    1974.12.10

    소재지

    경북 안동시 북문동 23,24-1

    시대

     

    소유.관리

    태사묘관리위원회

    설명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3명의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930년 태조가 안동에서 견훤(甄萱)을 토벌할 때 세운 공로로, 권행과 장정필은 대상(大相)이란 벼슬을, 김선평은 대광(大匡)이란 벼슬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성종 2년(983)에 처음으로 3명의 제사를 안동부사가 거행하였다고 한다. 현 위치의 묘우는 조선 중종 37년(1542)에 세운 것인데, 한국전쟁 때 불에 타 1960년대에 다시 세운 것이다.

    묘우 안에 있는 보물각에는 붉은잔, 비단, 관, 가죽신, 부채 등 보물 제451호로 지정된 삼태사의 유물 22점이 보존되어 있다.
     

     

     

     

     

     

     

     

     

     

     

     

     

     

     

     

     

     

     

     

     

     

     

     

     

     

     

     

     

     

     

     

     

     

     

     

     

     

    신(新)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901-?)

    (1) 출생

    부존의일칙(附存疑一則) 일계고적등기후식(佚系古蹟謄記後識)에 의하면 당소종천복원년신유(唐昭宗天復元年辛酉)에 흥덕궁(興德宮)에서 출생하셨다.
    신라 효공왕(孝恭王) 5년(서기 901), 후백제 견훤 10년에 출생하셨다.

    (2) 사성(賜姓)과 본관(本寬) 하사

    26세 때 고창성주(古昌城州 : 현 安東)로서 930년(신라 경순왕 4년. 후백제 견훤 39년. 고려 태조 13년) 1월 고창전투에서 고려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 때 고창군을 안동도호부로 승격시키고, 3공신 중 권행(權幸)은 안동권씨로 사성(賜姓)하고, 김선평(金宣平)과 장길(張吉)은 본관(本貫)을 안동(安東)으로 하사하였다.
    이어 936년(후백제 신검1, 고려 태조 19)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http://www.adkim.net/phpeuc/board.php?board=student&page=1&sort=hit&command=body&no=325에서

     

    시조 태사공(太師公) 권행(權幸)

    시조 태사공(太師公)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본명은 신라의 종성 김행(金幸)이었다. 권행은 신라 말 경애왕 때 고창(지금의 안동)을 수비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 신라는 계속되는 왕의 실정으로 민란이 자주 일어나 국운이 기울어지자 서기 927년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신라를 침입하여 왕을 시해하였다. 이에 격분한 권행은 서기930년(경순왕 4년) 공과 더불어 3태사인 김선평, 장길(다른이름 장정필)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물리쳐 병산대첩이라는 큰 공을 세웠다. 고려태조 왕건(高麗太祖 王建)이 크게 기뻐하여 “능히 기미에 밝고 권도에 통달하였다(能炳幾達權)” 라며 권(權)씨를 사성(賜姓)하고 벼슬을 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太師로 제수한 후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고 이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이후 권행은 안동권씨의 시조가 되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였다.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89705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는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는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이다.
    《안동장씨대동속보(安東張氏大同續譜)》에 의하면, “그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며, 888년(신라 진성여왕 2)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부(蘇興府)에서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 장원(張源)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강원도 강릉에 머물다가 경상북도 노전(蘆田: 안동의 옛 이름)에 정착하였다. 18세 때 다시 당나라에 들어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다가 김남석(金南錫)이 무고를 하여 다시 환국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병산(甁山)에서 태조를 도와 견훤의 군대를 대파한 공으로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三重大匡保社壁上功臣太師)에 오르고 고창군(古昌君)에 봉해졌다. 태조는 고창군(古昌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고 본관을 안동으로 하사하여 안동장씨가 생겨나게 되었다.”라고 한다.
    덕수장씨(德水張氏)와 절강장씨(浙江張氏)를 제외하고 나머지 장씨는 모두 안동장씨의 시조인 태사충헌공 장정필에게서 나온 것이다.

    http://koreandb.nate.com/history/namebon/detail?sn=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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